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줄기에서 시작되는 봄

[중국고전시의 네 계절] 고대 중국인의 바람에 대한 생각과 시

등록 2007.03.15 20:40수정 2007.03.1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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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람주머니를 든 풍백

바람주머니를 든 풍백 ⓒ 중국 산동성 가상현 무량사 화상석


柳無氣力枝先動, 버들이 부드러워지니 가지가 먼저 움직이고
池有波紋冰盡開. 연못에 물결 일어 얼음이 모두 풀렸네
今日不知誰計會, 누군지 모를레라, 마침 오늘에 맞추어
春風春水一時來. 봄바람과 봄강물이 한꺼번에 왔으니
―당 백거이(白居易)「관청의 서쪽 연못」(府西池)

a 위 그림의 선묘화

위 그림의 선묘화 ⓒ 중국 산동성 가상현 무량사 화상석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이 바람이다. 이월 중순쯤부터 바람은 매일 조금씩 달라진다. 그 바람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예기> '월령'에서는 “음력 1월에는 동풍이 불어와 얼음이 풀린다”(孟春之月, 東風解凍)고 했다.


음력 1월이라면 양력 이월이다. 이후로 바람은 변하기 시작한다. <초학기>(初學記)를 보면 봄의 바람으로 양풍(陽風), 춘풍(春風), 훤풍(暄風), 유풍(柔風), 혜풍(惠風) 등을 적고 있다. 자연 가운데 바람처럼 아름답고도 강력한 것도 드물 것이다. 이러한 바람에 대해 고대 중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여러 가지 자료를 보면서 나는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맨 먼저 갑골문에서는 봉황과 같은 새 모양으로 바람을 표기하였다. 학자들은 봉황의 ‘봉’(鳳)자를 빌려와 바람의 음을 표기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물론 어떤 학자는 봉황의 깃털이 일으키는 게 바람이라고 해석한다.

또 중국의 신화적 세계관에서 한자가 만들어진 것으로 본 일본 학자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이 봉황을 사방에 있는 방신(方神)의 사자(使者)로 해석하였다.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신인 셈이다. <설문해자>와 <춘추좌전> 등에는 팔방(八方)의 여덟 가지 바람 이름을 적어두었고, 『산해경』에서는 이에 대응한 신의 이름이 있다. 아마도 지금부터 3천 년 전쯤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a 바람 풍(風)자의 글꼴 변화

바람 풍(風)자의 글꼴 변화 ⓒ 서성 그림


두 번째는 바람을 인격화한 것으로, 비록 하늘이지만 사람이 바람주머니를 푸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한대 화상석에는 이에 대한 그림이 있어 참고가 된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거느리고 내려온 풍백(風伯)도 이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세 번째는 바람을 땅에서 나오는 기(氣)로 보는 관점이다. 이는 <장자> '제물론'에서 “대지가 내쉬는 기(氣)를 바람이라 한다”(大塊噫氣, 其名爲風)고 했다. 또 송옥(宋玉)도 '풍부'(風賦)에서 “빈 굴에서 바람이 나온다”(空穴來風)고 하였다. 장주(莊周)와 송옥이 바람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것을 보면, 고대에는 바람의 힘과 존재에 대해 많은 사유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바람은 대체 무엇인가. 장주만 하더라도 이미 바람 속에 신의 모습은 약화되고 없다. 오히려 거대한 자연의 운행을 느끼고 있다.


바람과 관련하여 가장 인상 깊은 묘사 가운데 하나는 <논어>에 나오는 공구(孔丘)의 비유이다.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바람이 지나가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이는 분명 자연물을 들어 인간의 덕성을 비유하는데 뛰어난 공구다운 말이다. 군자와 소인의 관계를 바람과 물의 관계로 비유한 것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순임금이 오현금(五弦琴)을 뜯으며 불렀다는 「남풍가」(南風歌)가 있는데, 역시 정치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南風之薰兮, 훈훈한 남풍이여
可以解吾民之慍兮. 우리 백성의 원망을 풀어줄 수 있다네
南風之時兮, 때맞춰 부는 남풍이여
可以阜吾民之財兮. 우리 백성의 재산을 쌓아줄 수 있다네

위의 두 경우는 모두 바람이 지닌 자연적인 감화의 힘에 주의를 기울인 듯 하다. 정치적인 관점은 더 나아가, <예기>에서는 통치자의 정치와 백성의 마음이 합치되면 ‘상풍’(祥風)이 분다고 했다.(出號令, 合民心, 則祥風至) 같은 표현이 <효경>에서도 나온다.

“덕이 팔방에 미치면, 상풍이 분다.”(德至八方, 則祥風至) 상풍은 곧 봄에 부는 훈풍으로 상풍이 불면 곡식들이 잘 자라고 많이 영근다. 바람과 관련된 또 하나 잘 알려진 비유는 한대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나오는 말이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 잘 날 없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乎風不止, 子欲養乎親不待)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나무와 바람의 관계로 비유하였다.

