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녀가 비단 제조술 팔아넘겼다?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36] 카슈가르에서 호탄까지

등록 2007.03.16 18:46수정 2007.03.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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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든 카슈가르를 빠져 나오며

정든 카슈가르를 빠져 나오며 ⓒ 오창학

정든 카슈가르를 떠나다

겨우 2박 3일 머문 곳이지만 카슈가르에 정이 들었다. 하긴 이번에 다닌 이 땅의 어느 길인들 정들지 않은 곳 있으랴마는 이번 여정의 서쪽 끝에 대한 감정은 또 남다르다. 다시 오리라. 그러나 그땐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겠지.


@BRI@오늘 이후의 타클라마칸 사막 남로 여행은 그야말로 '주파'가 될 것이다. 오늘은 호탄까지 500여㎞를 주행할 예정. 대략 8시간이 걸릴 길이라는데 넉넉잡고 12시간 이내에 호탄에 닿는 것이 목표다. 사전에 조사한 바로는 치에모까지 도로가 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거니와, 숙소에서 미리 알아본 바로도 도로 사정은 좋은 편이라 하니 오늘 안에 호탄에 닿는 것은 큰 무리가 없겠다.

오전 9시. 잠에서 깨고도 2시간이나 어기적거린 후의 출발이다. 미련이 많았나 보다. 카슈가르 벗어난 외곽의 '낭(饢)' 파는 노점 앞에서 차를 멈췄다. 길 사정도 모르고 소요시간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차내식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a 위구르인의 주식인 낭. 피자판처럼 넓고 얊은 것과 빵처럼 두툼한 것이 있다. 차내식으로 쓰기에 유용하다

위구르인의 주식인 낭. 피자판처럼 넓고 얊은 것과 빵처럼 두툼한 것이 있다. 차내식으로 쓰기에 유용하다 ⓒ 오창학

'차내식'. '기내식'에서 따온 우리끼리의 신조어다. 이 황무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란 다음 목적지까지 진이 다하도록 이동하는 것. 그러다 보면 불가피하게 밥 먹을 식당을 찾아 헤맬 여력이 없거나 식당이 아예 없는 경우도 다반사. 설사 식당이 있다 해도 위험한 야간 운전을 피하려면 식사 시간을 아껴 다음 목적지에 도착해야 할 때가 있으므로 차 안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할 때가 많다.

오늘같이 사막 도로로 먼 거리를 움직이려면 음식 준비는 필수다. 먹든 안 먹든 간에. 그런 때 위구르인들의 주식인 '낭'이 비상식량으론 제격이다. 무엇보다도 상하지 않는다는 점과 조금 먹고 물 마시면 배 안에서 불어버린다는 점, 굳이 끼니라 여기지 않고 간식처럼 주섬주섬 편의에 따라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외로운 캐러밴


a 끝없는 사막지대를 달린다

끝없는 사막지대를 달린다 ⓒ 오창학

사람이 사는 지대를 빠져나오면 마치 이제까지의 풍경은 신기루였던 양 사위는 삭막한 사막으로 가득 찬다. 그 가운데 오직 앞으로만 뻗어 있는 길. 1일 3교대 운전방식을 오늘부터 1인 100㎞ 운전방식으로 바꿨다. 내가 먼저 100㎞를 주행하면 아내가 그 다음 100㎞를, 그러면 다시 교수님이 100㎞를 이어받아 주행하는 방식이다. 500㎞ 남짓한 오늘 같은 거리라면 교수님이 두 번째 운전석에 앉을 때쯤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두 번만 운전석에 앉으면 된다.

철봉씨는? 타클라마칸에 발을 딛은 이래 철봉씨의 존재감이 없다. 내비게이션은 이미 먹통이 된 지 오래. 아예 켜지도 않았지만 지도조차 꺼낼 일이 드물다. 그냥 길을 따라 직진, 직진. 간혹 나오는 갈림길은 도로표지판만으로도 헛갈릴 일이 없다. 그러니 숨가쁘게 지도와 대조하며 길을 찾던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은 이로써 끝이다.


길에서 만나는 위구르인들은 중국어를 모른다. 당연 통역 역할도 끝이다. 철봉씨는 운전면허가 없다. 중국 면허를 받지 못한 것이야 교수님도 마찬가지이지만 철봉씨는 아예 운전 자체를 할 줄 모른다. 그러니 운전 교대 대상에서도 열외.

