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울에 진 마음의 빚, 갚으셨습니까

대추리 마지막 촛불집회...주민들, 웃다가 운 사연

등록 2007.03.25 11:54수정 2007.03.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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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지킴이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공연을 펼치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지킴이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공연을 펼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4일 오후 5시께. 소주잔을 기울이기엔 좀 이른 시간이지만, 이날 평택 팽성읍 대추리만은 예외다.

저녁 7시부터 농협 창고에서 열릴 마지막 촛불집회(935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활동가 3명(남 1·여 2)은 연탄불도 꺼진 냉방에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오늘같은 날은 술 한 잔 하고 촛불집회에 가야하지 않겠느냐"며 너스레를 떤다.

이들의 속을 달래주는 안주는 방금 데운 두부김치와 부추김치 그리고 '명숙이' 멸치다. 올해 초 주민들이 이주에 합의한 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마을을 방문할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오보였는지 다른 일정에 밀린 것인지, 국무총리 대신 멸치 두 상자가 편지와 함께 각 가정에 배달됐다. 활동가들은 꼬인 속을 멸치에 푸는 듯했다.

하기야 국무총리가 방문하면 무엇이 달라지겠나. 이미 이주 마감기한까지 이달말로 정해졌고, 44가구 중 한 가구가 이틀 전 이주의 첫 테이프를 끊고 임시 거처인 송아리로 옮겼다.

마지막 촛불집회라고 외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에게도 고마움 반, 원망 반이다. 대추리 구석구석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한 무리의 대학생들을 보며 한 활동가가 "다 마음의 빚을 갚으러 온 것 아니겠냐"고 말한다.

활동가들도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누군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일부는 서울로 돌아가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활동가 8명은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진행해 이것을 책으로 묶을 계획이다.


외부에서 '반미 불순세력'이라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주민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소주병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누군가 '봄날은 간다'를 선창했다.

오랜만에 북적인 대추리..."사과드리러 왔습니다"


a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한 주민이 착잡한 표정으로 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 한 주민이 착잡한 표정으로 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날 촛불집회에는 마을 주민들을 비롯해 성공회대학생들, 민주노총 경기지부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주차 정리를 위해 빨간색 야광봉이 등장할 정도로 마을은 붐볐다. 주민들은 노인정 부엌에 대형솥을 걸어 언제 볼지 모르는 외지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이날 촛불집회는 활동가들과 학생들의 축하 공연으로 흥겨운 분위기로 진행됐지만, 3년여간의 이주 반대 투쟁에도 집터를 내줘야 하는 주민들을 향한 외지인들의 미안한 마음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는 무대에 올라 "오늘 서울 광화문에서도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위해 촛불집회를 열지만, 이 자리에 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며 "마음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FTA 체결에 반대하며 13일째 단식농성 중이다.

한 상임대표는 "주민들의 몸부림, 문정현 신부와 대추리 지킴이들의 눈물에 더 힘을 합쳐 투쟁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편으로 주민들께 축하드린다"며 "지난 투쟁 기간 동안 최고의 생을 살았을 것이다, 온 몸을 바친 투쟁의 불씨를 키웠다"고 평가했다.

"이 사람들을 못 만난다니..."

a 지난해 9월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국방부의 강제철거가 집행되면서 마을 전체는 폐허로 변했다. 그나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 쪽으로는 철거건물 잔해가 넘어가지 않도록 반쪽만 무너뜨려 그 모습이 흉측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9월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 국방부의 강제철거가 집행되면서 마을 전체는 폐허로 변했다. 그나마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 쪽으로는 철거건물 잔해가 넘어가지 않도록 반쪽만 무너뜨려 그 모습이 흉측하기 그지없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혔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가 눈물을 흘리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곁에서 위로하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혔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문정현 신부가 눈물을 흘리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곁에서 위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혔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한 주민이 단체 관계자들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라 이달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하는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24일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마지막이 될 935번째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촛불을 밝혔다. 이날 문화제에 참석한 한 주민이 단체 관계자들과 부둥켜안고 울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먼 미래긴 하지만, 주한미군이 철수해 다시 마을을 찾을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종원 이장은 "지금이 끝이 아니다, 지금은 쫓겨나지만, 미군이 영구주둔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10년 뒤 이 땅에서 여러분과 함께 대추리와 도두리 마을을 다시 건립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마을을 되찾을 것을 대비해 '타입 캡슐'용 항아리를 지정해 참석자들의 편지, 투쟁가요가 담긴 CD 등을 보관했다. 헤어지는 아쉬움만큼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이같은 기대에도 마을을 비워줘야 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촛불집회가 끝날 무렵 참석자들은 어린 아이처럼 울어댔다. 마을 주민들과 노래에 맞춰 어깨춤을 추던 문정현 신부부터 20대의 활동가들까지 부둥켜안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주민인 김석경(79) 할아버지는 귀가하던 발길을 돌리며 "이 사람들을 못 만나게 된다니, 너무 아쉽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임시 거처를 둘러봤다는 그는 "신축이라 좋긴 하더라"면서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돌아다니기에 익숙한 마을에 비하면 말도 못하게 불편할 것 "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아들 내외와 손자 둘을 데리고 내주 마을을 비울 계획이다.

주민들이 떠나는 그 자리에는

주민들이 평생 일군 논밭을 버리고 떠나는 땅에 미군들이 일가족을 데리고 살러 온다. 인연의 끈이 전혀 없을 것 같았던 주민들과 미군들 사이에 이주자와 신규 거주자의 연이 생긴 셈이다.

노인정, 못 한 개 쓰지 않고도 20년을 서있는 나무집, 활동가들이 애써 만든 어린이방 등이 허물어지는 곳에 미군 사격장, 워게임 시뮬레이션 센터, 활주로 등이 선다. 누군가는 이 곳을 '동북아 군사복합지역'이라 치켜세웠지만, 이 같은 청사진이 주민들에게는 칼이 되어 돌아왔다.

밤 9시 반쯤 촛불집회가 끝나고 외지인들은 차를 몰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왠지 이날 밤 대추리의 모든 술은 동이 날 것 같았다.

a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935일동안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를 열었던 대추리 농협창고.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935일동안 매일 저녁 촛불문화제를 열었던 대추리 농협창고.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반전평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평택 대추리의 대추분교는 이미 폐허로 변했다.

반전평화운동의 상징으로 떠오른 평택 대추리의 대추분교는 이미 폐허로 변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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