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님이 왜 후손을 해꼬지 해요?"

정성을 드렸더니 새로 이사한 집과 금방 친해졌습니다

등록 2007.03.15 11:18수정 2007.03.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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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우리 집을 지켜줍니다.(2005년 여름)
나무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우리 집을 지켜줍니다.(2005년 여름)이승숙
며칠 전에 동네 친구랑 점집엘 갔다. 친구는 새해도 되었으니 일 년 신수점을 한 번 보자 했다. 점이라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친구를 따라 갔다.


좁다란 골목 안에 낡고 허름한 빌라가 두 동 있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서 건물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다. 그날따라 날도 '꾸무리'했다. 흐린 하늘 아래 붉은 깃발이 두어 개 옥상 근처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점집을 알리는 깃발이었다. 햇빛과 매연에 바란 깃발은 풀이 죽은 듯이 쳐져 있었다.

@BRI@평상복 차림으로 있던 무당은 우리가 들어가자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굿당에 들어가서 정성을 드렸다. 무당은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입술색깔이 약간 푸르스름했고 얼굴색도 푸른빛을 띠는 듯했다.

내 친구를 앞에 앉혀놓고 신수점을 봐주던 무당이 조상님께 치성을 드리라고 했다. 조상을 섬기지 않아서 집안 일이 잘 안 풀린다며 조상을 섬기라고 했다.

조상님은 후손들을 돌봐 주신다

"조상님이 왜 후손을 해꼬지 해요? 조상님이라면 후손 잘 되라고 빌어줄 텐데 왜 해꼬지할까요?"


무당이 하는 말에 수긍할 수 없었던 나는 기어이 한 마디 참견을 하고 말았다. 머리를 주억거리며 수굿이 듣고 있던 친구도 내 말에 무언의 찬성을 하며 무당의 입을 쳐다보았다.

"아, 조상님이라면 당연히 후손 돌보지. 그런데 조상님을 내 몰라라 내팽겨두면 어느 조상이 도와줄거고? 배곯으면 먹을 거 달라고 조상님이 쑤신다 말야."


내가 생각하기론 조상님은 후손이 잘 되라고 도와줄 거 같은데 무당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봤다. 치성을 드린다는 건 뭘 말하는 걸까. 큰 굿을 해야지만 치성을 드리는 걸까. 마음속으로 늘 조상님의 은덕에 고마워하며 조상님을 섬기는 게 바로 치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 날 점집 나들이는 아는 게 병,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절대 명언임을 느끼게 해준 나들이였다. 모르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예언과 몰라도 그만일 것 같은 비책들을 점쟁이는 들려주었다.

점집 문을 나서며 친구는 연신 용타고 했다. 무당이 지나간 것들을 다 맞춘다며 다가올 것들에 대한 처방을 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큰 굿을 해서 액을 풀어 버리란 말 때문에 친구는 시름 보따리를 안고 점집 문을 나섰다.

함석지붕이 다 삭아있던 수리 전의 우리 집 사랑채 모습입니다.(2000년 2월)
함석지붕이 다 삭아있던 수리 전의 우리 집 사랑채 모습입니다.(2000년 2월)이승숙
친구가 점을 볼 때 나도 약간 마음이 흔들렸다. 지나간 일들을 딱딱 맞추는 게 희한해서 나도 한 번 점을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점을 보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렇게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뭐 하러 점을 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약 들어서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스러움 때문에 마음을 접어 버렸다.

강화로 이사를 와서 처음 한 해 동안은 읍내 빌라에서 살았다. 살 터전을 장만할 동안 머물 생각으로 거처를 잡았는데 하고 보니 잘 한 결정이었다. 작정을 하고 강화로 이사를 왔지만 한 동안은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읍내에 살면서 우리 식구들은 시골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일 년 동안 틈나는 대로 땅을 보러 다녔다.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을 택해서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 할 정도로 돌아다녔다. 다행히 인연이 닿아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나무에게 막걸리를 대접했던 남편

시골로 이사 올 때 적당한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땅을 보러 다니다보니 새로 짓는 집보다는 옛 집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방향을 선회해서 텃밭이 딸린 농가주택을 찾으러 다녔다.

우리 집은 동네를 조금 벗어나 있는 외딴 집이다. 집 바로 뒤에는 아름드리 참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바로 야트막한 동산으로 이어진다. 이웃집이 있다 해도 붙어있는 게 아니므로 우리 집은 동네와 홀로 떨어져 있는 셈이다.

사람을 사서 집을 고칠 때 매일 드나들며 집 안팎을 챙겼다. 오래되어서 낡고 허름했던 우리 집은 수리를 하자 차츰차츰 때깔이 났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바로 차를 몰고 지금 집으로 달려갔다.

아래채 지붕은 양철지붕이었는데 군데군데 녹이 슬어 있었다. 물받이는 다 삭아서 비라도 오면 물이 줄줄 새어 내렸다. 그래서 양철을 걷어내고 기와를 얹었다. 한옥을 지어본 경험이 있던 목수는 지붕 선이 살아나도록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지붕 위에 황토를 덮고 기와를 얹었다.

