추리무협소설 <천지> 145회

등록 2007.03.06 08:14수정 2007.03.06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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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에 걸쳐 그 후예들을 찾아 은밀하게 제거하기 시작했다. 파악된 구룡의 후예는 모두 다섯이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후예가 있음은 배제할 수 없었지만 세 명은 무사히 제거해 시신까지 확인했고, 하나는 들짐승에 의해 훼손되어 정확한 판단이 어려웠지만 상황으로 보아 제거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허나 천룡의 후예는 결국 찾지 못했고,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터였다. 그 놈이 이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혈채를 받으러 온 것이냐?”


@BRI@천룡인을 익히고 있는 한, 그리고 저렇듯 뚜렷하게 장인을 남기고 있는 한 자신 홀로는 상대하기 벅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저놈이 한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었고, 근거 없는 협박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이곳을 뛰쳐나가 사람을 모으는 치졸한 일 따위는 적어도 동정오우 중 하나인 그가 할 짓이 아니었다.

“그건 별개의 일이오. 아까도 말했지 않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 왔다고….”

도대체 자신에게 목숨을 내놓으라는 일 외에 무슨 부탁이 있을까? 이 자식은 지금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일까?

“별개의 일이라….”

중의는 점차 안정을 찾고 있었다. 이미 상대가 누군지 알았고, 당장 닥친 일이다. 노회한 경험은 이런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질 것을 생존본능과 함께 무의식중에 강요하고 있었다.


이럴 때 일수록 시간적인 여유를 마련해야 한다. 위기란 시간이 흐를수록 그 충격이 완화된다. 그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렇다면 노부는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겠네.”


“어떠한 부탁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말이오?”

“물론이네. 노부는 자네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 부탁이 무엇인지도 듣고 싶지 않네.”

중의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런 때일수록 상대의 의도를 확실히 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일단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안 된다. 되도록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면 상대의 의도를 거슬려 어떻게 나오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상대 역시 나이만으로 판단할 인물은 아니었다. 능효봉은 노련했고 이미 중의의 입에서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대선생께서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하고 들어주고 싶지 않아도 들어주어야 하오.”

중의의 단호한 말투를 흉내 내듯 능효봉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있었다. 무엇을 믿고 저러는 것일까?

“아까도 말했듯이 노부가 포가장의 장주란 사실을 떠벌리겠다고 해보았자 조금 귀찮아 질뿐이야.”

그 정도 가지고 자신에게 압박을 가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중의는 능효봉의 말투에서 이미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과거의 혈채와는 별개의 일이라 했으니 거래할 다른 것이나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일까?

“포대선생께서는 스스로 포가장의 장주라는 의미를 아직까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계시는구려. 현 중원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동창의 추태감이 툭하면 국사(國事)를 상의하기 위해 포가장에 들른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오. 그 때문에 신비한 포대선생이 대단한 학문을 가진 고매한 학자로 세상에 오인되었지만 말이오.”

포가장의 장주는 북경 정계에서 매우 신비한 인물이면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한 자리 얻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아무도 만나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신비한 인물로 부각되었고, 국사를 좌지우지하는 추산관 태감이 가끔 들러 조언을 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충언은 하되 벼슬을 멀리하는 고매한 학자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별 것도 아니면서 꽤나 장황하게 말을 꺼내는 버릇이 있는 친구로군.”

“노인네들은 확실히 잊어버리길 좋아하는 모양이오. 아니 잊어버리지도 않으면서 잊어버린 척 행동하기도 하지만 말이오. 아직 무슨 뜻인지 모르시는 것 같으니 구체적으로 말하리다.”

“……?”

“올 사월 초파일 유시(酉時) 경 추태감은 포대 선생을 찾아갔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으니 물론 포대 선생께도 정확히 기억하시리라 믿소.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중요하고 위험한 두 가지 사안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소.”

그 순간 중의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추태감이 포가장을 찾아오는 것이야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해도, 정확히 중요하고 위험한 두 가지 사안이라는 것은 추태감과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극비였다. 또한 그 두 가지 사안은 너무나 위험한 내용이라서 절대 외부로 발설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자식은 정말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마음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내색을 하면 저 녀석에게 말려드는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바싹 긴장이 되고 혈행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애써 진정시키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뱉었다.

“노부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조사했구나?”

능효봉은 개의치 않았다. 이곳에 오고자 마음먹은 그 때부터 생각했던 일이었다.

“하나는 혈간과 관계된 일이었고, 또 하나는 황실에 대한….”

“그만!”

중의의 얼굴색이 홱 변하며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진정하려 해도 심장의 박동이 요동치고 머리 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단지 추측이 아니었다. 이미 저 놈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어… 어떻게 알았느냐?”

어리석은 질문이었지만 머리 속이 텅 빈 지금으로서는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믿을 만한 두 사람이 있소. 그 두 사람은 오년 전부터 꾸준하게 당신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했소. 사실 포대장주가 누군지 알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뜻밖에도 큰 대어가 걸렸던 거요.”

“포대장주가 누군지 알고자 했던 놈들은 많았다. 하지만 알아낸 놈들은 없었는데….”

“물론 동창의 호위를 받고 있는 포가장의 장주가 누군지 어찌 쉽게 밝혀낼 수 있었겠소. 더구나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포대 선생의 모습에서 어찌 동정오우 중 한 명인 중의라 생각할 수 있었겠소?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이오.”

“으음! 그 두 놈은 본장의 식솔들이겠군.”

외부로부터 침입해 포가장을 조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포가장 내부인이라는 결론이었다. 그토록 식솔을 고르는 것에 신중했지만 역시 사람 마음이란 것은 알 수가 없는 법이다. 도대체 포가장 식솔 중 저 놈과 내통한 놈은 누구였을까? 은근히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 그 중의 한 명만이 포가장에 있소. 괜히 나중에 애꿎은 사람 잡지 마시오. 더구나 나 역시 일 년 전부터 포가장을 내 집 드나들 듯 드나들었다면 믿겠소?”

“일 년 전부터 본장을 마음대로 드나들어? 그런데도 노부가 눈치 채지 못하고….”

“포대 선생을 보호하려는 동창의 노력은 가히 당금의 황제를 보호하려는 것보다 더 완벽했소. 하지만 같은 식구들이라면 드나드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소?”

“그렇다면 너는 동창에 파고들어 있었다는 말이로구나!”

중얼거림은 탄식이었다. 중의는 저 자가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정확히 파악했는지 이해했다. 동창 소속이었다면 아주 자연스럽게 포가장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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