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는 할아버지가 두 분 계셨다

[해외리포트] 삶, 문화, 역사를 돌아보는 여행길, 송판·황롱 트레킹 (상)

등록 2007.03.10 11:55수정 2007.07.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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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송판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난 체험으로 티베트의 삶과 문화, 라마불교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말 트레킹. 송판의 말 트레킹은 세계 10대 트레킹 중 하나다.

송판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난 체험으로 티베트의 삶과 문화, 라마불교의 진수를 접할 수 있는 말 트레킹. 송판의 말 트레킹은 세계 10대 트레킹 중 하나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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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각박한 일상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을 꿈꾼다. 톱니바퀴처럼 꽉 막힌 도시생활과 복잡하고 스트레스에 억눌린 현대문명 속에서 자연의 대지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하나의 청량제와도 같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쓰촨성은 새로운 관광대국으로 등장하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여행지가 많다. 특히 진주같이 아름다운 자연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쓰촨으로의 여행은 우리의 삶과 영혼을 되돌아보는 여정이다.

비록 뒤떨어진 여행 인프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현지인의 바가지와 불친절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여행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또다른 경험이다.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깊은 심지를 지니고 떠나는 여행길은 지친 몸과 마음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제갈량·유비·관우·장비 등 <삼국지>의 영웅호걸이 촉한을 건국한 쓰촨성 수도인 청두. 그 남쪽으로는 중국 불교 4대 명산이자 보현보살의 거처였던 어메이산(峨眉山)과 세계 최대의 석가모니석상인 러산(樂山)대불이 있다. 북쪽으로는 중국 도교의 발상지인 칭청산(靑城山)과 기원전 3세기에 건설되어 지금도 그 기능을 훌륭히 발휘하는 고대수리시설 두장옌(都江堰)이 자리잡고 있다.

청두 동남쪽에는 한국에 천하제일 등축제를 통해 알려지고 세계 3대 공룡박물관 중 하나가 있는 쯔공(自貢)과 영화 <와호장룡>에서 장쯔이·저룬파 두 주인공이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현란한 칼싸움을 벌인 슈난주하이(蜀南竹海)가 있다. 한족이 주로 거주하는 쓰촨 동부지역의 유명한 관광명소만도 열 손가락이 모자를 정도다.

a 2000년 나는 어른이 된 후 어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둘만의 추억어린 여행지로 지우·황을 선택했다.

2000년 나는 어른이 된 후 어머니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둘만의 추억어린 여행지로 지우·황을 선택했다. ⓒ 모종혁

어머니와 함께 찾았던 추억어린 여행지, 지우·황

@BRI@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지닌 곳 중 하나인 지우자이꺼우(九寨構)·황롱(黃龍, 이하 '지우·황')과 고산지대의 늪지대 초원인 루얼가이(若爾盖) 일대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자연절경이다. 한 때 강성했으나 지금은 사라지는 소수민족 창(羌)족의 삶과 문화를 볼 수 있는 미야뤄(米亞羅)도 여행마니아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마다 8월 1일 티베트 캄지역 최대 축제가 열리는 리탕(理塘)과 샹그릴라의 후보지로 손꼽혔던 타오청(稻城)의 아름다움은 숨은 보석과 같다. 한국에 위성발사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창(西昌)시 일대에 거주하는 이(彝)족의 독특한 생활과 풍습도 찾는 이를 매혹시킨다. 쓰촨 내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서부지역의 볼거리는 더욱 풍성하다. 이런 쓰촨을 주마간산식으로 여행한다 하더라도 한 달 넘게 걸린다.

한반도보다 두 배나 큰 면적, 인구 9천여만명이 살고 무궁무진한 여행자원이 있는 쓰촨성에서 내가 특별히 애정을 갖고있는 곳이 있다. 바로 1997년 첫발이 내딘 이래 네 차례나 찾은 '지우·황'이다.


2000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와 두 번째로 지우·황을 찾았다. 그녀와 함께 한 5일간의 지우·황 여행은 내가 장성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둘만의 특별한 여행이었다.

