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함께 살려면 차이를 인정하세요

등록 2007.03.17 15:55수정 2007.03.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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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속사정을 모르는 이웃들은 나를 참 '착한 며느리'라 부른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건데, 나는 썩 '착한 며느리'가 못된다.


사귄 지 8년이 다 되어 가건만, 남편은 결혼 바로 직전까지 제 집에 데려가길 꺼려했다. 결혼의 불확실성으로 고민하던 나는 그런 남편이 의심스러웠고, 급기야 헤어질 결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떠나려는 내게 결혼에 대한 확답을 듣고 나서야 남편은 자기 집에 나를 데려갔다.

@BRI@그가 사는 집은 반 지하 단칸방에 4자짜리 장롱이 살림의 전부였다. 남편은 당시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어머니만 홀로 그곳에서 살고 계셨다. 너무나 조촐한 살림살이에 여린 내 가슴은 그만 울먹울먹했다. 따로 살림 살고 있는 큰 아들 내외의 왕래가 거의 없었기에, 텅 빈 공간에서 외로이 지낼 노인에 대한 연민으로 선뜻 신혼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타인에 대한 막연한 연민으로 시작한 동거는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머니의 병적인 '결벽'을 알았고 그 증세가 주위 가족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하는지도 깨달았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손이 가지 않도록, 열심히 애를 써 보기도 했다. 그러나 천성이 빠릿빠릿하지 않은 내가 어머니 마음에 들게 집안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밥 때를 놓치면 식은땀이 흐른다며 몹시 허둥대는 어머니를 사실 잘 이해하지 못했다. 먹지 않아도 사랑만으로 배부르던 신혼 시절,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이른 새벽부터 어머니는 부엌 여기저기를 뒤지며 덜그럭 거리곤 했다. 시어머니의 배려 없음에 곧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웃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나에 대한 험담 역시 견디기 힘든 것 중의 하나였다. 왠지 내 사생활이 낱낱이 다 드러난 것 같은 수치심은 지금 생각해도 털끝이 설 정도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 틈새는 더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무지 아이들이 어지르는 것을 못 견디시는 것이었다. 장난감을 내놓기만 하면 치우고, 심지어는 며느리 몰래 내다 버리기까지 하셨다. 서랍을 정리할 때마다 아이들 옷이 많다며 은근히 타박을 하셔서 아이들 옷 사들이는 일조차 눈치가 보였다. 어머니의 결벽에 난 절망했다.

쓸고 또 쓸고, 닦고 또 닦느라 바닥에 잠시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는 어머니. 내 시어머니가 아니라면, 참 좋았을 성격이 며느리인 내겐 퍽이나 불편했다. 빛을 가리는 커튼조차 빨래감으로 보이는 어머니로 인해, 집안 치장은 물론 화초 들이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지랑이 꾸물거리는 봄날, 꽃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시간이 잦아질수록, 겨울동안 스산했던 뜨락 검불 사이로 꼬물거리며 고개를 내미는 파릇한 새싹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에 대한 불평도 쌓여갔다. 바람, 나무, 꽃들이 일제히 잠에서 깨어나는 황홀한 순간에도 낡고 지친 마음이 되어갔다.

'착한 며느리'로 살고 싶었다. 어머니의 절망스러운 '결벽'에 피곤해 하면서, 점점 황폐해져가는 나를 발견했다. 어머니에게 이해와 사랑을 베풀기엔 내 마음이 너무나 가난했다. 마음에 미움을 담고 겉으로만 양보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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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순

어머니가 싫어하든 말든, 나는 꽃과 나무들을 하나 둘씩 집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속에서 꾸물거리며 헤엄치는 물고기도 들였다. 만나면 반갑다고 열불 나게 꼬리 흔들어대는 강아지도 식구로 맞았다. 어머니는 아주 한 동안이나 진저리 치셨다. 그러나 견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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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명순

그렇게 두 해가 지난 지금 어머니는 많이 달라져 있다. 어머니 마음속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전보다 어머니를 향한 내 마음이 훨씬 부드러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어머니 역시 이전보다 훨씬 내게 부드러워져 있다. 불공평하게 한쪽에서만 참는 게 아니라, 서로를 위해 참아주고 있을 뿐이다. 당분간 이 평화는 깨지지 않을 듯하다.

덧붙이는 글 | 함께살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맞추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면 고부관계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함께살기가 생각보다는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맞추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면 고부관계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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