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급진전되면 남한 소외될 수도 있다"

정세현 전 장관 강연... "외교·안보 대통령 나와야"

등록 2007.03.08 13:02수정 2007.03.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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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7일 밤 서울정책재단 월례특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7일 밤 서울정책재단 월례특강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경


@BRI@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자칫하면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역이 되고 한국은 뒤에 남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전 통일부 장관은 7일 서울정책재단의 초청을 받아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이럴 경우 민족사적 정통성과 관련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고 새로운 남남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체제 협의에 있어 주역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당사자 원칙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정상회담은 필수적"이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체제의 주역은 남과 북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18일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회의 기간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같이 한국 전쟁의 공식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며 "이게 한국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미국이 (북한과) 할테니 한국은 참관할 수 있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런데 부시 대통령의 사고 방식으로 볼 때 미국이 먼저 할테니 한국은 그 옆에 와서 있어도 좋다는 얘기같다, 이게 문제다"라며 "부시의 하노이 발언으로 볼 때 미국이 주역이 될 가능성이 있고, 그 증거는 이번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한 실무그룹 접촉에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 5~6일 뉴욕에서 관계정상화를 위한 1차 실무접촉을 열었다. 이 때 북한은 연락사무소 없이 바로 관계정상화를 하자는 입장을 제시했다. 또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메커니즘'을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은 정식 수교전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중간단계를 거쳤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것이 1972년인데 미중 정식 수교는 1979년에 이뤄졌을 정도로 오랜 기간이 걸렸다.


지난 2000년 북미는 한창 가까워졌으나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를 놓고 양측이 논란을 벌이다 결국 수교에 실패했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이 연락사무소 단계를 생략하자고 한 것은 그만큼 빨리 북미 수교를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번 1차 실무그룹 접촉에서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나 대 적성국 교역법 대상 제외 문제 등의 논의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북미는 이런 예상을 뛰어넘어 평화협정 체제 문제까지 논의했다. 그만큼 진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북미가 주역되면 새로운 남남 갈등 발생"

정 전 장관에 따르면 그동안 한국은 북미간의 평화협정을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남북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2+2' 체계로 갈 때 앞의 2가 반드시 남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는 군사적 긴장 완화 뿐 아니라 한국이 끼지 못한다면 민족사적 정통성의 훼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정 전 장관은 "2+2에서 앞의 2는 반드시 남북이 되어야 한다고 한국은 고집을 부려왔고 상당기간 미국도 동의했다"며 "그런데 갑자기 미국이 이런 식으로 나왔다, 미북 관계가 상당히 빨리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은 반갑지만 평화협정 체결과정에서 누가 주체가 되는가가 중요한데 잘못하면 새로운 남남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실론자들은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뒤로 빠지고 북미 관계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성되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명분을 중시하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미국은 언제든 옳다고 하던 사람들도 왜 우리가 뒤에 남느냐며 화를 내게 되어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이런 상황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체제 협의 주역 문제, 남북당사자 원칙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정상회담이 필수적"이라며 "한반도 평화체제의 메인앵커(주역)는 남과 북이라는 점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과 관련 그는 "이 전 총리가 특사 자격으로 간 것 같지는 않지만 남북 관계와 관련해 상당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정상회담은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우리는 한반도 평화체제에 있어 최소한 남북+북미+한중 구도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구도의 연장선상에서 평화체제의 협의가 시작되어야 우리가 객체로 전략할 여지가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북한 불변론이나 기계적 상호주의 입장을 견지해서는 북한의 대남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평화체제 주역 문제를 대처할 수 없다"고 본 그는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이 '부시가 배신했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이 항상 대북 강경책을 쓸 것으로 봤던 사람들은 부시 정권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니 아노미 상태가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차기 대통령, 한미 관계에 대해서도 식격 높아야"

한편 정 전 장관은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과정에서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한마디로 요즘 대세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띄운 '경제 대통령'이 아니라 '외교·안보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차기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해) 경제다 뭐다 하는데 앞으로 5년동안 상당히 중요한 문제들이 결정되어야 한다"며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경제정책은 일정 따라서 가면 되지만 상대가 있는 외교나 북한 문제는 국가의 명문을 좌우하기 때문에 머리를 복잡하게 굴려야 한다"고 운을 뗐다.

부동산 잘 잡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에 이르러도 남북관계가 잘 안되면 결국 경제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그는 "경제가 중요하면 중요할 수록 안보에 대한 식견이 높은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며 "경제 문제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전문가에게 맡겼다, 경제문제는 여론조사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과 북한을 상대로 하는 문제는 미국과 북한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여론조사 할 수도 없다, 대통령이 예지를 가지고 외로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이 분야에 대해 기본적 소양이 높아야 하고, 전문가들의 얘기를 듣고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할 수 있는 지적(intelligent)인 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독일 통일은 미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차기 대통령은 대북 문제 뿐 아니라 한미 관계도 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미 관계는 협조하면서 경쟁해야 하는 양면성이 있다, 우리가 미국과 협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따라갈 수는 없다"며 "다음 대통령은 미국이 기분 나쁘지않게 하면서 일을 처리하는 기술(스킬)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미국을 다루는데 있어 김대중 전 대통령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며 "자기 하고싶은 일 다 하면서 미국 기분나쁘지 않게 잘 다뤘다"고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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