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비서실장은 단식농성장 방문
경찰은 '농성확대 결의대회' 원천봉쇄

[한미FTA D-5 : 현장① 단식농성장] 달래고 어르는 정부, 결론은 "단식 좀 그만 해라"

등록 2007.03.26 22:41수정 2007.03.2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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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26일 오후 문성현 대표를 찾아 단식농성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26일 오후 문성현 대표를 찾아 단식농성 중단을 호소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달래고] 문재인 "대통령께 보고 드릴테니, 이제 단식 그만"

"천정배, 김근태 의원께서도 FTA 반대 단식농성을 한다고 하는데, 이참에 삼각 단식동맹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건강에 심하게 부담되지 않나. 오늘 나눈 얘기는 대통령께 보고 드리겠다. 단식을 이제 그만 풀고 건강 추스리시기 바란다."(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한미FTA 협상 타결 시점이 임박하면서 시민사회의 저항이 거세지자 다급한 청와대가 '진화'에 나섰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26일 오후 청와대 정문 분수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를 찾았다. 문 대표가 단식농성을 벌인지 꼭 19일째 되는 날이다.

문 비서실장은 "비서실장 발령 뒤 여러 정당에 인사를 다닐 시기에 맞춰 문 대표가 단식을 시작했다"며 "진작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는 말로 첫 인사를 건넸다. 단식 3주가 다 돼 가도록 반응조차 보이지 않다가 타결 시점에 와서야 '관심'을 보인데 대한 일종의 변명인 셈이다.

문 대표는 "앉으시라, 이해한다"는 말로 맞아들였지만 곧바로 담아 둔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FTA와 관련해서 걱정이 태산 같다"며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시한에 쫓기지 않고 실익이 되는 협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익은 둘째 치고 시한에 쫓기는 것만이라도 안했으면 좋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문 대표는 또 "대통령과 저는 인연이 좀 있는 사이"라며 "만약 대통령이 이런 것들을 감안하지 않고 FTA를 추진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대립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 비서실장의 대응도 만만치 않았다. 문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민노당이 생각하고 걱정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협상 시한에 쫓기는 강박을 느끼지 말라고 한 것도 (민노당의 주장을) 참고하신 게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또 "(FTA가) 타결이 되면 실익을 놓고 평가 토론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며 단식 중단을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문 대표는 "타결 이후에는 어떤 내용도 변경이 불가능하다"며 단식농성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어 그는 정부의 '협상 내용 비공개 원칙'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문 대표는 "미국은 타결되자마자 의회에 (협의 내용이) 보고되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며 "협의 내용만큼은 미국과 동시에 공개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적어도 미국과 똑같은 속도로 국민과 국회에 내용이 알려져야 한다"며 "정부도 자신있게 협상했다면 공개를 피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타결되면 토론하는 자리 만들 것"-"자신있게 협상했으면 공개해야"

a 문 대표가 대화 도중 목이 마른지 생수를 마시고 있다.

문 대표가 대화 도중 목이 마른지 생수를 마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배석한 심재옥 민주노동당 최고위원도 최근 미국과의 FTA 협상이 결렬된 말레이시아 예를 들며 "협상 내용을 타결 이후에야 공개한다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이어 "협상 전략도 중요하지만 협상 내용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우선 필요하다"고 거듭 요구했다.

반면 문 비서실장은 '협상 중 내용 공개 불가'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문 대표 등의 주장에 "공감한다"면서도 "협상 방향, 전략을 밝히고 논의하면 불이익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협상은 정부에 맡기고 협상 후 평가는 여러분이 하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타결 이후 국회 비준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비서실장은 또 FTA 협상단이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문 비서실장은 "우리나라에도 협상력이 충분히 있다"면서 "미국이라고 해서 우리가 따라가지 못할 협상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협상을 견제하는 의회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시민사회가 훨씬 더 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시민사회의 '반FTA 정서'가 협상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를 함께 한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은 "미국은 의회의 입김이 바로 FTA 협상에 전달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 국회와 협상단 사이에는 담이 있고 이야기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화가 구체적으로 흘러가자 문 비서실장은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그는 "내가 지금 세부 내용을 다 알고 답하는게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서면서 "오늘 나눈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다 보고 드리겠으니 어서 단식을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대표는 "천정배, 김근태 의원께서도 FTA 반대 단식농성을 한다고 하니 이 참에 삼각 단식동맹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또 "상황을 봐 가면서 단식을 풀겠다"고 비켜갔다.

