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갔다 내려오는 길에 발견한 돌미나리밭. 저녁에 무쳐 먹다.정판수
나생이는 코로 먹고, 달롱개는 눈으로 먹고, 쑥은 입으로 먹는다는 말처럼 캐려고 고개를 숙이니 나생이의 향기가 가장 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연초록의 대궁이 아래로 내려와선 하얗게 복스런 몸뚱아리를 이룬 달롱개는 언제 봐도 예쁘다. 쑥이야 너무 흔해 그 가치가 덜하지만 그래도 이즈음의 입맛을 살려내는 게 쑥국만한 게 있을까?
내리막길 개울가에서 돌미나리란 보물을 만난 건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아마도 미나리 종자가 어떤 연유로 옮겨와 자랐는데 물이 공급되지 않다 보니 돌미나리가 되었으리라. 살짝 씹어보았다. 약간의 쓴맛과 짙은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오늘 저녁 밥상에 당연히 돌미나리무침이 오르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갓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서 뭔가를 다듬고 있어 잠시 눈을 주니 봄나물이었다. 인사 겸 들러 둘러보니 세상에 어디서 얼마나 애써 뜯었는지 대야에 가득했다.
아까 본 원추리를 비롯하여 어린 머위 잎사귀도 보이고, 부지깽이 나물에다 눈 뜨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취나물도 보인다. 다듬는 모양이 아마도 장에가 팔려는 것 같아 슬쩍 여쭤보았다. 한 소쿠리에 얼마쯤 받을 거냐고.
2000원쯤 받을 생각이란다. 2000원이라니? 3, 4월 지천으로 깔렸을 때야 한 시간만 훑어도 한 자루가 되지만 아직 철 이른 시기에 그만큼의 나물을 뜯으려면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 잘 알기에 잠시 놀라며 너무 헐하지 않느냐니까, "키운 것도 아니고 산과 들에서 그저 주웠는데 그만큼 받아도 고맙지요" 하신다.
이곳 달내마을에 산 지 2년이 다 됐음에도 마을 어른들의 행동을 난 아직 이해 못할 때가 많다. 아니 이해 못한다고 하기보다 좁은 소견으로 넘어설 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분명히 나보다 적게 배웠음에도 마음 씀은 훨씬 더 넓다. 사람됨은 역시 가방 끈으로는 잴 수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씨 뿌리고 거름 주고 물 줘서 키운 것도 아니기에 그리 욕심낼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그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더 배우고 더 생각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이미 속물화된 나로선 영원히 그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뿌듯한 마음에 돌아보니 할머니의 등 뒤로 마지막 조금 남은 햇살이 내리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