난 더이상 그녀와의 달콤한 여행을 꿈꾸지 못한다. 내가 나이가 먹은 탓도 있지만, 그녀가 너무 늙고 병까지 들어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해발 4300m 고산에서 고산병 증세를 보였던 중국 젊은이들보다 정정했던 그녀. 해발 3000m가 넘는 전경 16㎞에 달하는 황롱의 가파른 산길을 단 1시간여만에 올라 같이 동행한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던 그녀.

세월의 깊이만큼 진해가는 주름살이 내 마음을 더욱 짠하게 하는 그녀는 바로 내 어머니다.

a 송판에 있는 재건된 성문 앞의 티베트 송첸감포왕과 당나라 문성공주 석상. 이 석상 설명판에는 송첸감포왕이 송판에서 당나라 대군을 물리친 역사는 사라지고 티베트·당과의 화합의 역사만 기재되어 있다.

송판에 있는 재건된 성문 앞의 티베트 송첸감포왕과 당나라 문성공주 석상. 이 석상 설명판에는 송첸감포왕이 송판에서 당나라 대군을 물리친 역사는 사라지고 티베트·당과의 화합의 역사만 기재되어 있다. ⓒ 모종혁

영광된 티베트의 역사가 숨겨진 송판

작년 가을 4년만에 다시 찾은 지우·황의 관문인 송판(松潘)은 놀라울 정도로 변해있었다. 옛 이름이 '송주'로 불렸던 송판은 한족과 티베트인이 뺏고 뺏기는 전쟁을 되풀이한 접경 지역이었다. 군사적 요충지로 송판 곳곳에는 고대에 축성한 성곽이 남아있다.

내가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송판은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그 뒤 중국 최고의 관광지로 발돋움한 지우·황의 변화만큼 송판의 발전은 눈부셔서, 오늘날 송판은 중국의 여느 중소도시 못지않게 번화해졌다.

7세기 초 노예제를 바탕으로 봉건영주들이 난무했던 티베트에 불세출의 민족영웅 송첸감포(松贊干布, Songtsen Gampo)왕이 출현했다. 냉철하고 영민하며 비전을 지닌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티베트 전역을 정복, 티베트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했다. 당시 티베트와 인접한 당나라는 태종에 의해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면서 세계 대제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통일의 과업을 완수한 송첸감포왕은 당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여 국가통치제도를 확립하려 했다. 이에 사신을 파견하여 당 태종에게 정중히 구혼을 요청하지만 당의 지방관은 사신의 방문조차 인정치 않고 송주에 억류시켰다.

분노한 송첸감포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송주에 내려와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당 수도인 장안까지 위협했다. 이에 당 태종은 여러 차례 대군을 파견하지만 당군은 용맹한 티베트군에게 줄곧 대패를 당했다.

강대한 티베트의 역량에 놀란 당 태종은 회유책으로 애지중지하던 수양딸 문성공주를 시집보내고, 송첸감포왕은 직접 캄(khams)지역 고원까지 나와 맞이했다. 이 세기의 결혼을 통해서 티베트에는 불교가 전래되어 라마불교가 창시되고 제지기술, 문자창달 등 티베트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꽃피게 된다.

금세기 초 복원된 송주고성과 그 앞의 송첸감포왕과 문성공주 동상 설명판에는 티베트군이 당군을 섬멸한 과거 송주의 역사는 없다. 중국정부의 교묘하고 치밀한 티베트 역사말살정책인 서남공정에 따라 오직 당과 티베트의 문물 교류, 중국 문화의 티베트 전파만을 강조하고 있다.

a 이름 모를 한 라마불교 사원을 지나는 마부 마치취안. 그는 우리와 험난 1박 2일의 여행길을 동행했다.