아내가 그런다. 철봉씨가 우릴 안내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철봉씨를 여행시켜주고 있으니 돈을 받을 쪽은 우리라고.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아직은 운전이 지겹지 않다.

a 길. 사막 사이로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사막의 큰 미덕은 이런 단조로움이다

길. 사막 사이로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사막의 큰 미덕은 이런 단조로움이다 ⓒ 오창학

길은 아직은 순탄하다. 좌우의 풍경은 삭막한 모래의 바다이지만 그 사이로 포장도로가 길게 이어진다. 사막 열기로 끈적거리는 노면 위에서 바람에 실린 모래들만이 유일한 벗이다. 사막의 큰 미덕은 단조로움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도 지겹지 않은 변화가 있다. 모래의 알갱이 크기도 지평선의 형태도 조금씩 변화한다. 백구의 속도계는 시속 80을 가리키는데 정작 우린 시간에 갇혀 멈춰 서있다.

이렇게 끝도 없는 사막도로를 달리다가 먼발치에 초록의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오아시스에 닿았다는 표지다. 비록 달랑 차 한 대로 사막을 건너지만 마음은 어느새 대상이라도 된 듯싶다. 먼 거리를 달려 다음 오아시스에 닿았을 땐 그 느낌이 더욱 강하다.

원래 캐러밴(대상)은 페르시아에 어원을 둔 말로 '군대'라는 뜻이다. 지역과 목적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편성할 때 일정한 규칙은 있다. 낙타 20마리가 최소 단위로 이를 1연이라 부르고 1연은 몰이꾼 한 명이 책임지는 낙타의 수로 2연을 1파라 한다. 5파를 1정방이라 했으니 200마리가 1정방이 되는 셈이다.

대개 200~300마리의 낙타로 한 대상이 편성되는데 그 중 3/4 정도는 교역품을 싣고 나머지는 식량과 물을 싣는다.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가 낙타를 탈 수 있지만 전 노선에 걸쳐 타는 사람은 대상의 우두머리와 요리장뿐이다.

우리 '철낙타'를 탄 대상은 일행도 없고, 교역품도 없이 모두가 전 노선에 걸쳐 탑승해 움직인다는 차이는 있지만 사막을 지나는 심회야 그 옛날 그들과 다를 바 없다. 대상들이 도중에 머무르는 쉼터를 대상관, 즉 캐러밴 사라이라 하는데 오늘 우리의 캐러밴 사라이는 호탄이다.

오아시스 사람들

a 오아시스. 자동차가 있는 몇몇 풍경을 빼면 그 옛날 캐러밴이 다니던 모습이 별 차이가 없다. 시간이 멈춘 초록의 정거장이다

오아시스. 자동차가 있는 몇몇 풍경을 빼면 그 옛날 캐러밴이 다니던 모습이 별 차이가 없다. 시간이 멈춘 초록의 정거장이다 ⓒ 오창학

앞에서 단조로움 속에 변화가 있다 하였겠다. 그 말을 입증하듯 사막의 경탄이 자칫 지루함으로 바뀔 때면 어김없이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대상들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던 건 이 초록의 정거장들 때문이리라. 과일을 몇 알 샀다. 이번 여행의 큰 즐거움. 매일 매일 과일 당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체험한다. 달고, 신선하고, 싼 과일의 호사. 눈 만큼의 입의 추억도 오래 가리라.

a 오아시스 사람들. 여전한 인종, 여전한 언어, 여전한 교통수단을 사용하는 곳 오아시스. 신장 내 대규모 도시 오아시스에 비해 한족의 바람을 덜 탄 곳이다

오아시스 사람들. 여전한 인종, 여전한 언어, 여전한 교통수단을 사용하는 곳 오아시스. 신장 내 대규모 도시 오아시스에 비해 한족의 바람을 덜 탄 곳이다 ⓒ 오창학

오아시스마다 사람을 만난다. 사실 만난다기보단 마주친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걔 중 중국어를 아는 이들은 어김없이 말을 붙이고 싶어한다. 늘 같은 질문.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나?' 늘 같은 대답. '한국, 실크로드'.

