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잘리고 제대로 묶였다

[자전거세계여행 현장보고 44] 9월6일 뉴델리 5일차-인도에 빠져들다 ②

등록 2007.03.28 15:33수정 2007.03.29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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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들판 한쪽 편의 큰 나무 앞에 멈춰 섰다. 변속기어가 없는 자전거, 넓고 투박한 검정색 안장, 쌀 한 포대를 실어도 넉넉히 버틸 것 같은 뒤 짐받이와 페인트칠이 반쯤 벗겨진 검정색 뒤 물받이.

외할아버지 창고 옆에 아무렇게나 서 있던 어린 손자들의 동경의 대상, 일명 '할아버지 자전거'라 불리는 너무나 '정겨운 그리움'을 인도 땅에서 다시 만났다. 무엇보다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핸들과 안장 사이의 V자 공간이었다. 그곳을 갈색 포대 2개가 가득 메우고 있다.


할아버지 자전거.
할아버지 자전거.박정규
'저게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페달을 밟으면 분명히 짐에 부딪힐 텐데…. 그냥 끌고 가는 거겠지? 아니면 부딪히지 않을 정도의 한정된 각도에서만 페달을 밟는 걸까? 뭔가 특별한 기술이 있겠지. 대단한 고수가 틀림없다!'

가르침을 받기위해 주인을 제법 기다렸지만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사진만 찍고 다시 길 위로 나섰다.

오후 1시10분. 거리 음식점이 보인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식당을 보면 밥은 먹어 줘야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자연스럽게 나무 테이블에 앉아서 주문을 했다. 메뉴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밥, 커리, 난이 고정메뉴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고정메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다른 메뉴도 있지만 큰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어디서나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점과 저렴한 가격 때문에 식당에서 먹는 경우에는 거의 밥·커리·난을 먹는다.

한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다. 콧수염만 'ㅅ' 모양으로 멋스럽게 기르신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이다. 촬영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고 카메라를 맡기자
밥 먹는 모습을 촬영해주시며 아주 흥미로워 하신다.

그리고 내 수염을 한참 쳐다보시더니 "동양인에게는 수염이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가 오리지널이라고요. 자르세요"라고 한다.

"하하, 싫습니다. 저도 수염 좋아해요. 지금 열심히 기르는 중이랍니다."
"음, 그럼 제 친구한테 수염 정리 좀 하세요. 잠깐 만요."
"네, 먼저 밥 먹고요."

유머 넘치시는 'ㅅ'코털 아저씨.
유머 넘치시는 'ㅅ'코털 아저씨.박정규
식당에서 식사중인 필자.
식당에서 식사중인 필자.박정규
식사가 끝날 무렵, 한 친구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빗과 가위를 들고 나타났다. '앗, 콧수염드레서 인가보다' 순순히 그들의 지시대로 식당 밖으로 향했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약간 뒤로 젖힌 채 두 눈을 감고 있으니 뭔가 눈앞에서 시원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곧이어 '샥~ 샥~ 샥~'하는 소리에서 더운 날 청량음료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려갈 때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콧수염 다듬는 일도 할 만 하구나.'


'ㅅ 코털 아저씨'는 이런 광경이 아주 흥미로운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시원한 움직임'이 멈추고 눈을 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후 상태확인했더니 굉장히 깔끔해졌다. 마음에 든다. 내 반응이 좋아서 일까 '수염드레서' 아저씨가 가게로 안내한다. 따라가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는 안마를 해주겠단다. 서비스인가? 혹시나 싶어서 가격을 물었더니 이발비 보다 비싼 가격을 부른다.


수염을 다듬고 있는 필자.
수염을 다듬고 있는 필자.박정규
안마는 포기하고 머리를 자르지 않고 좀 깔끔하게 하고 싶다고 하니까 갑자기 노란 고무줄로 뒤 머리를 질끈 동여매준다. '아 땡 겨' 뒤 모습을 카메라로 찍고 확인하니 덩치 좋은 여자 뒤 모습 같아 보인다. '하하' 절로 웃음이 난다. 오늘 제대로 잘리고 제대로 묶였다.

'ㅅ 코털 아저씨'가 이번에는 주방으로 안내한다. '난'을 굽는 화덕 앞에 서서 양손을 비비며 반죽을 흉내 내는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찰~칵', 아저씨가 사진 찍는 걸 너무 좋아하신다.

식당 안은 'ㅅ 코털 아저씨'의 밝은 분위기와 나그네의 엉뚱함으로 인해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주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화덕 앞에서 '난'을 만드는 '척' 하고있는 필자.
화덕 앞에서 '난'을 만드는 '척' 하고있는 필자.박정규
오후6시. 갑자기 소나기를 동반한 어둠이 몰려온다. '잠깐 쉴까? 아니, 더 어두워지면 숙소를 찾기 어려우니까 더 가보자.'

차량들의 불빛에 의지해 1시간째 달리던 중에 자동차, 오토바이 운전자, 자전거 탄 사람들이 어둠을 가르고 날 향해 '돌진'해온다. 나와 같은 방향의 숫자가 훨씬 부족하다. 3:7 정도 될 듯, 역주행하는 느낌이다.

