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표시'로 시계를 달라고?

[자전거세계여행 현장보고 43] 9월 6일 인도 콜카타-뉴델리 5일차: 인도에 빠져들다①

등록 2007.03.22 17:39수정 2007.03.2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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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필자를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

필자를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 ⓒ 박정규

오전 5시 기상.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느낌에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돌침대 주위에는 갓난아기부터 시작해서 아이, 어른까지 온통 사람들로 가득하다. 대충 20-30명 정도는 될 것 같다.

'나그네'를 보기 위해서 해님이 출근하기 전에 서둘러 일어나신 건지 원래 이렇게 부지런한 분들인지는 모르겠다. 아무렴 어떠랴? 덕분에 이렇게 상쾌한 공기를 가득 머금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게 어딘가?


아이들은 대부분 짧은 스포츠보다 짧은 머리에 선량한 눈빛을 하고 있다. 반바지에 색 바랜 반소매 남방이나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 대부분 맨발이다. 어른들은 대부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긴 바지, 긴 소매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동네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 후 출발하려는데 한 꼬마친구가 'MOONG DAL'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보라색 과자봉지를 손에 쥐어준다. 봉지 앞면에는 잘 익은 옥수수 빛깔의 '쌀'이 표지모델로 수고하고 있다. 한 움큼 입에 쥐어 넣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는데 생 '쌀' 맛이 난다.

a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도 청년들

이목구비가 뚜렷한 인도 청년들 ⓒ 박정규

그곳을 벗어나 외진 길을 40-50분 정도 달리자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길에도 사람들이 제법 다닌다. 길가는 중학생에게 인근 인터넷 카페의 위치를 묻자 앞장서겠다며 먼저 출발한다. 10분 정도 걸어가다 친구가 한 가게 앞에 갑자기 멈추더니 '여기'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간판에는 한 남자와 여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고 전면이 완전 개방된 가게 안에 학용품들이 즐비하다. 앗! 문구사!

혹시나 싶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물어봤다.

'여기서 인터넷을 할 수 있나요?'
'네~'


내 소개를 간단하게 하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흔쾌히 허락한다. 직원이 친절하게 접속을 도와주겠다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띄우는데 "띠~이 띠리리리리~ 띠~이 띠리리리리~" 친숙한 소리가 귀에 익다. 앗! 모뎀이다!!! 하하~

접속이 잘 되지 않는다. 일단 한글을 먼저 설치하기 위해서 설정을 하는데 'XP 시디'를 요구한다. 혹시 시디가 있냐고 물어보자, 자랑스럽게 '물론 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후 커다란 시디 보관용 가방을 들고 왔다. CD 3장 넣고 한글과 MSN 설치하는데 성공. 인터넷은 여전히 접속 중이다.


2시간 동안 "띠~이 띠리리리리~ 띠~이 띠리리리리~" 주문을 외우며 인터넷 문을 두드려봤지만 애당초 열릴 생각은 없었는지 접속이 되지 않는다. 결국 포기.

a 귀여운 꼬마 친구들

귀여운 꼬마 친구들 ⓒ 박정규

앞으로 다음 도시는 100km.

내가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하자 직원이 작은 빵, 난(인도 전통 빵), 커리(인도식 카레), 밥을 내어온다. '커리'와 밥을 손으로 맛있게 비벼 먹으면서 작은 고추를 하나 입에 넣었는데 너무 맵다. '딸꾹질'이 절로 나온다.(필자는 매운 음식을 먹으면 '딸꾹질'을 한다. 그래도 가끔 먹는다.)

한참 '딸꾹질'을 하고 있는데, 밥 먹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한다. '딸꾹질'로도 사람을 웃기게 할 수 있구나. 하하~

주인아저씨께 다음 한국인 여행자를 위해 '한글'은 그냥 남겨달라고 부탁하고 길을 떠나려는데 직원이 나가지 못하게 길을 막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너 때문에 우리는 2시간 동안 영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인터넷 사용료로 1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앗!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건 아닌데….

일단 가격흥정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도시도 30루피인데 50루피로 합시다. 80루피까지 해 줄게요' 그렇게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먼저 악수를 청하신다. 나머지 청년들도 길을 가르쳐 주며 돈은 필요 없다고 말하며 웃기시작 한다. 짓궂은 친구들… 정말인 줄 알았다.

밥 먹는데 장난치는 문구사 직원. 수염이 너무 멋스럽다.

a 밥 먹는데 장난치는 문구사 직원. 수염이 너무 멋스럽다.

밥 먹는데 장난치는 문구사 직원. 수염이 너무 멋스럽다. ⓒ 박정규


마을을 벗어나자 녹색 들판이 펼쳐졌다. 들판 사이의 2차선 넓이의 도로를 점령하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벗 삼아 바람을 가르며 달리니 기분이 너무 좋다.

멀리 자전거 한 대가 접근해온다. 갑자기 나에게 '잠깐 멈춰주세요~'라는 손짓을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끄러미 자전거에서 내린 아저씨를 쳐다 보자 날 보며 계속 '와치, 와치(시계)'를 연발한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저씨랑 의사소통이 잘 되지않아 길가는 중학생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우정의 표시로 시계를 달라는데요'

하하~ 우정의 표시라… 처음 만나서 사람에게 '우정의 표시'로 '시계'를 달라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지금 가지고 있는 시계는 2개국의 시간이 표시되는 시계다. 하나는 '한국시간' 하나는 '현지시간'에 맞춰 사용하고 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에 홈페이지를 관리해주기로 한 후배가 자신의 대학 졸업 기념시계를 선물해준 것이다. 학교에 특별한 공로를 한 사람이나 성적우수자에게만 준다는 '그런 시계'다. 후배는 성적우수자였다. 그만큼 그 친구에게 의미 있는 물건이기에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끝까지 손에 쥐어줘서 어쩔 수 없이 받아서 잘 사용하고 있었다.

'이 시계는 친구에게 선물받은 거라서 줄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거절하고 다시 출발.

인도에 대한 느낌…. 처음에는 조금 두려웠으나, 지금은 아니다. 호기심 많고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자연, 어리숙한 상인들,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a 넓은 녹색 들판, 푸른 하늘, 자유로운 구름들이 너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넓은 녹색 들판, 푸른 하늘, 자유로운 구름들이 너무 편안한 느낌을 준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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