문 비서실장은 "건강에 심하게 부담되지 않느냐"며 "단식을 그만 풀고 건강 추스르시기 바란다"고 거듭 호소했다. 또 "다른 정치인들이 단식하는 것과 문 대표가 하는 단식은 좀 다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시민사회의 반발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는 제스처인 셈이다.

오후 4시께 단식농성장을 찾은 문 비서실장은 문 대표와 약 25분간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차를 타고 청와대로 돌아갔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형식적 방문'이 됐을 뿐, FTA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어르고] "기자회견도 못하나"-"막아, 무조건 막아"

a 열린시민공원에서 결의대회를 열려던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열린시민공원에서 결의대회를 열려던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a 경찰이 한 집회 참가자를 열린시민공원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경찰이 한 집회 참가자를 열린시민공원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26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한미FTA저지 범국본)이 주최하려던 '단식농성 확대 결의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다시피 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단식농성 확대 결의대회를 수십대의 경찰버스 '차벽'과 수백명의 전경으로 철저히 봉쇄했다. 열린시민공원에 들어가려던 대회 참가자들은 입구에서부터 경찰에 둘러싸여 꼼짝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 과정에서 공원 입구와 화단 곳곳에서 경찰과 참가자들 사이에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큰 불상사는 없었다. 공원 안에서 장기간 농성 중이던 사람들도 통로를 뚫기 위해 경찰과 맞붙어 일시에 아수라장이 연출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결의대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한 경찰은 단 한 사람도 포위망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심지어 몇몇 기자들이 '기자증'을 들어 보이며 통행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로 통과시키지 않았다. 지휘관들조차 "무조건 막으라"며 전경들을 독려했다.

이 때문에 한 때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 간에는 "개XX", "죽여"라는 등 고성과 험한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한 시민단체 참가자가 "기자회견도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몇몇 전경들에게서 "불법 집회를 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는 대답과 함께 욕설을 들어야 했다.

다른 시민단체의 여성 활동가는 전경들이 막고 서 있는 화단의 바닥을 흙투성이로 기어올라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일부 참가자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경찰이 몸으로 밀어내 몇몇 사람이 깔리는 아찔한 상황도 만들어졌다.

폭력 진압 비난에도 '날세운' 방패 공격 여전

a 경찰이 방패날을 세운 채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

경찰이 방패날을 세운 채 공격 준비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공원 내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참가자들이 다가서자 경찰은 방패날을 세워 공격하기도 했다. 지난 10일 과잉 폭력진압으로 이택순 경찰청장 등이 공개 사과한지 불과 보름 밖에 안됐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방패 공격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주변에는 '취재보호', '신변보호'가 새겨진 붉은 조끼의 '경찰 통제반'도 있었지만 별다른 제지가 없었다.

공원 곳곳에서 산발적인 몸싸움을 벌이던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자 안팎에서 약식으로 집회를 열었다. 또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는 이날 오후 4시부터 광화문과 청계천, 명동 일대를 돌며 '한미FTA저지' 거리선전과 퍼포먼스를 벌였다.

한편 한미FTA 협상 마감 시한이 오는 31일로 알려지면서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각계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개신교 목회자 300여명은 이날 저녁 8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촛불집회와 철야기도회를 열어 항의의 뜻을 밝혔다.

27일에는 오전 11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망국적 한미FTA 협상 중단 촉구' 각계각층 선언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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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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