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앞에서만 작아지는 국회

[참여연대 17대 국회 민생입법 평가리포트①] '재래시장·중소상인 지원' 나 몰라라

등록 2007.03.16 12:03수정 2007.07.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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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경기도 광명사거리에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이 개점한 지난 1월24일 오전 광명시장 상인들이 이마트 입점저지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은 광명시장 바로 왼쪽 흰 건물 지하에 350평 규모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경기도 광명사거리에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이 개점한 지난 1월24일 오전 광명시장 상인들이 이마트 입점저지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은 광명시장 바로 왼쪽 흰 건물 지하에 350평 규모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형마트의 무분별한 확산으로 지역의 영세상인들이 고사 직전이다. 지방의회와 자치단체는 지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 진출 규제 조례를 제정하고, '입점반대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행정소송에서 잇따라 패하고 있다. 정부는 WTO 협정 위배 가능성을 들어 '대형마트 규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각 정당도 국회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3년을 보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는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지역경제를 싹쓸이 하는 대형마트와 관련하여, 17대 국회가 어떠한 대책을 논의했고, 각 정당이 어떠한 입법 활동을 추진했는지 비교·평가하는 이슈리포트를 기획했다. 이 리포트를 통해 주요 민생현안에 대해 각 당이 취하고 있는 입장과 태도를 추적하고, 입법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과 의지를 평가해 보기로 한다.

대형마트 33개 들어서면, 재래시장 130개 폐업·7200명 실직

2006년 말 현재, 전국에 대형마트는 330개를 넘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신세계, 롯데, 삼성, 이랜드, GS 등 재벌기업 계열사인 대형유통업체들은 수퍼슈퍼마켓(SSM)이라는 변종을 만들어 지역 상권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유통선진화 논리를 앞세워 재벌유통업체 지원에만 힘을 쏟고 있고, 국회의 대책 마련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역의 중소상인들이 대형마트 확산에 반대하는 전국조직을 만들고 조례제정 운동 등을 펼치고 있지만, 국회가 관련법을 만들어 주지 않아 자치단체가 제정한 조례는 행정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하고 있다. 거기에 지난 2월 28일,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배치될 뿐 아니라 유통산업 발전과 소비자 후생 등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 '대형마트 규제 불가'를 아예 못 박았다.

정부는 1996년, 유통시장 전면개방에 앞서 '외국자본 진출에 대비 한다'는 명분 하에 대형마트에 대한 각종 규제(매장면적, 점포 수 제한 등)를 풀고, 집중 육성에 들어갔다. 재래시장과 중소상인들은 변화에 대비할 겨를도 없이 국내외 대형마트와 체급이 안 맞는 게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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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대형마트는 1993년 문을 연 이래 14년 동안 5260배 성장했다. 50억 규모였던 매출액이 2006년 현재, 26조3천억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청 시장경영지원센터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에 총 33개의 대형마트가 문을 열었고, 전년도 대비 매출 증가는 약 2조6천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재래시장 130개의 총매출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이런 추세라면, 산술적으로는 '15년 후에 1660여개 재래시장이 모두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편, 한국유통물류진흥원이 발표한 '2005년 중소유통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유통업체는 2000년과 비교해 3만9000여개가 감소했고, 종사자수는 5만8000여명이 줄었다.

대형마트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중소상인들을 실직 상태로 내몬다는 것이다. 또 매출액을 본사로 올려 보내 지역의 부를 고갈시키고, 중앙이 통제하는 일괄구매 방식을 써서 지역 생산자의 판로를 위축시키고 있다.


물론, 대형마트 측에서는 대형마트 1개면 400~500명이 새 일자리를 얻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80% 이상이 저임금 위주의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그 외에도 대형마트간 과도한 경쟁과 납품업체에 대한 추가적인 단가인하 압력, 상품 독점을 위한 압력, 이벤트 비용 떠넘기기 등의 불공정 거래는 이미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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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17대 총선 당시 각 정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역의 재래시장을 방문하여 '대형마트 규제'를 약속했다. 하지만 17대 국회 개원 이후 열린우리당은 당정협의 과정에서 정부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대형마트 규제'를 뺀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2004년 7월14일, 오영식 의원 등 열린우리당 151명 공동발의)'을 당론 발의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는 같은 해 8월, 특별법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고 이어 한나라당도 의원총회를 거쳐 '재래시장 현대화와 대형마트 신규 출점 시 환경영향평가와 교통영향평가를 엄격하게 거칠 것'을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2004년 9월2일, 안경률 의원 등 11외 111명 발의)'을 발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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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2004년] '대형마트 규제' 뺀 '재래시장 육성법' 입법

