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 아니라 아는 자의 것

[서평] 김병기의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등록 2007.03.09 13:46수정 2007.03.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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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중국이 헤이룽장성의 경도성 발해왕궁 유적 등을 한창 복원중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학술을 빙자한 정치적 프로젝트라 할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광개토대왕비에 이어 발해유적마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 위한 조처임이 확실시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기사를 보면 대개 우리 역사학자들은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느냐, 열 받기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안하지만, 머 그냥 그런가보다 여기며 무심히 지나쳤다. 내놓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역사에 관한한 나는 늘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거대하고 폭력적인 시간의 독재를 바라보는 구경꾼, 방관자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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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고재

역사 혹은 역사왜곡에 무관심을 지나쳐 무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내가 그제 어제 꽤 집중해서 읽은 책이 있다. 평소 즐겨 읽는 소설도 아니고 논픽션도 아니고 사진집이나 화집도 아닌, 한국고대사를 다룬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라는 책이다. 광개토대왕 비문 변조를 천착해 들어간 이 책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서예학' 이론을 원용하고 있는데, 과문한 탓인지 이런 식의 접근방식이 내게는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비문 변조에 대한 의구심 역시 역사적 사료를 통해서가 아니라 저자의 느낌, 손끝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서예학자이자 서예가인 저자 김병기는 비문 글씨를 베껴 쓰던 중 글씨체가 어느 부분에 이르러 흐트러지는 듯한, 앞에서 이어져오던 서체의 리듬이 흘러가다 말고 콱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구체적으로 그 느낌이 비문변조라는 착상으로 구체화되는 건 이진희라는 재일사학자의 학설을 접하면서였다.

일본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병합하는 데에 있어 정당성으로 내세웠던, 한반도 남부를 4~6세기 경에 일본이 지배했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일본서기 같은 일본인이 생산한 문서가 아니라 고구려에서 만든 금석문에서 입증할 수 있지 않느냐며 그 증거로 광개토대왕 비문의 신묘년 기사 내용을 내세우고 있었다.

비문에서 직접 찍은 탁본이 아니라 외곽선만 그린 다음 먹을 덧칠하는 쌍구가묵본에 근거한 신묘년(서기 391년)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屬民)이었다. 그래서 줄곧 조공을 해왔다. 그런데 일본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XX와 신라를 깨부수어 (일본의) 신민(臣民)으로 삼았다."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이 신묘년(辛卯年, 391년) 기사에 대해 한국이나 북한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했으나 그 반론은 일본이 갖고 있는 쌍구가묵본에 근거한 해석의 차이에 그쳐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진희가 비문이 변조되었다는 학설을 들고 나와 일본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나선다. 이진희는 특히 변조 의혹이 있는 글자가 '도해파(渡海跛)'임을 당시 정치역학적인 인과관계를 짚어가며 밝혀내고 있다.


불과 세 글자! 4세기 후반의 역사뿐만 아니라 근대 동아시아에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진희의 변조설을 접하는 순간, 김병기는 '도해파(渡海跛)' 이 세 글자가 바로 비문을 베껴 쓸 때 손끝의 동작이 멈춰지면서 흐름이 막혔던 부분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걸 알고 경악한다. 정황증거라 할 이진희의 변조설을 접한 저자는 이후 서예학이라는 이론의 틀을 바탕으로 비문 전체를 채운 서체의 특징을 분석하고, 변경된 부분을 추적해내고, 원래 거기에 있었던 글자까지 유추해 냄으로써 원래 비문의 뜻을 복구해 낸다.

@BRI@'날획', '들획' 등 글자 속에 있는 획의 뻗침과 구부러진 정도, 이를 통한 서체의 해석에 더해 사용된 한자어의 뜻과 문맥, 변조의 용이성을 들어 저자는 '도해파(渡海跛)'의 원래 글자는 '입공우(入貢于)'일 것이라고 추정해 낸다. 그러자 비로소 지난 한 세기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것은 물론 역사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았던 신묘년 기사가 설득력 있게 재해석되면서 일본의 사기에 능욕을 당했던 비문의 참뜻이 되살아난다.


서예학이라는 학문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비문의 진실을 규명함으로써 일본에 의해 사라질 뻔한 고구려인의 위용과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있는 이 책,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는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일본이 저지르는 역사왜곡에 정의감이 넘쳐흘러 덮어놓고 흥분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열불을 내더라도 뭔가 좀 알고 내는 게 남들 보기 민망하거나 위태하지 않고 일본을 까는(!) 여론형성에도 영양가 있게 작용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 아니라 아는 자의 것'이라는 저자 김병기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이글 모두에서 털어놓았듯 역사에 대한 관심보다는 접근방식의 새로움에 호기심을 느껴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던 독자로서 나는 20여년간 역사왜곡의 의문을 파헤치는데 매달린 저자의 치열한 학문정신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일말의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음을 덧붙여야겠다.

자신의 전공이나 연구분야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남다른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모를까, 서예학자로서 그리고 서예가로서 세심하고 치밀하게 서술하고 있는 미학적 고찰과 분석과 해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이 책을 이해할 독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만 역사문외한의 기우일 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내친김에 헛소리 한마디를 더하자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 한쪽에서는 엉뚱한 상상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림을 그려나갔다. 가령 오랫동안 그 정체가 감춰져온 사케(광개토대왕비문의 쌍구본을 일본에 가져온 스파이) 같은 인물의 후손을 등장시키고, 이진희의 연구를 논문주제로 선택한 미모의 재일동포 대학원생 정도가 나오고, 서예가 집안의 후손인 주인공이 서예학자이며 비문 해석의 열쇠를 쥔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내지 실종을 당하면서 스토리가 시작되는…. 추리기법을 원용한 소설로 풀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눈치 빠른 이들이라면 이쯤에서 '장미의 이름'이나 '다빈치코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근데 또 아는가, 엄청나게 역량 있는 글발의 소유자가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의 재가공에 성공한다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르는 일인 걸!

사라진 비문을 찾아서 - 글씨체로 밝혀낸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김병기 지음,
학고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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