오아시스… 입 안에서 궁 글릴 때마다 양성모음의 발성과 마찰음 'ㅅ'의 어울림이 싱그럽다. 허나 이것이 어디 발음만의 느낌이랴. 갈증과 열기를 뚫고 도착해 여기 푸르름을 경험한 이라면 이 단어가 주는 생명감과 신선함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한 인종, 여전한 언어를 쓰며 여전한 교통수단을 쓰는 오아시스 사람들은 모습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궁핍도 여전하다는 말이겠으나 그나마 한족의 바람을 덜 탄 곳처럼 보인다. 아직까지는.

a 주행 9시간 째 어느덧 호탄이 가까워진다.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도달한다는 평범한 진리의 확인

주행 9시간 째 어느덧 호탄이 가까워진다.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도달한다는 평범한 진리의 확인 ⓒ 오창학

오후 6시. 카슈가르를 출발한 지 9시간째. 이동 거리 450㎞. 중도에 예청에서 점심식사를 거하게 한 시간을 감안하면 꽤 순조로운 진행이다. 이제 호탄이 가까워지고 있다.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달한다는 평범한 진리. 얼마나 편하게, 얼마나 빨리는 나중 문제다. 내게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다는 것뿐.

호탄의 비단

여기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단오일리크 유적이 있는데 중국 공주가 목화씨와 누에를 숨겨 출가했음을 증명하는 <견왕녀도>가 발견된 곳이다. 중국이 누에고치를 길러 비단을 짜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 중국의 비단 제조술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져 1~3세기까지도 외부세계에 유출되지 않았다.

기원전 53년, 로마의 7군단 병사들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동쪽으로 파르티아인을 추격하다가 갑자기 말의 진로를 바꾸어 뒤로 몸을 돌려 퍼붓는 파르티아인의 화살에 붕괴되고(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그 유명한 몸 돌려 뒤 쏘기 자세) 그들을 향해 달려오던 파르티아인들의 깃발, 로마인들의 표현에 의하면 "'구름처럼 가볍고 '얼음처럼 투명한' 놀라운 물건"이라 묘사한 비단깃발을 접했을 때가 서방세계에 처음 비단이 알려진 사건일 것이다.

이후 로마제국은 한나라로부터 막대한 비단을 수입하는 나라가 되고 결국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가 <행복론>에서 "비단옷은 신체를 보호할 수도 없고 부끄러움조차 가리지 못하는 옷이다. 비단옷을 입어본 여성들은 마치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받는다. 그런데 여성들은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상인들을 부추겨 이 옷감을 먼 미지의 나라에서 가져오게 한다"고 개탄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로마인들은 비단을 '세리카'라 하고 세리카를 만드는 곳을 '세레스'라 부르긴 했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1세기경 그리스 학자는 비단이 나무껍질에서 얻어진다고 추측했고 2세기 후반에야 세레스인들이 어떤 벌레를 길러 실을 뽑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무지는 중계무역의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 한 페르시아의 방해로 중국과의 직접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단무역을 독점한 페르시아와 직거래를 원한 로마 사이의 관계악화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본시 비싼 원가에다가 멀고 험한 길을 넘어온 운송비용에다 다단계의 유통마진과 경유지에서의 관세까지 더해 최종적으로 로마에 닿았을 때의 비단가격은 그야말로 '금값'이 되었으니 상인들로 하여금 그 험난한 길을 오가게 하는 동인이 되기에 충분했으리라.

이런 유통마진을 위해 중계무역의 이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페르시아의 방해로 중국과의 직접교역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로마인들 사이에 비단(세리카)이 나무껍질에서 만들어진다는 억측만 무성하게 했다.

비단 제조술 팔아넘긴 배은망덕한 왕녀?

고부가가치 산업인 양잠술이 이토록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중국의 비단 수출업 독점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는데, <대당서역기>에 기술된 내용은 이렇다.

옛날 우기국(지금의 호탄)에선 누에고치나 뽕나무를 알지 못했는데 견직술의 습득을 노리던 우기국 왕이 꾀를 내었다지. 중국 공주와의 혼인을 청한 후 사신을 보내 "우리나라엔 비단이 없으니 그 옷을 입으려면 알아서 하시오!"라면 공주를 꾀었다지. 이에 공주가 자신의 머리장식 속에 뽕나무씨와 누에고치를 몰래 감추어 호탄에 보급했다는 것.

이때가 대략 기원후 1~3세기 후한시대의 일. 중국이 몸달아 하며 비밀에 부쳤던 비단 제조술이 배은망덕한 한 왕녀의 실책으로 말미암아 오아시스 비단길을 통해 빛처럼 빨리 유라시아 일대로 확산되었고 급기야 6세기 중엽에는 로마제국에까지 양잠술과 견직술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단순한 전설로만 남을 수도 있었으나 호탄강 근처의 유적에서 영국의 탐험가 스타인이 시집가는 왕녀의 머리장식을 시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견왕녀도>라는 목판화 한 점을 발견하면서 나름대로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류의 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듣던 그렇고 그런 전설들 같아 믿기질 않는다. '생각 짧은 여인이 남자의 꾐에 빠져 대의를 저버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친숙한 서사구조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가 그랬고 삼손과 데릴라, 하와, 판도라, 왕의 총기를 흐렸던 역사 속의 수많은 여인들이 그랬다. 왜 언제나 원죄는 여인에게 전가되고 남자는 죄가 없는 것일까?