2004년 9월 6일, 산자위는 열린우리당이 발의한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과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부산 해운대기장을)이 대표 발의한 '중소기업의 구조개선과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등 4개 법안을 병합 심사했다.

이때 열린우리당 선병렬(대전동구), 김교흥(인천서구·강화군갑), 이광재(강원태백·영월·평창·정선) 의원은 'WTO 체제하에서 영업자유 억제가 무역마찰이 될 가능성', '영업권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정부의 논리를 들어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 신중론을 폈다. 하지만 선병렬, 김교흥 의원은 2005년 6월 6일 당정협의에서 2004년 주장과는 정반대로 '대형마트 규제 없는 재래시장 활성화 대책은 소용이 없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상열 민주당 의원(전남목포)도 산자위 논의 과정에서 '대형마트나 백화점 설립 시에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나 WTO 체제 등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며 부정적인 입장에 섰다. 하지만 최근 이 의원은 '통상마찰이 생기면 그때 가서 재검토하더라도 영업시간, 일수 조정 등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산자위 법안심사소위 속기록, 2007년 2월22일).

한편, 조승수 민주노동당 전 의원은 '시설 현대화를 추진하면 재건축 기간 동안 영업이 중단되어 생계불안이 가중 된다'고 지적하고, 임대 상인에 대한 보호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4년, 산자위 법안심사소위는 재래시장 관련법 4개를 두 차례에 걸쳐 심사했지만, 이 두 번의 소위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안경률 의원의 '대형마트 규제법'이 어떤 논의를 거쳐 제외됐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결국 산자위는 전체회의에서 '대형마트 규제'는 쏙 빼고,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가결 처리했다.

2004년 9월 23일, 본회의에서 오영식 열린우리당 의원(서울강북갑)은 '대형마트 규제'에 대해 산자위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산자위는 최종 '시장·군수·구청장이 대형마트에게 주변시장과의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는 수준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특별법'은 찬성 218명, 반대 10명, 기권 3명으로 가결처리 되었다.

[2005년] 대형마트 지원 위해 국공유지 내주는 '유통산업발전법' 국회 통과

2005년 10월, 정부는 대형마트와 중소물류센터를 건립할 때 예외적으로 국공유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윤두환 한나라당 의원(울산 북구)은 '대형마트에 국공유지를 제공하는 것은 개별 사업체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제출한 '유통산업발전법'은 상임위 상정 1주일 만에 상임위에서 가결처리 되었고,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되어 압도적 찬성으로 입법되었다(2005년 12월1일, 찬성 222명, 반대 4명, 기권 3명).


'대형마트 규제'와 관련 현재 국회에는 총 5건의 법률이 계류되어 있다(열린우리당 2건, 한나라당 2건, 민주노동당 1건). 이 중 이상민 열린우리당 의원(대전 유성구)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비례대표)이 발의한 법안은 '대형마트에 대한 포괄적 규제법'으로 현재 산자위에서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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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대형마트 규제' 말만 무성...각 정당 입법 의지 약해

2005년 6월, 정부는 '자영업자의 신규 진입장벽을 높여 공급과잉을 막고, 재래시장을 구조조정하는 내용의 자영업자 대책과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고, 이에 산자위 소속 열린우리당 의원 6인(김교흥, 김태년, 선병렬, 오영식, 윤호중, 최규식 의원)은 정책수정을 요구하는 성명으로 맞섰다.