수리를 하기 전의 우리 집 모습입니다.(2000년 2월)
수리를 하기 전의 우리 집 모습입니다.(2000년 2월)이승숙
기와를 얹는 일은 아무나 못하는 건지 전문가들이 와서 했다. 그 양반들이 손을 맞춰서 기와를 착착 얹어나갔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다 얹어가다가 딱 한 군데를 남겨놓고 작업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거였다. 집수리를 책임지던 목수는 나더러 기와 얹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금일봉을 전하라고 했다. 말하자면 새로 집을 지을 때 상량식을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성의를 표하라는 거였다. 그래서 막걸리와 돼지머리 등속을 사와서 작은 잔치를 열었다.

그 날, 밤늦도록 술자리가 이어졌다. 가까이 지내던 지인들이 다 와서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고 노래 소리가 이어졌다. 바깥은 깜깜한 밤인데 백열등을 밝힌 방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오줌이 마려워서 밖으로 나왔다. 4월의 밤공기는 서늘했다. 환하고 따뜻한 방 안과는 달리 방 밖은 사방이 다 어둠이었다. 아직 채 수리가 덜된 집은 전기 시설이 잘 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온 사방이 암흑 천지였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누군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오던 오줌발이 쏙 들어가 버릴 정도로 무서웠다. 그래서 허겁지겁 방 안으로 쫓기듯이 들어갔다.

정성을 드리면 평화로워진다

낮에 볼 때는 하나도 안 무서웠던 우리 집이 밤엔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집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아름드리 참나무가 좋아서 선택한 집이었는데 밤이 되니 그 나무들이 무서웠다.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그 날 밤 혼자서는 방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수리를 다 하고 이사를 했다. 산천의 초목들이 여린 손을 내밀던 5월 어느 날이었다. 모내기를 앞둔 논에 물을 가득 잡아놓아서 들판이 꼭 호수처럼 보였다. 밤이면 개구리가 울어댔고 낮에는 햇살까지도 숨죽인 듯 고요했다. 평화롭고 아늑했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그렇게 무서웠던 우리 집이었는데 이상하게 이사를 하자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 당시 남편은 인근 섬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는 나와 우리 애들 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우리 집이 하나도 안 무서웠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이사를 하던 날 마음속으로 빌었다.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렸다. 열심히 농사지어서 자식 거뒀을 두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두 분께서 정성들여 가꾸시며 사시던 집에 우리가 이사를 왔습니다. 이 집에서 살림을 이루고 자식들을 거두셨던 두 분처럼 저도 자식들 가르치며 잘 살겠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밤에는 별이 빛나고 낮에는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우리 집입니다.
밤에는 별이 빛나고 낮에는 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우리 집입니다.이승숙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우리 집이 하나도 안 무서웠다. 남편이 늘 집을 비워서 어린 애들과 달랑 셋이서만 살았던 외딴 우리 집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에 살았던 할머니가 우리를 지켜주실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다 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오면 집 둘레를 살펴보러 한밤중에도 전등을 들고 나가곤 했다. 그럴 때면 키우던 고양이와 개가 내 뒤를 늘 따라 다녔다. 나는 그들을 의지해서 남편이 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근 2년간 우리 집을 잘 돌봤다.

친구랑 점집을 갔다 온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그가 그러는 거였다.

"당신도 한 번 보지 그랬어? 우리 운세가 궁금하지 않아?"
"뭐 별로 안 궁금해. 다 좋을 거야. 좋은 마음으로 살면 다 좋아. 그리고 조상님이 우릴 지켜주실 건데 뭐. 그런데 새별이네는 이사 와서 집 지을 때 큰 나무를 많이 벴대. 그래서 일이 잘 안 풀린대."
"그럼, 큰 나무에는 신령이 들어 있다잖아. 나도 이사 와서 우리 집 주변 나무에 다 정성 드렸어. 술 한 잔 마시고 집에 오는데 갑자기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야. 그래서 막걸리 사와서 집 둘레 큰 나무에 다 뿌려주면서 정성 드렸어."
"아,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 편안하게 잘 살았구나. 난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 정성 드렸는데, 그랬더니 우리 집이 하나도 안 무섭더라."

큰 나무들이 둥그렇게 우리 집을 호위하고 있다.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우리들을 늘 지켜보고 있다. 그 나무들은 그냥 나무가 아니었다. 남편이 마음을 기울여서 정성을 드린 나무들이었다.

안개가 끼어서 사방이 온통 뿌옇다. 겨우내 긴 잠을 자던 논들이 기지개를 켜는지 안개는 들판 위를 짙게 덮고 있다.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오면 안개는 차츰차츰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안개가 짙게 낀 날은 날이 좋았다. 한낮이면 햇살이 빛났다. 오늘 한낮은 햇살이 눈부시게 밝을 것 같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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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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