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곡을 찌르고 의표를 찌르는 맛

[서평] 조남준의 <시사 SF>

등록 2007.03.21 18:37수정 2007.03.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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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남준의 <시사 SF>.

조남준의 <시사 SF>. ⓒ 청년사

'시사만화'라 하면 무언가 정곡을 찌르고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있어야 한다. 특히나 이 일은 제한된 분량 안에서 간결하고도 치밀하게 이루어지는 작업이므로 그 속도감과 강렬함에서 특유의 묘미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조남준의 <시사 SF>는 독자들에게 어떠한 참맛과 묘미를 주고 있을까? 우선 사회 전반의 시사 문제를 골고루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읽는 이의 선택 폭이 넓다는 것부터 말해 두어야겠다.


패러디 풍자물 '검찰청 사람들'이나 '다큐멘터리 정상시대'는 정곡을 찌르고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마술이라는 비유적 도구를 적절히 활용하여 만화가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은근슬쩍 띄웠다 여지없이 뭉개버리는 억양법적 반전에 따른 시원스러움이 있다.

자신의 병영집체훈련 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현실을 풍자하기도 하고, 비리와 은폐로 얼룩진 사회를 풍자한 '거짓말탐지기',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인의 무책임성을 풍자한 '면책특권', 뇌물을 주고받는 두 개의 상황을 연결시켜 재미있게 구성한 '뇌물' 등도 읽을 수 있다.

시사만화는 추상적 성격의 사회 문제를 시각화시켜 선명히 제시한다. 예를 들면 '끝'의 경우 입시와 사회경쟁 구도라는 문제를 연속된 '담'으로 시각화하고, '권위'는 '림보'를 형상적 도구로 활용하여 재치 있게 권위의 강제성과 폭압성을 조롱한다.

세 편으로 이루어진 '균형' 시리즈는 이 책의 백미다. 사회 양극화가 아주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얽히고설킨 문제이자 긴장의 축과 축의 대결이라는 것을,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단순화시켜 보여준다.

조남준의 <시사 SF>는 '시사'에 'SF'를 더한 만큼 만화가의 상상력을 기대해 보게도 한다. '생산되는 아이들', '게놈', '개', '가위 만세' 시리즈는 바로 그러한 작품일 것이다.


'생산되는 아이들'은 미래사회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오히려 인공수정을 통해 가족 없이 태어난 아이가 지금 사회를 가리켜 "옛날엔 가족이라는 좋지 않은 풍습이 있었구나"라고 중얼거린다. '게놈'에서는 자녀의 건강이며 적성이며 인성이 부모의 재력에 따라 결정된다. 미래사회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교육 격차나 자녀 양육이라는 오늘의 문제를 그려내고 있다.

a 조남준의 '다큐멘터리 정상시대'(17쪽).

조남준의 '다큐멘터리 정상시대'(17쪽). ⓒ 조남준

'개'는 재미있다. 인간과 개의 상황을 역전시켜 보여준다. 개가 인간에게 이런저런 수술을 시키고는 개목걸이를 채워 산책을 나간다. 동물학대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또 '가위 만세' 시리즈 두 편은 '냉동인간'이라는 소재와 결합시켜 무원칙한 검열을 풍자한다.


자잘한 소시민의 일상의 결을 보여주기도 하고 소박한 사유의 일면을 내비치기도 한다. '싸나이 쓴 가슴'이나 '용두사미'가 앞의 경우라면, '소유가 늘어날수록'이나 '정체성'은 뒤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인생'은 인생의 맥을 짚어낸다. 대개는 일하고 보수를 받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만, 알고 보면 그것이 무언가에 매여 지내는 삶이 아니냐는 반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불 지르듯 한 곳으로 내모는 교육현실을 그려놓고 있는 '대입', 남성의존적인 여성을 풍자한 '병마개', 가정폭력의 근본문제를 지적하는 '구타', 언론보도의 왜곡 가능성을 한 컷에 보여주는 '오도',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여기는 정상이다', '가시거리 3.5Km', '단비' 등도 함께 볼 것을 권한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조남준 / 펴낸날: 2007년 2월 16일 / 펴낸곳: 청년사 / 책값: 9800원

덧붙이는 글 * 지은이: 조남준 / 펴낸날: 2007년 2월 16일 / 펴낸곳: 청년사 / 책값: 9800원

시사 SF - 조남준의 소셜 판타지

조남준 지음,
청년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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