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라고 다 같은 쌀이 아니다

[서평] <강대인의 유기농벼농사>

등록 2007.03.13 20:34수정 2007.03.1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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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책 표지도서출판 들녘
'좁쌀 한 알' 또는 '무위당'이라는 아호를 쓰던 장일순 선생이 쓴 책 중에는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것이 있다. 일본의 자연농 철학자 '후쿠오카 마사노부'도 같은 의미로 책 이름을 붙인 것이 있는데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다.

이들은 쌀 한 톨 속에는 우주가 담기는 법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주가 담긴 쌀을 또 다른 작은 우주인 사람이 먹는다. 만물을 하늘이라 하고 이 하늘을 내 속에 모시기만 하면 나 역시 하늘이 된다는 동학에서는 이천식천(以天植天: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이라고 했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전남 강진에 살고 있는 농부 강대인이다. 강대인은 작물에도 사주팔자가 있다고 본다. 해와 달과 별의 운행과 작물의 파종과 추수를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0년 전 독일의 신지학파 선구자면서 교육학자요 생명역동농법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가르침대로 농사를 짓는 강대인은 최근에 그의 필생의 역작 <강대인의 유기농 벼농사>라는 책을 냈다.

그는 태양계의 5행성인 목성은 식물, 그 중에서도 특히 벼과에 큰 영향을 주는데 같은 벼과인 대나무 잎이나 갈대의 잎을 논에 넣어주면 나락이 잘 자라고, 논에 대나무를 듬성듬성 꽂아두면 목성의 기운을 더 잘 받아들이는 안테나가 된다고 주장한다.

56쪽 강대인씨가 종자로 쓸 볍씨를 터는 모습. 충격을 주지않고 고무신으로 슥슥 문질러 털고 있다.
56쪽 강대인씨가 종자로 쓸 볍씨를 터는 모습. 충격을 주지않고 고무신으로 슥슥 문질러 털고 있다.도서출판 들녘
이런 주장을 접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옛날에 벼과인 버드나무를 논둑에 많이 심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 연관성이 조금은 수긍이 갈 것이다.


신기한 것은 슈타이너 박사가 100년 전에 천체를 관측해서 만든 농사력이 우리 조상들이 옛 농서인 <산림경제>에 기록해 놓은 음양오행에 따른 60갑자 농사력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강대인이 짓는 벼농사는 우주가 고스란히 담기는 유기농사다. 작물과 대화하며 자식 돌보듯이 농사를 짓는다. 씬나락을 받을 때는 나락에 푸른기가 남아 있을 때 낫으로 베어 홀태로 훑는다. 콤바인으로 강타 해 버리면 사람이 어릴 때 받은 충격이 평생 가듯이 볍씨도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약하게 자라고 병에도 잘 걸린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나락을 같이 사는 식구처럼 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는 자식 키우는 공부하는 셈 치면 참 좋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한 톨의 쌀 속에 왜 우주가 담겼다고 하는지, 이 책을 읽다보면 절로 이해가 된다. 마찬가지로 한 아이가 어떻게 잉태되고 태어나는지, 또 어떻게 자라야 건강하고 바람직한 청년이 되는지와 비교된다. 물론 이런 비교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진 몫이다.

59쪽. 직접 만들거나 구입 한 현미식초와 백야초 등으로 방제작업을 하는 유기농자재를 섞고 있다.
59쪽. 직접 만들거나 구입 한 현미식초와 백야초 등으로 방제작업을 하는 유기농자재를 섞고 있다.도서출판 들녘
동서남북이 있듯이 쌀도 현미가 있고 백미가 있는데 그 뿐 아니라 흑미와 청미 그리고 오방색 중에서 가운데를 의미하는 황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냥 먹던 밥상이 새로워 보일 수밖에 없다.

벼가 초기에 영양생장을 하다가 모를 내고 나서 두 달쯤 뒤부터는 생식생장기에 접어드는데 이때가 이삭이 맺히는 시기다. 영양생장기에 몸체를 잘 키워놓아야 알곡이 야물다는 이치는 사람의 어린 시절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원리와도 통한다.

첫 장은 벼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를 하고 있다. 벼의 종류와 특성들이 그림과 함께 있다. 두 번째 장에서는 파종에서 수확까지의 벼의 생장과정을 다룬다. 자급용 벼농사라도 지어 볼 생각이면 이 두 번째 장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고향이 시골인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논 한 뙈기를 이렇게 농사 지어 보라고 권해도 좋을 듯 싶다. 전통적인 조선의 농법에다 강대인씨가 농사지으면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외딴 섬까지 찾아다니며 종자를 구하고 농법을 연구하면서 적용한 농사법이라 힘이 덜 들고 성과는 좋아 보인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유기농단체인 '정농회'의 대표직을 맡았고 친환경 농민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석탑 산업훈장을 받은 경력이 말해주듯 벼농사에 대한 각종 유기농자재 만드는 법까지 이 책에 나와 있다. 마지막 장인 '생태 제초법'에서는 논에 농약을 치지 않고 풀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다.

귀농총서를 발행하고 있는 도서출판 들녘에서 나왔는데 사단법인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기획했다. 특히 집필은 같은 단체의 도시농업위원이자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를 번역했던 안철환씨가 맡았는데 그의 필력이 이 책에서 다시금 돋보인다.

(도서출판 들녘·8000원)

강대인의 유기농 벼농사

강대인 지음,
들녘,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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