다행히 비는 금방 그쳤지만 너무 배고프다. 점점 힘이 빠진다. 집중력도 떨어진다.
중국에서 헤드라이트를 분실한 후 야간주행에는 달빛 또는 차량들의 불빛에 의지해왔다.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만큼 피로도도 높고 빨리 배고파진다는 게 최대의 단점이다. '어~ 식당이다.' 발길은 이미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기사식당.
기사식당.박정규
큰 나무 두 그루가 식당 앞에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고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가지 사이로 작은 별들의 맑은 얼굴이 보인다. 불이라고는 가스 등 하나 밖에 없다. 혼자서 넓은 공간을 비추기 위해 분주히 여기저기 빛을 흩트리고 있다. 마치 물분부기 안에 빛을 가득 채우고 물안개를 뿌리는 것처럼…. 동화속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는 것처럼 너무 평온하고 따스한 느낌이 든다.

45분을 기다려 15분 만에 저녁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들어왔다. 사방이 대낮처럼 환화다. 아까는 조명장치에 이상이 있어서 그랬나보다. 너무 밝은 빛과 수많은 하루살이들의 날개소리 덕분에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좀 전이 좋았는데…. 다시 어둠속을 향해서 역주행 시작.

도시로 진입하니 가관이다. 도로 가운데 검은 소들이 너무 편한 자세로 누워 있기도 하고 그냥 멍하니 서있다. 운전자들은 경적 한번 울리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소들을 피해간다. 가서 소 엉덩이를 '철~썩' 소리가 나도록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숙소를 찾는 일이 급선무다.

어둠속을 역주행했다.
어둠속을 역주행했다.박정규
한 상가 앞에서 길을 물어보는데 옆에 있던 '사이클 릭샤' 아저씨가 길 안내를 자청하고 나섰다. 왠지 돈을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에 먼저 물어 보려고 했는데 그냥 먼저 출발해 버렸다.

첫 번째 호텔 도착. 500루피란다. 망설일 필요 없이 밖으로 나왔다. "전 싼 곳을 원합니다. 네, 저렴한 곳이 있으니까 따라 오세요." 두 번째 모텔 도착. 사장님과 이야기가 잘 되어서 50루피에 흥정 성공이다. 거기다가 자전거는 모텔 아래층의 자동차 수리 점 안에 주차할 수 있게 해주셨다. 안내해 준 아저씨에게 수고비로 10루피를 드리니까 아주 흡족해하시며 돌아가셨다.

밤10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10분가량 인터넷 카페를 찾아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내일 아침 10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시장 구멍가게에서 오늘 하루 열심히 달린 나를 병 콜라 한 병으로 위로를 하고 있는데 옆 손님이 '무색' 팩 음료를 맛있게 먹고 있다. 호기심에 하나 먹어봤는데 하루 종일 4병 이상 먹었던 특별한 맛이 없는 익숙한 액체, '물'이다. 표지에 정말 'WATER'라고 적혀있다. 하하

내일 먹을 간식으로 우유 비스킷 2개를 구입한 후 숙소로 돌아와 계단을 올라가는데 '후다닥' 뭔가 달려가는 작은 동물을 봤다. '쥐'다.

숙소는 2층 2인실. 개인 옷장과 자물쇠는 기본제공. 그러나 방문을 잠글 수는 없다.
침대 아래는 쇠로 되어 있고 위쪽은 조금 푹신하다. 보안이 조금 취약하지만 잠이 와서 그냥 자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 여행노트 >

1. 이동경로: MIRZAPUR 마지막 지역 인근~REWA 시내
2. 주행마감시간: 21시50분(주행거리:97.7km / 주행시간:7시간50분 / 평균속도 시속12.5km / 누적거리 4917km)
3. 경비: 126루피(모텔비: 50루피 / 길 안내: 10루피 / 물 한 팩: 2루피 / 우유비스킷1개: 4루피/ 점심·저녁식사비: 60루피) 
4. 음식: 아침엔 난 4장, 달, 치킨커리, 쌀밥(문구사 무료 제공) / 점심엔 난 4장, 달, 치킨커리, 쌀밥 / 저녁엔 짜이 한 잔, 난 3장, 치킨커리, 작은 쌀밥 / 간식으로는 우유비스킷 1개
5. 숙소: 모텔

# 사이클 릭샤: 자전거 뒤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퀴 달린 의자를 붙여 놓은 3륜차로,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단거리 이동을 할 때 주로 이용한다.

덧붙이는 글 < 여행노트 >

1. 이동경로: MIRZAPUR 마지막 지역 인근~REWA 시내
2. 주행마감시간: 21시50분(주행거리:97.7km / 주행시간:7시간50분 / 평균속도 시속12.5km / 누적거리 4917km)
3. 경비: 126루피(모텔비: 50루피 / 길 안내: 10루피 / 물 한 팩: 2루피 / 우유비스킷1개: 4루피/ 점심·저녁식사비: 60루피) 
4. 음식: 아침엔 난 4장, 달, 치킨커리, 쌀밥(문구사 무료 제공) / 점심엔 난 4장, 달, 치킨커리, 쌀밥 / 저녁엔 짜이 한 잔, 난 3장, 치킨커리, 작은 쌀밥 / 간식으로는 우유비스킷 1개
5. 숙소: 모텔

# 사이클 릭샤: 자전거 뒤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퀴 달린 의자를 붙여 놓은 3륜차로,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단거리 이동을 할 때 주로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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