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은 성불균형을 바로 잡자는 것"

[인터뷰] 김선욱 법제처장

등록 2007.03.12 14:54수정 2007.03.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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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헌정 사상 최초 여성 총리가 아름다운 퇴장을 한 3월 7일,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또 다른 ‘최초 여성’ 수장을 마주했다. 바로 첫 여성 법제처장이자 법여성학의 권위자인 김선욱 법제처장이다.

올해로 취임 3년째를 맞는 그는 지난 2월 올해 주요 업무계획 보고에서 “성차별적 조항 360여개와 장애인 차별 조항 등 불합리하거나 사회 변화에 맞지 않는 법제도를 적극 발굴해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 단계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호주제 폐지를 근거로 자녀가 원칙적으로 아버지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한 민법 781조가 대표적 성차별 조항으로 거론되자 찬반 논란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기도 했다.

“찬반 논란이 뜨거운 것을 보고 ‘아, 이것이 문제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민법은 전통이나 문화로 포장되어 있어 한순간에 바꾸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요. 법은 사회변화를 담아내는 동시에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민법 781조는 관련부처인 여성가족부나 법무부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지만 우선적으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요.”

2005년 1월 취임 당시 “모든 법령에 성인지 관점이 투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힌 그의 포부는 이후 하나씩 결실을 맺으면서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법률 문화를 만들어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통계청의 모든 자료에 남녀분리통계를 원칙으로 하도록 한 것, 혁신도시개발계획에 가족친화 시설을 설치토록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김 법체처장은 ‘평등사회를 위한 법령 제·개정’에 ‘국민에게 다가가는 쉬운 법령 서비스’, ‘우리 법의 세계화로 국가경쟁력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더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조용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로 부처 업무와 비전을 자신 있게 쏟아냈다.

- 취임 당시 성인지 관점을 모든 법령에 투영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동안 어떤 성과가 있었나?
“우선 내부 법령입안 심사 기준에 성인지 관점을 집어넣어 10년 만에 바꾸었다. 아울러 법령을 입안하고 심사할 담당 공무원들에게 성인지 관점을 불어넣기 위해 1년 동안 양성평등 교육을 집중 실시했다. 형식적 성평등에만 매달려왔던 의식을 실질적 성평등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조치였다.

여성의 삶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가 없으면 양성평등 관점이 반영된 법령 입안과 심사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법제처 공무원들의 의식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 정부부처가 성인지 정책을 위해 성별영향평가를 하는 것처럼 법령에 있어서도 남녀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입법영향평가를 도입할 계획이다.”


- 아직 법령 곳곳에 여성을 차별하는 법과 제도가 산재해 있다. 성평등 실현을 앞당기기 위해 여성에 대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해온 것으로 안다.
“성평등은 여성 우대가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불균형을 맞추는 성주류화 조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차별적인 제도나 의식으로 인해 여성들이 능력을 개발하거나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다면 한시적인 조치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적극적 조치는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 여성 참여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자생적인 힘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만 만들어놓고 그것을 달성하자고 해서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목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책임 있게 이끌어가는 정책 담당자가 꼭 필요하다. 과거 대학에 있을 때, 모든 정부부처에 여성정책담당관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 참여정부 장관급 여성 공무원이 단 2명에 그치고 있다. 고위직 여성을 늘리기 위한 적극적 조치는?
“공직에서 성별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 양성평등 채용목표제, 여성관리자 임용목표제 등 여성 공무원 인사정책이 도입·시행되고 있다. 그 결과 여성 공무원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법제처의 사무관 비율을 보더라도 여성이 3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이 정책 결정권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부부처 전체에서도 고위직 여성은 소수이지만 법제처 내에서도 고위직은 나 한 사람뿐이다. 남성 중심의 공직사회에서 여성이 평등한 조직문화를 창조하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나간다면 분명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본다.”


- 국민 중심의 법령 서비스를 펼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정책과 사업은 무엇인가?
“2005년 법령해석관리단을 만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법제지원단을 신설했다. 법령해석관리단을 통해 지자체와 일반인에까지 법령 해석 서비스를 확대한 결과 연평균 15건 정도에 그쳤던 법령 해석 요청이 연간 330건으로 20배 가까이 늘어났다. 법제지원단은 의원 입법이 늘어남에 따라 정부예산과 정책에 맞도록 조정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또 일본식 용어, 한자로 된 어려운 법률 용어를 한글로 알기 쉽게 바꾸는 사업을 통해 국민들의 법 접근성을 높였다. 여성들에게 입법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 이외 행정심판 포털사이트 ‘권리누리’를 활성화하여 국민들이 온라인으로 직접 행정심판을 청구하고 그 처리 결과를 신속하게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

- 2년차에 접어든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5개년 사업이 이번에 첫 결실을 맺었는데?
“지난해 70개 법률을 정비해 국회에 제출했는데, 2월 임시국회 때 만장일치에 가까운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올해부터 연간 250건씩, 모두 1150여건의 법률을 쉽게 풀어쓸 계획이다.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은 기존 전문가 중심의 법령문화를 수요자인 국민 중심의 법령문화로 바꾸어나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마지막으로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법은 정의롭다는 국민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다. 혹여 사회가 정의롭지 않더라도 법은 정의를 유도하는 기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여성 관련법은 이 기능이 중요하다. 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들어 미리부터 법 실효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법과 제도가 모든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법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이 많아졌으면 한다. 평등이냐 차별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이 얼마나 반영되고 또 영향을 주는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양성평등 사회는 앞당겨질 것이다.”

진행 : 이미경 편집국장
정리 : 주 진 기자
사진 : 노민규 기자


김선욱 법제처장은?

1952년 서울 출생으로 이화여대 법대에서 행정법(공법)을 전공하고, 독일 콘스탄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첫 직장인 한국여성개발원에서 여성정책을 연구하면서 적극적 조치로서의 여성할당제를 주장했고, 정부부처의 여성정책담당관 제도 시행을 주장해왔다.

이후 모교인 이화여대 법대로 자리를 옮겨 법여성학의 초석을 닦았다. 올 2월, 이화여대에서 그의 가르침을 받은 법여성학 박사 1호가 배출되는 등 후학들이 줄이어 탄생하고 있다.

2005년, 헌정사상 최초 여성 법제처장(제26대)으로 취임, 48년 남성 법제처장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취임 3년째를 맞는 그는 올해 법제처의 정책 방향을 ‘국가 역량 강화를 위한 법제 인프라 구축’으로 정하고, 이를 위해 △좋은 법 만들기 △고객 중심의 법령정보 서비스 △정부입법 총괄·조정·지원 역량 강화 △신속하고 공정한 행정심판제도 운영 △고품질의 법령 해석 서비스 △법제 역량 강화를 위한 효율적 인력조직 체계 구축 등 6대 전략목표와 17개 성과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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