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일행이 지나는 길목을 노려라

[태종 이방원 62]암살 음모자들과 조우하다

등록 2007.03.26 20:17수정 2007.03.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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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에서 황제가 있는 금릉이 직선코스라면 연경은 우회코스다. 갈 길이 바쁜 사신일행은 단 하루가 아쉬웠지만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연왕(燕王)의 초대를 무시한다는 것은 천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방원은 연왕의 부름을 명(命)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명나라의 막강한 실력자 연왕을 알현한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 생각했다. 찬스 포착의 귀재 이방원이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명나라의 실력자 연왕의 눈도장을 받아둔다는 것은 조선을 압박하는 명나라에 우군을 심어두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요동을 떠나 심양을 지날 때 비로소 이 땅이 전쟁을 치르는 나라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백성들은 20년 이상 지속된 전쟁에 지쳐있었다. 전쟁피로가 역력했다. 수시로 발동되는 총동원령에 싫증을 내고 있는 모습이 확연했다. 전쟁은 백성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권력자를 위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대는 달랐다. 식량을 비롯한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수레와 이동하는 장졸들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았다. 원나라와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 명나라는 전력을 북방전선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려촌에서 생긴 일

사신 일행은 남행을 계속했다. 산해관(山海關)을 지나고 청룡하를 건너 풍륜성을 통과하니 낯익은 집들이 나타났다. 초가집이었다. 고려보(高麗保)라는 중국속의 고려촌(高麗村)이었다. 고구려 패망 이후 조국에서 끌려온 유민들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집단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고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고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중국인들과 달리 흰옷에 벼농사 지으며 우리네 풍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촌락의 고려인들이 쌀밥과 김치를 내왔다. 막걸리도 곁들였다. 오랜만에 쌀밥과 된장국을 먹었다. 조국의 향수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같은 민족을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고 그들로부터 우리의 음식을 대접받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저녁 무렵, 손님이 찾아왔다. 정사 방원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고려촌의 학사(學士)라고 했다. 체격이 우람한 젊은이를 대동하고 찾아왔다. 젊은이가 포함되어 있어 수행원들은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고국에서 출발하기 전 암살 음모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네가 선물 꾸러미를 풀었다. 떡이었다.

"이곳에 수수는 찰지지 않아 떡을 해도 맛이 없지요. 그래서 고국에서 종자를 들여와 수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도 우리네 수수떡 맛을 보면 좋아한답니다."

팥으로 모양을 낸 경단이었다. 한입 맛을 보았다. 찰진 맛이 예전 함흥에서 먹어보았던 고향의 맛이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국의 지체 높으신 분을 뵙게 되어 광영입니다."
"이르다 말씀입니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정중한 예의에 방원도 중후한 범절로 답했다. 그렇지만 지체 높으신 분이라 하니 몸 둘 바를 몰랐다. 임금의 아들이라 하지만 아무런 직책을 갖지 못하고 추동 사저에서 칩거하고 있지 않은가. 사신이라 하지만 잘못한 것도 없이 황제에게 용서를 빌러 가는 신세가 아닌가.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우리말과 한문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하, 훈장 선생님이시군요."

고려촌의 아이들에게 한문과 우리말을 가르치는 훈장이었다. 환갑을 넘긴 듯한 나이에 하얀 턱수염이 풍채를 갖추고 있었다. 훈장 냄새가 물씬 풍겼다.

"선생님이라 할 것 까지는 없고 이 늙은이가 어렸을 때 어르신들에게 우리말을 배웠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읍지요."

"훌륭한 일을 하십니다."
"나으리로부터 과찬의 말씀을 들으니 송구스러워 민망할 따름입니다."

노인은 잠시 말을 끊었다. 무슨 말인가 할 듯 말듯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원도 노인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이른 아침 연경을 향하여 출발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찾아온 손님을 강제로 내보낼 수 없었다.

"황공한 말씀이오나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오? 어서 말씀해보시구려"

답답했다. 성격이 급한 방원이 방방 뛸 일이었다. 이러한 방원의 조급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꾸물대던 노인네가 우물쭈물하더니만 입을 열었다.

