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바람에 실려 왁자지껄 떠난 봄 나들이

쌍계사, 연곡사, 화엄사 돌아 화개장터까지

등록 2007.03.14 09:09수정 2007.03.1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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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섬진강에도 꽃샘바람이 불어댔다.
그날 섬진강에도 꽃샘바람이 불어댔다.김연옥
나는 지난 10일 직장 동료 둘과 통영여고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김건선 선생님 부부,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지도하는 조수미씨, 이번 학기부터 우리 학생들과 영어 수업을 하게 된 케빈 알스파(Kevin Alspaugh) 부부와 봄 나들이를 했다.

하동 쌍계사에서 새로운 감동이 밀려오다


오전8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먼저 하동 쌍계사를 향해 달리다 남강휴게소에 들러 따끈한 호떡을 먹으며 촐촐한 배를 채웠다.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쌍계사(雙磎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주차장에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10시 40분께였다.

나는 2004년 12월에 시작된 대웅전 보수공사가 지난 1월 말에 마무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서 자꾸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소소리바람에도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었다. 지난해 여름 지리산 삼신봉 산행 길에 잠시 들렀을 때 한창 대웅전 보수공사를 하고 있던 일이 문득 생각나서였다.

하동 쌍계사. 새로 단장한 대웅전(보물 제500호)이 보기에 좋았다. 대웅전 아래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다.
하동 쌍계사. 새로 단장한 대웅전(보물 제500호)이 보기에 좋았다. 대웅전 아래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있다.김연옥
쌍계사 가는 길에 김건선 선생님이 사 준 색다른 호떡 맛도 일품이었다. 어떻게 구웠는지 기름기 없이 담백하고 구수한 맛에 모두들 맛있다고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그렇게 10분 남짓 걸었을까. 어느새 쌍계사 일주문에 이르렀다. 우리는 금강문, 천왕문을 거쳐 우리나라 범패(梵唄)가 처음 만들어지고 이름난 범패의 명인들을 배출한 팔영루를 지나서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 앞에 섰다.

그것은 통일신라 후기의 선승(禪僧)인 진감선사를 기리는 탑비로 당대의 걸출한 문장가인 최치원이 그 비문을 짓고 글씨도 썼다.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 민족에 맞는 범패(梵唄)를 만든 진감선사 혜소는 범패를 통해 선 사상을 널리 알린 분이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구경하는 사람들. 아래 건물은 우리나라 범패를 있게 한 팔영루이다.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를 구경하는 사람들. 아래 건물은 우리나라 범패를 있게 한 팔영루이다.김연옥
진감선사대공탑비는 거북받침돌(龜趺), 머릿돌(螭首)과 몸돌(碑身)을 모두 갖추고는 있지만 비 몸돌에 금이 가고 깨어지기도 했다. 그 흠집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때 총탄의 흔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어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긴 보수공사 끝에 곱게 단장한 대웅전(보물 제500호)을 바라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생긴 모양 그대로 자연스레 놓여진 주춧돌에 맞춰 나무를 다듬어 세운 대웅전 기둥 하나에도 우리 조상의 세심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여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구례 연곡사에서 우리 역사의 비극을 보다


우리는 하동 쌍계사를 떠나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자리한 구례 연곡사(鷰谷寺,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로 향했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緣起祖師)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연곡사는 아늑하고 포근한 첫인상과는 달리 우리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과거 속으로 묻어 두고 있는 절이다.

정유재란 때 불탄 기록이 남아 있고,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킨 고광순 의병장이 연곡사를 본영으로 삼고 일본군과 싸웠던 1907년에도 불타 버려 잿더미가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 때 다시 폐사가 되어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그 절의 역사(役事)가 대부분 최근에 이루어졌다 한다.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모른다.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모른다.김연옥
우리는 대적광전을 둘러보고 곧장 동부도와 동부도비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연곡사 동부도를 보자 지난해 화순 쌍봉사(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놀러가서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의 정교한 아름다움에 폭 빠졌던 일이 떠올랐다.