이어 6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서울중랑갑)은 '대형마트 출점 규제를 논의할 시기가 됐다'고 주장했고, 당시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은 맡은 원혜영 의원(경기부천오정)은 '영업시간 규제 등 선진국의 사례를 준용할 수 있는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래시장 구조조정 계획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다행히 이 계획은 철회됐지만,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대형마트 규제' 계획이 없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대형마트 규제 입장을 가진 당내 의원들과 선을 그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대형마트 규제'에 관한 논란만 무성했지 이 법을 만들기 위한 정당 차원의 심도 깊은 검토와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속 의원들이 '대형마트 규제 의의'를 강조할 때, 그들과 선긋기에 급급했을 따름이다. 열린우리당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총선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재벌유통업체 지원에만 힘을 쏟은 것은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를 배신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편 2006년 4월,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구)은 '대규모 점포사업 활동조정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당내 논의를 재점화 하기 위해 노력했고, 김영춘 의원(서울 광진갑) 역시 같은 취지의 법을 발의하였다.

@BRI@한나라당 안상수(경기의왕과천), 주성영(대구동구갑) 의원은 2005년 2월, 9월에 각각 허가제 도입과 영업시간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모두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한 차례 논의만 거치고 2년간 잠자고 있다.

한나라당은 2006년 3월에 발간한 '대국민 약속 실천 백서'를 통해 안상수, 주성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재래시장·중소자영업자의 생존권과 상권 활성화'를 위한 당의 성과인양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 동안 당 차원에서 단 한번도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또한, 이에 대한 당론도 확인되지 않는다.

안상수, 주성영 의원의 법안을 당의 입법 성과라고 말할 것이라면, 두 의원을 지원하는 정당 차원의 적극적인 의회 전술을 수립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한나라당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방안이다. 지금 상태라면 과연 한나라당이 재래시장, 중소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한 정책 의지가 있는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과 품목 등을 규제하고, 중소지역상인 및 지역주민들이 지역경제 주체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공약을 내놓고, 심상정 의원을 통해 '지역유통산업 균형발전 특별법'을 발의하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포괄적 규제 방안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것은 평가할 만 하다. 산자위에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이 없지만, 최근 심상정 의원이 주축이 되어 '상인들과 토론회'를 열고 사회적 논의를 시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입법 성과 없으면, 지역 경제는 수렁에 빠질 것

a 경기도 광명사거리에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이 개점한 지난 1월24일 오전 광명시장 상인들이 이마트에 들어서려다 이를 막는 마트측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경기도 광명사거리에 들어선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이 개점한 지난 1월24일 오전 광명시장 상인들이 이마트에 들어서려다 이를 막는 마트측 관계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대형마트만 육성하는 정부정책은 결국 재래시장과 중소상인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지역의 중소상인들의 생존권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우리 정부는 WTO 협정을 핑계 삼아 '대형마트 규제'가 불가하다고 하지만, WTO 가입국 중 대형 점포를 규제하는 나라는 상당히 많다.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대형마트 허가제를 도입하고 있고, 휴일 의무화 규정,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도 병행하고 있다.

국회 역시 지역의 중소상인들의 요구가 거셀 때는 'WTO 협정을 위반하지 않는 수준의 대형마트 규제방안이라도 마련하자'고 했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면 원점으로 되돌아 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말만 무성했지 구체적인 대안을 챙긴 정당은 하나도 없고, 여론에 떠밀려 생색내기용 립서비스만 하다가 종국에는 대형유통업체 편에 섰다.

최근 산자위는 '대형마트 규제법안' 심사를 다시 시작했다. 또, 일부 의원들은 재래시장과 중소상인을 살리기 위해 '대형마트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경북 구미갑)은 작년 11월 2일, 이에 관련한 공청회에서 '허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국회가 결의하고 양허안 수정을 요구할 수 있지 않는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고, 통합신당모임 소속 우제항 의원(경기 평택갑, 산자위 간사)은 지난 2월 22일,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영업시간이나 일수 조정 등 국내규제로 간주되는 범위에서 대형마트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산자위 논의마저 실질적인 입법 성과 없이 논란으로만 그친다면 지역 경제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각 정당은 재래시장과 지역상인 보호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산자위 법안 심사 과정에서 적극적인 입법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각 정당은 이 법안의 논의 과정과 심사 결과가 올해 대선, 내년 총선에서 정당 및 의원 평가의 중요한 근거가 될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대형마트 #영세상인 #재래시장 #광명시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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