이러한 비유도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지만,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바람의 느낌이다. 중국인들은 이 바람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재미있어 하였다. 남조 시기의 하손(何遜)은 '봄바람을 노래함'(詠春風)에서 “들을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고, 무거울 수도 있고 가벼울 수도 있네”(可聞不可見, 能重復能輕)라 하였다.

당대 이교(李嶠)는 '바람'이란 시에서 “가을에는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이월에는 꽃도 피게 할 수 있다네. 강으로 가서는 천 척(尺)의 파도를 일으키고, 대숲에 들어가선 온갖 줄기 기울인다”(解落三秋葉, 能開二月花. 過江千尺浪, 入竹萬竿斜)라 하였다. 청대 소태(邵泰)는 “봄바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지나가도 자취를 남기지 않나니”(春風從何事, 所過不留跡)라고 하였다.

바람을 기압의 차이라고 열심히 강조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다면 먼저 바람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어야 할 것이다. 개구리를 해부하여 관찰하기 전에 생명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같은 뜻이지만 ‘봄바람’이란 우리말이 부드럽고 아름답다면, 한자어인 ‘춘풍’이란 말은 운치가 있다. 사실 ‘춘풍’이란 말은 황진이의 시조에서 “춘풍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에서처럼 이미 우리말과 다름없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말로 ‘동풍’(東風)이 있다. 겨울 내내 서북에서 불어오던 대륙성 찬바람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동쪽에서 따뜻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예기>의 “동풍해동”(東風解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동풍이 분다”와 “얼음이 풀린다”는 두 현상이 병렬로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인과관계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동풍이 분 결과 얼음이 풀린다”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왜 얼음이 녹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옛 사람들은 동풍이 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바람 ‘풍’(風)자 속에 벌레 ‘충’(虫)이 있는 것에 대해 허신(許愼)은 “바람이 불어 벌레가 생긴다”(風動生蟲)고 해석하였다. 당연히 봄바람을 두고 한 말이다.

동풍은 얼음을 녹이고 벌레들을 부화시킬 뿐만 아니라 초목의 싹도 틔운다. 백거이(白居易)의 유명한 시 구절에 풀들은 들불에 타버려도 “봄바람이 불면 또 다시 자라난다”(春風吹又生)고 했다. 송대 왕안석(王安石)도 “봄바람이 강남의 강가를 다시 푸르게 하였다”(春風又綠江南岸)고 하였다. 바람이 불어야 싹이 난다.

이는 어쩌면 중국이라는 지역이 지닌 특징인지도 모른다. 베이징에 살 때 북향의 서재에서 보고서를 쓰느라 겨울인지 봄인지 모르고 여념 없이 지낼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열어둔 창문으로 갑자기 일진의 바람이 들어왔다.

그런데 그 바람은 어제의 바람과 완연히 다른 것이었다. 순간 나는 ‘봄바람’임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거리의 버들이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극히 개인적인 것일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때 나는 “봄바람이 불자 싹이 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싹이 날 즈음, 혹은 싹이 나고 얼마 후 초봄의 바람은 꽃도 피운다.

東風昨夜醇如酒, 어젯밤 봄바람이 술처럼 향기로워
吹得桃花滿樹開. 가지마다 복사꽃 모두 피게 하였네
―원(元) 관운석(貫雲石)「진북산의 부채에 쓰다」(題陳北山扇)

그러다가 바람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찬 바람이 뒤섞이는가 하면 두서 없이 어지럽게 불기도 한다. 삼월 바람의 특징이다. 당대 구위(丘爲)는 “봄바람은 정해진 방향 없어, 꽃들이 옥 계단으로 날아간다”(春風且莫定, 吹向玉階飛. ―「左掖梨花」)고 궁중의 바람을 노래했다.

송 진여의(陳與義)는 “제비가 처음 돌아오고 바람은 방향 없이 부는데, 복사꽃이 피려하고 비가 자주 온다”(燕子初歸風不定, 桃花欲動雨頻來. ―「對酒」)고 초봄의 경치를 노래했다.

청대 우겸(于謙)이 말한 대로 “봄바람은 아직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집 동편에 와 있”(春風來不遠, 只在屋東頭)는 지도 모른다. (「除夜宿太原寒甚」) 이제 조만간 화신(花信)을 듣다 보면 왕안석(王安石)이 말한 대로 “봄바람이 날마다 푸른 풀에 불어와, 산의 북쪽 남쪽에 난 길을 모두 다 덮으리라.”(春風日日吹香草, 山北山南路欲無 ―「悟眞院」)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하루 이틀 찬바람이 불어도 상관없다. 봄바람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보리 싹들이 들어올린 바람이 들녘에 일렁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열린사이버대학교(OCU) 실용외국어학부에 재직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현재 열린사이버대학교(OCU) 실용외국어학부에 재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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