쌍봉사 철감선사탑에 못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연곡사 동부도(東浮屠, 국보 제53호)는 통일신라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 모른다고 한다. 동부도의 윗받침돌에는 극락에 사는 새로 아름다운 울음소리를 지닌 가릉빈가를 새기고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 기와를 끝맺음 할 때 두는 막새기와까지 정교하게 표현해 놓았다.

연곡사 동부도비(보물 제153호). 받침돌 등에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연곡사 동부도비(보물 제153호). 받침돌 등에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김연옥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받침돌 등에 조각하고 등뼈까지 선명하게 표현한 동부도비(東浮屠碑, 보물 제153호)도 참 인상적이었다. 동부도 앞쪽에 있는 그 비는 몸돌은 없고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연곡사 북부도(국보 제54호).
연곡사 북부도(국보 제54호).김연옥
거기서 비탈진 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려 시대에 세운 것으로 여겨지는 북부도(北浮屠, 국보 제54호)를 볼 수 있다. 북부도는 동부도를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일 만큼 그 형태와 크기가 거의 같은데 분위기는 아주 달랐다.

웅장한 화엄사에서 왁자지껄한 화개장터로

우리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엄사 부근 식당에서 점심으로 맛있는 갈치 정식을 했다. 한국에 온 지 보름 밖에 되지 않은 케빈과 그의 부인 타이스(Thais Alspaugh)는 젓가락질이 서투른 건 말할 것도 없고 방바닥에 앉아서 식사하는 것부터 몹시 불편해 보였지만 즐겁게 우리와 어울렸다.

웅장한 구례 화엄사.  고색창연한 각황전(국보 제67호)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국보 제12호)이 있다.
웅장한 구례 화엄사. 고색창연한 각황전(국보 제67호) 앞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국보 제12호)이 있다.김연옥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화엄사(華嚴寺,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이른 시간은 낮 3시께. 화엄사의 경내에 들어서자 나는 가슴이 터질 듯한 감동이 일었다.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먼저 눈길을 끄는 각황전(覺皇殿, 국보 제 67호)은 2층의 다포식 건물로 내부는 위· 아래층이 트여 있다.

고색창연한 각황전 앞에는 높이가 6.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등(石燈, 국보 제12호)이 있는데, 통일신라 시대 후기에 유행했던 장구 모양의 특이한 기둥 형태를 볼 수 있었다.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 화엄사를 세웠다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 화엄사를 세웠다는 연기조사의 어머니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김연옥
만약 화엄사에 가서 연기조사의 어머니에 얽힌 전설을 지닌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35호)을 보지 않았다면 차라리 화엄사에 갔다고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그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인데 위층 기단을 꼭 눈여겨봐야 한다.

각 모퉁이에 기둥 삼아 세워 놓은 암수 네 마리의 사자들 가운데 두 손을 합장하며 서 있는 스님 상이 바로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 탑을 향해 꿇어 앉아 있는 스님 상은 석등을 이고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의 지극한 효성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화개장터에서 삶은 옥수수를 맛있게 먹던 케빈과 타이스.
화개장터에서 삶은 옥수수를 맛있게 먹던 케빈과 타이스.김연옥
웅장미로 내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은 구례 화엄사와 샛노란 산수유꽃을 뒤로 하고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 주는 화개장터(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로 달려 갔다. 조영남의 노래 가사처럼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왁자지껄한 시골 장터이다. 그날 인심이 훈훈한 화개장터 구경에 우리 모두 신이 났다.

샛노란 산수유꽃에도 소소리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샛노란 산수유꽃에도 소소리바람이 스쳐 지나갔다.김연옥
바람 불어 스산한 이른 봄이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변에도 쌀쌀한 꽃샘바람이 불어댔다. 화려한 봄날은 소소리바람을 타고 그렇게 감질나게 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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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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