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행, 왜 북한자금 이체 받기 거부하나

[분석] 북-미-중 정부와 은행간에 복잡하게 얽힌 'BDA 방정식'

등록 2007.03.23 14:49수정 2007.03.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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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북한과 미국이 BDA 자금 수신처로 합의한 중국은행이 자금의 투명성을 문제 삼아 이체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북핵 6자회담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22일 중국 베이징의 중국은행 본점.

북한과 미국이 BDA 자금 수신처로 합의한 중국은행이 자금의 투명성을 문제 삼아 이체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북핵 6자회담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사진은 22일 중국 베이징의 중국은행 본점. ⓒ 연합뉴스 이정훈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된 6차 6자회담이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22일 끝내 휴회에 들어갔다. 북한은 동결 해제된 BDA 자금이 수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실질토의에 임할 수 없다며 버텼고, 미국과 중국은 지난 나흘 동안 문제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댔으나 결국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모두 이 문제 해결에 앞으로도 1~2주일이 더 걸릴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정부가 북한계좌의 '전면해제'에 동의하는 입장을 이미 발표했고, 중국정부도 6자회담에 지장이 없도록 이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입장인데 왜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일까?

직접적 원인은 북한이 자금수령 창구로 지정한 중국은행(BOC. Bank Of China) 측이 문제의 자금 이체 받기를 거부한 데 있다. 그렇다면 중국정부도 동의한 'BDA 문제' 해법에 국영은행인 중국은행이 협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중국은행을 창구로 지정했을까? 자금 이체를 받을 다른 은행을 찾는데 1~2주일이나 걸리는 이유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이 문제가 단순한 '기술적ㆍ절차적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꼬리를 물고 있어 점점 해결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 문제는 북한-미국-중국 3국 사이에서 정부간 관계뿐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히면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3국의 계산과 속사정을 짚어본다.

[미국] 재무부와 협상단의 이견 조율 시간 걸릴듯

'BDA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모순된 미봉적 일 처리가 이 같은 혼란을 부른 근본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지난 19일 오전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대니얼 그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가 함께 베이징에서 BDA에 동결된 북한자금 2500만 달러의 '전면해제'에 동의하는 설명을 발표했다. 이는 사실 앞서 14일 재무부가 발표한 BDA 조사결과와는 모순된 것이다.

재무부는 14일 발표에서 BDA의 많은 북한계좌 예금주들이 돈세탁과 달러화 위조, 마약 거래 등에 연루된 기업들과 연관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BDA는 비정상적인 계좌의 출처를 입증하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미 금융기관들의 BDA 계좌 유지와 BDA의 미 금융시스템 접근을 금지하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했다.


BDA의 북한자금이 불법행위에 관여돼 있다고 명백히 밝히고, 그 자금을 취급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초강경 제재조치를 취하면서도 정작 그 자금은 풀어주라는 것이다. 중국은행이 북한자금을 취급하게 되면 미 재무부로부터 BDA와 같은 제재를 받을 것을 우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런 모순이 나타난 것은 이 문제 해법에 대한 미국 내 의견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협상파'에 마지못해 끌려간 결과로 보인다. 재무부는 당초 문제 없는 자금만 '선별 해제'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조사결과를 발표했으나, 결국 '전면 해제'로 결론이 난 뒤 능동적인 후속조치들을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상황이 이렇게 꼬이자 그레이저 부차관보를 다시 베이징에 파견, 문제해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토니 스토 백악관 대변인은 22일 "6자회담이 휴회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서 야기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그레이저 부차관보가 BDA에서 동결 해제된 북한자금을 이체 받을 중국 또는 제3국의 금융기관들에 대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이란 미국정부의 입장을 어떤 형태로 보증할지가 해법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a 중국측 6자회담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 22일 공전을 거듭하던 6자회담 휴회를 선언한 뒤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위 호텔에서 폐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중국측 6자회담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이 22일 공전을 거듭하던 6자회담 휴회를 선언한 뒤 중국 베이징의 댜오위타위 호텔에서 폐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중국] 중국은행 설득작업... 안되면 3국 경유 모색

6자회담이 휴회에 들어간 뒤 중국정부는 중국은행을 설득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은 22일 "중국은행이 책임을 맡을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정부가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은행은 자체 관심사가 있고 정부는 해결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각방이 중국은행과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을 벌이고 있지만 그들의 우려사항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 부부장이 말한 '우려사항'이란 물론 미 재무부가 불법자금으로 발표한 북한자금을 취급함으로써 중국은행이 받을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를 미국측이 쥐고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도 중국은행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중국은행은 중국 제2의 은행이며 주식의 60% 정도를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4대 국영상업은행(중국공상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건설은행)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세계적 시장인 홍콩증시에 주식을 상장함으로써 중국정부의 말을 일방적으로 따를 수만은 없는 입장에 있다. 다른 주주들의 입장도 고려, 국제기준에 따른 투명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자금을 받을 수 없다는 중국은행의 입장은 상당히 완강한 것으로 보인다.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측도 고도의 책임감을 갖고 불철주야 협상을 진행했으나 그 해결은 회담 참가국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어려웠다"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결국 북한자금을 받기 어렵다는 입장을 완곡히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 정부는 베트남, 몽골, 러시아 등 제3국의 북한계좌로 송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과연 중국은행에 대한 설득을 못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이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기 힘들다. 다만 미국이 중국정부 관할 하에 있는 BDA에 대해 가혹한 제재조치를 취한데 대한 항의표시이며, 북한에 대해서도 불법거래는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란 해석도 있다.

a BDA 북한자금 반환문제로 제6차 6자회담이 파행을 거듭하며 나흘째를 맞은 22일 북한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베이징 서우두공항을 통해 돌연 귀국하고 있다.

BDA 북한자금 반환문제로 제6차 6자회담이 파행을 거듭하며 나흘째를 맞은 22일 북한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베이징 서우두공항을 통해 돌연 귀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훈


[북한] '입금확인'... 자금 전액 확보되어야 해결된 것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BDA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동결됐던 자금이 전액 수중에 확보돼야만 최종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라는 것이다. 당초 19일 미국이 성명을 발표했을 때 다들 이 문제가 끝난 것으로 봤지만 북한이 예상치 않게 '입금확인'을 고집하며 버틴 것은 결국 이렇게 송금절차가 지연되는 상황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BDA계좌 동결조치로 파급된 자신들에 대한 전 세계적 금융제재를 한꺼번에 풀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금수령 창구를 중국은행으로 지정한 것도 의도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2005년 9월 BDA를 북한의 돈세탁 우려 은행으로 지정한 직후 중국은행도 북한계좌들에 사실상의 동결조치를 취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지난해 7월 미국을 방문했던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백악관 출신 전직 고위관리로부터 들은 얘기라며 이 같은 정보를 전했었다.

당시 박 의원은 "2005년 미 재무부의 조사는 BDA에 그치지 않고 마카오 내 중국은행 지점들로 확대됐다"면서 "결국 중국 당국이 미국과의 공조 차원에서 중국은행의 북한 계좌들도 동결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은 중국은행이 이번에 북한자금 받기를 거부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중국은행을 비롯, 전 세계적 금융제재를 한꺼번에 푸는데 있다면 이 문제는 좀 더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냥해서 북한이 받고 있는 금융적 불이익을 모두 해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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