문익점 선생도 목화씨를 붓 뚜껑 속에 숨겼는데, 인도의 경교 신부들이 누에고치를 지팡이에 숨겨 로마로 가져갔다던데, 왜 유독 중국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기밀산업정보는 여인이 덤터기를 써야 했을까. 남자가 지팡이 속에 누에와 뽕나무씨를 숨기면 국제 관문 옥문관에 설치된 엑스레이 투시기에 노출되거나 씨앗탐지견에 걸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찍이 씨앗탐지견을 배치해 놓고 검문검색을 강화했던 탓일까? 조작된 전설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드디어 호탄에 들어서다

a 호탄 입성. 드디어 옥의 도시 호탄에 닿았다

호탄 입성. 드디어 옥의 도시 호탄에 닿았다 ⓒ 오창학

예전에 우기국이라 불렸던 연옥의 고장 호탄은 오아시스 남로의 대표적 도시다. 비단길이 번성할 때 타림분지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헬레니즘 문화와 불교를 받아들여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곳, 인도에서 당나라로 돌아가던 현장이 7~8개월을 머무른 곳이다.

고선지가 처음으로 독립된 부대를 지휘하며 지역사령관을 지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직책은 진수사(鎭守使). 천가한(天可汗:천자+칸)이라 칭하며 인식을 전환한 당태종의 태도 변혁의 결과이다.

중화 외의 오랑캐도 인면수심의 짐승이 아닌 교화를 통해 계도 가능한 인간이라는 인식전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사상을 배경으로 정복전에서 얻은 오랑캐 장수들을 번장(藩將)으로 삼아 기용했기에 고선지나 사사명, 안록산 같은 장수들이 등장할 수 있었을 게다.

a 호탄 인민광장에 세워진 구루반두루무와 마오쩌뚱의 상

호탄 인민광장에 세워진 구루반두루무와 마오쩌뚱의 상 ⓒ 오창학

그게 비단 1300여년 전 상황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호탄 인민광장엔 구루반루루무와 마오쩌둥의 상이 서 있다.

19세기 중후반, 야꿉 벡의 10년 치세가 끝나고 다시 신장의 지배권이 청에 돌아가기는 했으나 청 역시 20세기의 벽두에 무너지고 신장은 한족의 지배체제하에 놓인다. 이 시기를 거치며 '민족'의 의식이 싹 튼 위구르인들의 봉기로 국공내전이 한창인 1944년에 독자적인 임시정부를 세우고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내전에서 공산당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1949년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부르한 샤히디는 현실적인 세력의 우위 때문에 중국과의 연합을 선언했고, 당시 부주석인 이사 유숩 알프테킨은 이를 반대하다 망명길에 올랐다. 이로써 '동투르키스탄'은 명실 공히 중국의 영토로 편입되어 '신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민광장의 저 동상은 바로 이런 병합이 너무도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위구르인과 소수민족들에게는 축복임을 과시하고 있는 상징이다. 병합 후 '잘 살게' 된 것에 감사하기 위해 여기 타클라마칸의 외진 곳에 사는 위구르족 구르반 노인이 나귀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한다. 마침내 민족의 은인 마오를 알현하자 마오는 굳게 그의 손을 잡아준다.

그때의 일을 기념해 신장 내 여러 곳에 저 구르반 노인과 마오의 동상이 선전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럴까? 위구르인들이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들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었을까?

a 호탄 사람들

호탄 사람들 ⓒ 오창학


표면적으로 보기에 위구르인들은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적응한 듯하다. 오성홍기가 날리는 인민광장의 풍경이 이토록 평화로울 수 있을까. 반바지 반소매도 걸치지 않으며 남자가 외출할 땐 반드시 모자를 써야 하는 이들. 여자도 결혼 후엔 두건이나 면사(面紗)를 쓰고 그들의 성지를 향해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올리는 이들. 이들은 '아직' 중국인이다. 아니, '이젠' 중국인이다.

카슈가르에서 호탄까지


카슈가르-예청-호탄에 이르는 길. 521㎞ 주행, 10시간 소요.

1급공로는 없으나 전 구간 포장도로이고 노면상태는 구간마다 차이가 있음. 시속 100㎞ 이상은 무리. / 오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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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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