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력거꾼들의 깊어가는 한숨소리

베이징 골목을 누비는 '루어투어시앙즈' 후예들의 현재

등록 2007.03.07 11:28수정 2007.03.0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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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중국에 가본 사람이면 거리를 오가는 천태만상의 자전거에 한동안 시선을 빼앗긴 경험들이 한 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엄청난 양의 재활용품을 실은 자전거에서부터 만두나 전병 등의 먹거리를 만들어 팔 수 있도록 개조된 자전거, 또 각양각색의 인력거들이 복잡한 도심을 곡예 하듯 헤치고 다닌다.

중국의 서민들에게 있어서 자전거는 지점과 지점 사이를 오가는 교통수단일 뿐만 아니라 생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삶의 소중한 도구이다. 특히 인력거꾼에게 자전거는 먹고 살아가게 하는 생활의 전부인 분신과도 다름없는 존재일 것이다.

중국 인력거꾼의 삶의 전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1937년 3월 6일 발표된 라오셔(老舍)의 소설 <루어투어시앙즈(駱駝祥子)>이다. 라오셔는 이 소설을 통해 봉건적 전통이 잔존하는 군벌시대에 성실한 한 인력거꾼이 어떻게 파멸하고 타락해 가는지를 비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농촌에 살던 주인공 시앙즈는 베이징에 와서 인력거꾼이 된다. 선량한 품성에 정직하고 부지런한 그는 돈을 모아 자신의 인력거를 사서 독립하는 것이 꿈이다. 3년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꿈에 그리던 인력거를 장만하지만 군벌할거의 혼란 속에서 인력거를 빼앗기고 자신도 군대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낙타 3마리를 훔쳐 탈출하여 낙타를 판 돈과 일해서 번 돈으로 인력거를 사려고 하지만 그마저 형사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다시 인력거꾼으로 일하던 시앙즈는 인력거회사의 사장 딸 후니우(虎紐)와 결혼하여 인력거를 사지만 난산으로 죽은 부인의 장례식을 위해 다시 인력거를 팔아야만 한다. 이후 시앙즈는 푸즈(福子) 라는 여인을 만나 다시 생활의 희망을 가져보지만 그녀가 기생집에 팔려갔다 돌아와 자살함으로써 삶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고 결국 좌절 속에서 타락해가고 만다.

현대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인력거꾼들

a 도시관리단속반원이 불법영업을 하는 인력거들을 수거하여 정리하고 있다.

도시관리단속반원이 불법영업을 하는 인력거들을 수거하여 정리하고 있다. ⓒ 런민왕(人民網)

<루어투어시앙즈>가 발표된 지 70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의 인력거꾼들은 시앙즈의 모습과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걸어서 가기는 멀고 버스노선은 아예 없거나 갈아타야 하고, 택시를 타자니 기본요금 10위엔(1200원)이 부담스러운 지점들마다 루어투어시앙즈의 후예들이 진을 치고 서서 손님들을 기다린다.

비좁은 후통(胡同, 골목)을 질주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원조인력거에서부터 오토바이, 미니자동차처럼 개조된 신형인력거까지 그 모습은 다르다. 하지만 호객을 통해 손님을 끌어 모으고 흥정을 통해 값을 결정한 뒤, 등 뒤에 손님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질주하는 모습은 70년 전 소설 속의 루어투어시앙즈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도시의 가장 밑바닥을 훑으며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력거꾼의 삶 또한 변함이 없지만 빈부격차가 커진 오늘날에 느껴지는 상대적인 빈곤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고 있다.

시앙즈가 군인과 형사에게 인력거와 돈을 빼앗겼다면 오늘날 인력거꾼들의 ‘청관(城官)’이라 불리는 도시 관리 단속반들에게 붙잡혀 생계수단인 인력거를 빼앗기고, 또 벌금 2000위엔(24만원)을 내야 하는 신세에 놓였다.

그나마 아무나 베이징에 와서 돈을 모아 인력거를 사면 떳떳하게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던 시앙즈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시당국의 허가증이 없으면 영업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인력거꾼들의 과속과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율이 높다는 것이 이유이다.

급속한 현대화로 인해 후통이 사라지면서 후통 관광의 가이드 역할을 해오던 인력거꾼들도 하나 둘 자리를 잃고 있다. 또 교통흐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전거도로가 사라지면서 인력거꾼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낙타는 죽어서 가마를 탄다’고 한다. 평생을 자신의 피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낙타처럼 일만 하다가 죽어간다. 현대화에 밀려나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인력거꾼들 또한 다름 아닌 ‘루어투어(駱駝,낙타) 시앙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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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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