"얘, 칠복아 어서 나으리께 절을 올려라."
노인네를 따라왔던 젊은이가 방원 앞에 넙죽 엎드렸다. 절하는 품새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기골이 장대한 무골풍의 젊은이였다. 방원은 뜻밖의 절을 받느라 당황스러웠다.

"실은 사신 일행이 우리 고려촌에서 묵고 연경으로 가는 길목 파리보(巴里堡) 다리위에서 나으리를 도모하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사람이 이 젊은이지요."

노인네가 조금 전 방원 앞에 절을 올린 젊은이를 가리켰다. 젊은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방원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하마터면 파리(巴里)에서 파리 목숨이 될 뻔 하지 않았는가. 동포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경계가 느슨해질 지점이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한 젊은이들을 이 늙은이가 말렸습니다. '너희들이 방원이를 죽인다고 선죽교에서 죽은 정몽주가 살아오지 않지 않느냐'고 설득했지요. 그리고 또 하나 이국땅에서 우리끼리 죽고 죽이는 일은 민족의 추태라고 생각했습니다."

휴우, 방원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고국에서 출발하기 전, 암살음모가 있다는 사설정보팀의 보고를 받았을 때 설마 했었다. 운명은 제천이라 생각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명나라 땅을 밟으면 정면 돌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한 음모세력과 이렇게 부딪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이렇게 고백의 말씀을 올리고 나니 후련합니다. 잠시라도 흉측한 생각을 했던 무지랭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다만 그러한 생각을 했던 마음을 용서해 주시라는 말씀이고 우리가 나으리를 용서해드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뜻을 거두어 주십시오."

노인네가 젊은이 손을 잡고 방원 앞에 엎드렸다. 목에 힘을 주고 절을 받아야 할 신분 차이지만 가벼운 맞절로 화답했다. 갈수록 태산이다. 누가 누구를 용서해준단 말인가. 이곳이 중국 땅이 아니고 조선 땅이라면 당장 목을 날릴 망발이었지만 여기는 중국 땅이지 않은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수떡을 담았던 함지박이 나가고 찻잔이 들어왔다. 중국본토의 홍차가 아니라 고국의 녹차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마셔보는 녹차였다. 은은한 다향(茶香)에 잠시 취했다. 차를 마시는 동안 격앙되었던 서로의 감정이 평온을 되찾았다. 지게문 밖에서 별빛이 졸고 있다. 밤은 깊어갔다.

정몽주가 살아 있었다면 정도전의 독주를 견제했을 것이다

"포은의 덕망은 계속 이어졌어야 했는데 나으리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조국의 정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직한 목소리였지만 방원의 정곡을 찔렀다. 답변하기 껄끄러운 질문이었다. 이국땅에서 청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정몽주를 왜 죽였느냐고 힐난하는 물음이었다.

이것이 바로 역린(逆鱗)이다. 군주는 자신의 과오를 자기 스스로에게는 인정하면서도 신하가 추궁하면 용의 비늘이 거꾸로 서는 것이다. 하지만 방원이 군주가 아니었기에 비늘이 거꾸로 서지는 않았다. 질문하는 노인네 역시 방원에게 거꾸로 설 비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엄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방원은 뜨끔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이곳이 치외 법권 이국땅이 아니고 조선이라면 괘씸죄를 걸어 즉시 하옥할 발칙한 망동이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조선의 법률이 통하지 않는 중국 땅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물러설 방원이 아니었다.

"인간사,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사는 게 인간입니다. 고고하게 사시려고 먼 길 떠나신 게지요."

역시 방원다운 여유로운 답변이었다. 하여가(何如歌)로 회유하자 단심가(丹心歌)로 응수하던 그 때를 생각하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환갑을 넘긴 노인을 상대하면서 27세 청년이 이러한 답변을 한다는 것이 방원 자신도 놀라웠다.

"하하하, 역시 나으리다운 답변이십니다. 제가 쓸데없는 말씀을 드려 심기에 불편을 드렸다면 용서하십시오. 포은의 인물이 너무나 아까워서 그리 말씀드렸습니다."

방원도 공감하고 있었다. 정몽주를 격살할 당시엔 젊은 혈기가 앞섰지만 한 박자 늦췄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지금쯤 정몽주가 살아있었다면 정도전이 저렇게 독주하도록 방관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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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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