이름 모를 한 라마불교 사원을 지나는 마부 마치취안. 그는 우리와 험난 1박 2일의 여행길을 동행했다. ⓒ 모종혁

말에 의지하여 들어간 웅장한 티베트의 산하

나는 이번에 송판에서 또다른 체험을 했다. 세계 10대 트레킹 중 하나로, 티베트인의 삶과 문화, 라마불교의 깊은 정신세계와 심오한 진리, 황롱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함께 즐기는 말 트레킹을 한 것이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중국 쓰촨성>이라는 르포 프로그램을 제작중인 국내 방송사 홍현진 PD와 마지막으로 송판을 찾은 나는 촉박한 취재 일정 때문에 1박2일로 말 트레킹을 경험했다. 당시 우리는 이미 1주일을 훌쩍 넘긴 취재와 어메이산에서 얻은 감기, 전날 청두에서 송판에 이르는 7시간의 산악도로를 달린 뒤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다행히 송판의 날씨는 취재 이후 처음으로 맑고 청명하여 우리의 전투 의지를 다시 끓여 올렸다. 송판에서 가장 오래된 트레킹 전문업체인 '해피 트레일'(Happy Trail)을 통해 우리는 여러 가지 요구사항을 더한 뒤 마부 한 명, 말 세 마리와 함께 길을 떠났다.

마부 마치취안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송판에서 태어나고 자란 회족으로, 한 때 말과 함께 하는 생활이 싫어 외지로 나가 일하기도 했지만 송판의 대지가 그리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슬람교도인 그와 달리, 그의 아내는 티베트인으로 그들 부부는 종교와 문화가 전혀 다르다. 그는 "캄 지역 티베트인들은 중국인과의 교류가 많아서 돼지고기를 즐겨먹는데 음식문화의 차이가 우리 부부를 가끔씩 곤혹스럽게 한다"고 멋적어 했다.

제작하는 여행 프로의 특성상 말 트레킹에서 우리는 두 대의 HD 카메라로 이용해 촬영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홍 PD의 모습을 내가 계속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때 중국공산당의 홍군이 대장정의 피로를 풀었던 분지인 송판을 조금만 벗어나자 바로 거대한 고원지대가 접어든다. 가파른 산길을 타고 있는 말에 의지해서 오르는 티베트의 산하. 평지가 아닌 산을 오르내리는 말 위에서의 이동은 그리 쉽지는 않다.

a 아담한 샹니파사원의 대웅전.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사찰은 주변 티베트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재건했다.

아담한 샹니파사원의 대웅전.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사찰은 주변 티베트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재건했다. ⓒ 모종혁

사가파 사원에서 발견한 거루파의 달라이 라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짝을 이뤄 말 트레킹에 나선 외국 관광객들, 물건을 팔고 사기 위해 말에 의지하여 길을 나선 티베트 원주민들. 이들과 짧은 인사를 건네며, 나는 도시의 답답하고 메마른 생활에서 훌훌 벗어나 티베트고원의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가 됐다.

2시간여의 산길을 오르내린 끝에 처음 닿은 티베트사원은 라마불교 4대 종파 가운데 하나인 사가(薩迦, Sakya)파의 학당이었다. 학식이 풍부하고 쉰 살이 가까운 딴진 스님이 이끄는 샹니파사원은 크지 않지만 아담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사찰이자 학교이다.

사가파는 사원 벽을 홍·백·남색으로 칠하여 꾸미는 관습 때문에 '화교'(花敎)라고도 불리는데, 11세기 티베트 사가지방에서 궁치지에부가 창시한 종파다. 사가파는 다른 라마불교 종파의 달리 승려들이 혼인하여 자식을 두도록 했다. 허나 자식을 낳은 뒤에는 배우자와 함께 지내지 못하도록 했다. 사가파는 사찰의 주지를 가족 내에서 찾아 잇도록 하는 독특한 제도도 마련했다. 즉, 종교와 정치 두 가지 권력을 한 가문에 집중시킨 전범을 만든 것이다.

a 티베트인들은 라마승려가 되면서 불교 경전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다. 일반 학교처럼 학승들은 짧게는 7, 8년에서 길게는 10여년동안 라마승이 되기 위한 수련을 거친다.

