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벌판에 선 손학규만 죽었나?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3.21 14:46수정 2007.03.21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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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며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며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어제(20일) 한 꼭지 조간신문 리뷰를 쉬었다. 신문을 열심히 읽었지만 '한 꼭지'를 찾기가 어려웠다. 내심 여러 변명거리를 찾았지만 아무래도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소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컸다. 돋보이는 기사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왜? 너무 '옳은 말'들이어서 덧붙일 말도 없었다.

오늘 손학규 전 지사 탈당을 다룬 많은 기사들도 사실 어제의 재탕이거나 그 이야기를 조금 더 늘인 것이 대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보따리 정치인' 언급과 손 전지사의 '반박 비난'이 추가됐을 정도다.

그래도 눈에 띄는 기사, 아니 칼럼들이 있다. 손학규 전 지사의 선택에 대한 칼날 같은 분석과 손 전 지사의 탈당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 '순수 선거정당' 출현에 관한 글들이다.

시베리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말'이 결국 도화선이 된 것일까? "손 전 지사는 당에 있어도 시베리아, 밖에 나가도 시베리아"라는 말은 가뜩이나 수세에 몰린 손 전 지사를 자극했을 법 하다.

손 전지사가 탈당이 곧 '죽는 길'임을 고백한 것을 보면 어쨌든 안팎으로 시베리아 허허 벌판임을 절감하고 내린 결단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출구도 없는 한나라당이라는 시베리아 벌판에 갇혀 얼어 죽느니, 걷다 보면 그 벌판 끝이라도 나올지 모를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택한 것은 어찌 보면 생존본능에 충실한 선택일 것이다.

탈당, 세 싸움에서 밀린 손학규의 '자살골?'

하지만 <한겨레>의 성한용 선임기자는 오늘(21일) 기명칼럼에서 '손학규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의 탈당 "기자회견은 장례식"이었다고 단언한다. 왜 그렇게 보는가?


성한용 기자는 손 전지사의 행보에는 '결단'만 있었지, '준비'는 없다고 스스로 고백할 정도로 그의 구상이 공허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실정치의 냉혹한 논리 속에서 명분도 없고, 세 싸움에서 밀린 손학규의 '자살골'이라는 분석인 셈이다.

성한용 기자는 그 구체적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한나라당의 좌파정권 비난의 후폭풍을 맞았다는 것이 그 하나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권을 줄곧 '좌파'로 몰면서 상대적으로 개혁적 정체성을 가진 손 전지사가 설 땅이 없어졌는데, 그런 그가 노무현 정부를 여전히 '무능한 좌파'로 비난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들었다. 그의 정체성이나 명분이 취약할 대로 취약하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세태에 졌다"는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한 민주계의 총아였으면서도 YS(와이에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했다. 믿었던 소장파들도 떠났다. 누구 탓인가?

성한용 기자는 그 누구 탓도 아니고, 세태에 진 바로 손학규 자신의 탓이라고 지적한다. '강한 쪽에 줄서는' 세태를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아니, 그런 세태의 흐름을 자신에게 끌어오지 못한 탓이 크다는 메시지가 더 강해 보인다. 성한용 기자는 그런 손 전 지사의 결정적인 약점으로 손 전지사의 메시지가 복잡하다는 점을 꼽았다.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대표의 '간결함'을 갖추지 못한 것이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분석이다.

물론 성한용 기자의 글이 그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너무 가혹하다. 손 전 지사가 '살 길'을 내놓았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불쏘시개도 될 수 있고, 치어리더 될 수 있다"는 손 전 지사의 말처럼 "자신이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죽으라'는 이야기다. 정치는 역설이기 때문에.

경박한 정당체제가 문제

a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며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며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민일보> 이진곤 주필의 기명칼럼(떠나는 사람 어쩌겠는가만…)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떠날 수 있는 정치적 환경과 정당구조 변화에 주목했다. 비단 손 전 지사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 세 불리하면 다음에 다시 만나자며 기획탈당 까지도 불사하는 정치판, 구체적으로는 여권의 이합집산에 더 주목했다.

3김이라는 강력한 보스 체제 하에서 강력하고 견고한 거대 정당 체제가 과거 정치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당 공천 후보까지를 국민경선으로 뽑는 식의 경박한 정당체제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곤 주필은 그 기원을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의 경선, 즉 국민참여경선에서 찾았다. 국민참여경선제가 거대 정당의 존립에 근본적인 회의를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급기야 열린우리당 의원 일부가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라며 당을 떠난 것은 '순수 선거정당' 출현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기도 하다. 이른바 범여권, 혹은 '반 한나라당' 주자들이 손 전 지사의 탈당을 반기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진곤 주필은 "이것이 시대와 세태의 변화의 한 양상이라면 어쩌겠는가"라고 되뇐다. 다만 "정치과정과 정치행태가 너무 경박"해지는 것이 우려되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바람처럼 사는 것"이 멋있다며 여러 정치인들이 본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런 정당과 그런 정당의 후보들을 놓고 유권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반문이기도 하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성한용 기자는 '손학규의 죽음'을, 이진곤 주필은 '정당정치의 사망'을 각기 선언한 셈이다.

여론은 무엇을 원하는가

이 두 분의 분석에 힘입어 하나만 곁들여 보자.

그러면 그렇지 않은 정당이나 후보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살아있는가? 혹은 살 길로 가고 있는가?

나름대로 주목해본다면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반응 정도다. 대다수 언론의 한결같은 비판이나 그 강도와는 달리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은 예상처럼(어느 기준이냐가 문제이긴 하다)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어떤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오히려 '잘했다'는 응답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손 전 지사에 대한 지지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이 같은 여론의 지표는 명분과 원칙을 떠나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필요하다고 보는 여론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열린우리당이 사실상 당 해체 상황을 맞고 있는 것 역시 '여론의 압력'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기존의 정당과 정치세력, 정치행태에 대한 총체적인 '해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여 사람들은 지금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바람 같은 정치인"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다. 지금 시베리아 벌판에서 자유로울 정치인, 정당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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