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찾은 눈꽃나라, 함백산

등록 2007.03.20 11:14수정 2007.03.20 17:17
0
원고료로 응원
곤드레 나물밥. 덧붙여 나오는 된장찌개의 담백한 맛도 일품이다
곤드레 나물밥. 덧붙여 나오는 된장찌개의 담백한 맛도 일품이다이덕은
지난번 가보려 했던 탄광도로와 함백산에 대한 현지적응은 신동(석항리) <정원식당>이라는 곳에서 곤드레 비빔밥을 먹으며 시작되었다.

간단히 탄광도로 혹은 고랭지 채소밭 길이라고는 하지만 해발 1200미터 구릉을 무려 30~40㎞로 달린다는 아니, 기어간다는 것은 장비없는 순정 차량 1대에게는 애당초 무리였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게 꼭 해내야 하는 숙제 같은 건 아니지 않는가?


고랭지 채소밭으로 올라 가는 길. 초입에 <엽기적인 그녀>라는 팻말이 있다.
고랭지 채소밭으로 올라 가는 길. 초입에 <엽기적인 그녀>라는 팻말이 있다.이덕은
김이 펄펄 나는 갓 지은 곤드레밥을 먹고 38번도로를 따라가다 함백으로 접어든다. 개울가에 지붕이 뚫리고 창문이 떨어져 나간 광부들의 보금자리들을 본다. 또 이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해 밭에 쌓여진 구공탄 재들에서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없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인생 일부를 보는 것 같다. 함백역 직전 세워져 있는 <엽기소나무> 팻말. 거의 180도를 꺾어 산길로 들어선다.

붉게 색깔이 변해 길가에 쌓여진 소나무 잎들은 이 길이 사람 손 타지 않는 길임을 말해주고 있다. 얼마 오르지 않아 길바닥, 소나무, 낙엽송 등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고갯길을 올라 산등성이(아직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로 오르자 넓은 고랭지 밭이 펼쳐지고 들어갈수록 세상은 더욱 하얗게 변한다. 눈덮힌 넓은 구릉지대와 간간히 서 있는 소나무와 집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별로 섭섭한 마음이 들 것 같지 않다.

고랭지 채소밭 일부
고랭지 채소밭 일부이덕은
산 위에는 독립가옥과 밭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들이 무수히 나 있어 갈림길이 나오면 저 언덕 너머가 어디로 이어질지 몰라 헤매게 만든다. 일단 바퀴자리가 난 길을 따라 오르니 분명 이 언덕을 넘으면 두위봉 어깨를 넘어 갈 것 같은데 눈 위에 바퀴자국은커녕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내려갈 때 내려가더라도 차 밖으로 나와 이 좋은 경치를 마음 속에 담아두기로 한다. 다음 달 말 파종 때를 기약하고 차를 돌려 내려오니 올라간 높이가 상당하다. 예미에서 증산간은 421 지방도인데 포장공사로 사고시 책임지지 않는다는 험악한 경고문이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고개 정상쯤 아래 함백이 조망되는 곳에 차를 세우니 '전망대 예정지' 팻말이 서 있다. 저 건너편 산에는 조금전 올라갔다 내려온 두위봉 근처 고랭지 완만한 능선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접한 내리막 길은 눈으로 쌓여 있다. 저 아래 보이는 자미원 (양덕원처럼 지명이다) 역사와 조그마한 마을, 포장공사를 하고 있는 길이 장난감처럼 내려다 보인다.

자미원 마을
자미원 마을이덕은
문곡으로 내려와 다시 38번 도로를 거쳐 414번 정암사로 향한다. 정암사 계곡 건너편에 삼탄(삼척탄좌)이 있지만 공장 가동의 기척은 보이지 않고 개울물은 벌겋게 물들어 있다. 만항재로 오르는 길의 작은 촌락 슬레이트 지붕 처마에는 고드름이 달려 있어 우리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동심을 자극하고 너무나 투명해서 만지면 깨져 버릴 것 같다.


만항재 정상 직전에서 '태릉선수촌 태백분소' 표지를 만나 차를 꺾어 좌회전하니 얼마 들어 가지 않아 갈림길이 나타난다. 왼쪽은 함백산 정상에 있는 중계소로 가는 길이다. 다시 정상쪽으로 향하자마자 길과 나무는 온통 눈꽃으로 덮혀 있어 별천지에 들어 온 기분이다.