티베트인들은 라마승려가 되면서 불교 경전에 대해 제대로 공부한다. 일반 학교처럼 학승들은 짧게는 7, 8년에서 길게는 10여년동안 라마승이 되기 위한 수련을 거친다. ⓒ 모종혁

원나라 때 세력이 가장 컸던 사가파는 5대 교주인 빠스빠가 원 황실의 국사가 되면서 티베트의 실권을 장악한 정교합일의 정권까지 성립시켰다. 하지만 14세기에 등장한 거루(格魯, Gelug)파에 의해 힘을 잃은 뒤, 오늘날 사가파는 사가와 쓰촨성 더거(德格) 일대에만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는 '계율을 잘 지킨다'는 거루파의 지도자이다. 거루파는 승려들이 누런 모자와 옷을 쓰고 입기에 '황교'(黃敎)라고도 불린다. 거루파는 가장 늦게 형성된 종파지만, 승려들에게 엄격한 계율과 불경 공부를 강조하고 규율화된 조직체계를 갖추어 오늘날 라마불교를 대표하는 종파로 발돋움했다.

딴진 스님의 개인 처소에 들어간 나는 한 장의 큰 사진을 보고 얼어붙었다. 인도로 망명한 근엄한 현 사가파 교주와 함께 나란히 걸려있는 달라이 라마 14세의 온화한 모습 때문이었다. 딴진 스님은 "종파가 다르지만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인민의 마음을 한데 묶는 지도자이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간직하는 것이 불법이긴 하지만 티베트 본토와 달리 캄 지역은 이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지 않다"면서 "공중장소가 아닌 개인 처소에 해외로 나간 라마불교 지도자들의 사진을 걸어놓는 것에 대해 중국 당국도 어느 정도는 눈감아준다"고 말했다.

a 날이 어두워지자 들판에 방목했던 양떼를 집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닝마딩진의 어머니.

날이 어두워지자 들판에 방목했던 양떼를 집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닝마딩진의 어머니. ⓒ 모종혁

a 티베트 가정에서 난로는 중요한 집안 생활도구이다. 난로를 중심으로 있는 한 공간은 식당 및 부엌이자 거실로 집안 식구들의 쉼터 역할도 한다.

티베트 가정에서 난로는 중요한 집안 생활도구이다. 난로를 중심으로 있는 한 공간은 식당 및 부엌이자 거실로 집안 식구들의 쉼터 역할도 한다. ⓒ 모종혁

직접 맞닥뜨린 티베트의 전통 혼인풍습, 일처다부제

불쑥 방문한 불청객을 따뜻이 맞아준 딴진 스님과 그의 제자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한 시간여를 말에 기대어 마부 마 씨가 소개한 황롱으로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자리잡은 한 인가에 도착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오후 늦게 우리를 맞이한 닝마처린씨의 집에는 한 분의 할머니와 30·40대의 세 여성, 세 아이들만이 있었다. 오직 티베트어만 구사하는 여자들과 달리 열다섯 살인 닝마딩진은 학교에서 배운 중국어로 나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닝마딩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송판에 일이 있어 나가고 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헌데 이상한 것은 할아버지가 두 분 계시다는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그 이유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티베트의 전통 혼인풍습인 일부다처제, 일처다부제의 유산 때문이다.

a 두 남편을 둔 닝마처린의 어머니. 그는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어느 어머니보다 온유했고 자상했으며 행복해 보였다.

두 남편을 둔 닝마처린의 어머니. 그는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어느 어머니보다 온유했고 자상했으며 행복해 보였다. ⓒ 모종혁

평균해발 3000m 이상의 거친 자연환경, 척박한 생활조건, 높은 유아사망률, 이민족과의 잦은 전쟁, 기형적인 봉건노예제 사회체제 등 악조건 속에서 티베트인들은 종족 번식의 대의를 위해 특별난 결혼제도를 마련했다. 먹을 농산물이 적고 야크나 양을 방목하는 생활환경은 가족의 단결을 위해서도 한 명의 아내를 공유하는 일이 흔했다.

오늘날 한국인의 시각에서 볼 때 야만적이라 느낄 수 있는 티베트인의 혼인풍습을 나 또한 처음 접하게 됐다. 그동안 티베트 본토와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쓰촨, 윈난(雲南) 등 티베트인이 사는 수많은 곳을 다녔지만 일처다부제의 가족을 만난 적은 없었다.

닝마딩진의 말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내 나는 그들의 문화와 풍습은 존중하기로 했다. 생존을 위해 나름대로의 혼인방식을 택한 사람들. 우리는 자신만의 눈과 느낌으로, 현대의 시각에서 티베트의 풍습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삶과 의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송판 #황롱 #쓰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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