눈서리꽃(상고대)과 쌓인 눈. 길은 점점 고도와 경사도를 높혀가며 심박수를 올리지만, 우리의 보는 즐거움은 긴장도와 상관없이 고조 된다. 마지막 설경을 즐기려는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닌 것 같다. 11시임에도 올라오는 길가에는 삼각대를 펼쳐 놓고 절경을 담으려는 사진가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만항재 올라 가는 길옆 작은 마을의 고드름
만항재 올라 가는 길옆 작은 마을의 고드름이덕은
드디어 중계소. 철탑은 눈서리에 솜사탕이 붙은 것 같고 내려갈 때 급경사가 걱정되기도 하지만 우선 차에서 내려 저 아래 눈덮힌 능선을 감상한다. 구름 안개에 싸인 중계소 철탑은 싸래기눈에 뿌옇게 보이고 철탑은 솜사탕을 가져다 붙여 놓은 것처럼 보인다.

눈쌓인 내리막 길에서 브레이크 잡는 것은 가급적 피하라고 하지만 수동변속기가 아닌 오토 4륜구동의 로우기어에 느긋하게 몸을 맡기기엔 저 아래 급경사 코너 가드레일 아래가 너무나 걱정된다. 짧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려 오지만 결국 차는 산기슭쪽으로 슬슬 미끄러진다. 지프차를 대놓고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보며 훈수를 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묘 갔을 때 급경사로에서 로우기어 연습이라도 해볼 걸….'

얕은 구름이 눈서리꽃이 핀 나무에 윤곽을 그리듯 깔려있다.
얕은 구름이 눈서리꽃이 핀 나무에 윤곽을 그리듯 깔려있다.이덕은
겨우 코너 하나 내려오니 이제야 로우기어를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 '감'이 오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차를 끌고 내리막 코너에서 다른 한 사람이 내려오기 기다리길 3번 정도 하니 그제서야 아직도 불안한 듯 동승한다.

태릉선수촌 태백분소 앞에서 고개길 마지막 고비를 못 넘기고 미끄러지는 승용차를 보며 태백으로 내려가 황지연못에 들른다.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은 하루 용출량이 상당한 듯 주변 바위가 이끼도 없이 깨끗하다. 무사하산을 기념하여 동전을 연못에 던져 넣는다. 공원으로 만들어 놓은 황지연못은 노인네들과 주변 건물에 그늘지어 을씨년스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태백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인 황지자유시장 순대골목. 김이 오르는 순대를 간식거리로 사들고 다시 31번도로를 거쳐 만항재 정암사 영월로 향한다. <삼촌식육식당>에 들러 육개장을 하나 들고 동강사진박물관으로 향한다.

함백산 중계소 철탑 솜사탕처럼 눈이 걸려있다.
함백산 중계소 철탑 솜사탕처럼 눈이 걸려있다.이덕은
군청과 접해있는 동강사진박물관은 한국방송공사(KBS) 영상제작국 제작부장을 역임했던 김기찬씨의 <골목안 풍경>이라는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동강사진박물관 http://www.dgphotomuseum.com/donggang.php).

이제 귀경. 중앙고속도로로 들어가지 않고 제천-충주간 국도, 비록 국도지만 차가 밀리는 영동고속도로로 가느니 오히려 이 길이 막히지 않는다. 목적지를 '집으로'에 맞추고 네비게이션이 가리켜주는 코스 대신 내멋대로 가니 화살표의 '유턴' 표시가 진행방향을 꾹꾹 누른다. 집에 올 때까지 내멋대로 오니 네비게이션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기분이 참 나.쁩.니.다."

눈꽃
눈꽃이덕은

하산걱정을 잊을 정도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산걱정을 잊을 정도로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이덕은

황지연못. 무사하산을 기념하여 동전을 던진다.
황지연못. 무사하산을 기념하여 동전을 던진다.이덕은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보기 클릭
http://yonseidc.com/2007/ hambaek_01.html

덧붙이는 글 더 많은 사진보기 클릭
http://yonseidc.com/2007/ hambaek_01.html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3. 3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4. 4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