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협상테이블에 농업 오르던 날,
남대문 앞 도로엔 볍씨가 흩어졌다

[한미FTA D-3 : 현장④ 농민 집회] "저 안에선 지금 '농업포기협상' 하는데..."

등록 2007.03.28 14:39수정 2007.03.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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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에서 미국 측이 쌀을 협상 대상으로 거론한 데 대해 화가 난 농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남대문 앞에서 나락을 뿌리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에서 미국 측이 쌀을 협상 대상으로 거론한 데 대해 화가 난 농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남대문 앞에서 나락을 뿌리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에서 미국 측이 쌀을 협상 대상으로 거론한 데 대해 화가 난 농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남대문 앞에서 나락을 뿌리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에서 미국 측이 쌀을 협상 대상으로 거론한 데 대해 화가 난 농민들이 28일 오후 서울 남대문 앞에서 나락을 뿌리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28일 정오, 노란 볍씨가 우박과 함께 남대문 앞 인도와 차로에 떨어졌다. 화가 난 농민들은 40㎏짜리 쌀가마니를 뜯어 허공을 향해 볍씨를 쏟아냈다. 이날 새벽 전북 정읍에서 조달된 볍씨는 서울 도심 도로 위에 흩어졌다

사흘째를 맞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고위급 협상에서 민감한 분야인 농업 분야가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체결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쌀 100포대를 들고 기습 시위를 하는 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한미FTA 체결 저지하는 시민단체의 집회와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미FTA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이날 기습 시위는 지난 송아지·돼지 등을 동반한 두 차례의 '가축 시위'에 이어 세번째 '현물 시위'인 셈이다.

이날 비대위 관계자 30여명은 12시 5분 남대문에서 광화문 방면 보도에 쌀포대 100개를 쌓은 뒤 일부를 열어, 보도와 차로에 볍씨를 뿌렸다. 이들은 "한미FTA 중단하라"고 외쳤고, '한미FTA반대'라고 적힌 손팻말을 버려진 볍씨 위에 뿌렸다.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시위대를 에워싸며 철수를 촉구했다. 일부 화가 난 농민들이 경찰을 향해 볍씨를 뿌리며 강하게 항의했지만, 참가자들은 10여분간 기습시위를 진행한 뒤 포대를 버리고 현장을 떠났다. 남겨진 볍씨는 중구청에 의해 압수됐다.

익명을 요구한 고아무개(51·전북 고창)씨는 "미국 쌀 시장이 개방되면, 우리 쌀은 버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날 기습 시위의 배경을 밝혔다. 이어 "싸다는 이유로 남의 나라 쌀을 먹게 될 상황이다, 차라리 우리 쌀을 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업포기, 막퍼주기 협상"... 협상장 밖의 한미FTA 반대 목소리


a 28일 오전 권오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이 진행중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한미 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과 나란히 "명분도 실익도 없는 FTA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8일 오전 권오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이 진행중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한미 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과 나란히 "명분도 실익도 없는 FTA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한미 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이 28일 오전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이 진행중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명분도 실익도 없는 FTA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권오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도 참석했다.

한미 FTA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들이 28일 오전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이 진행중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명분도 실익도 없는 FTA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엔 권오을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도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일부에서는 이같은 농민들의 '현물 기습 시위'에 대해 "가축이 무슨 죄냐" "자식같이 키운 쌀을 버려야만 하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농민들의 속은 타들어간지 오래다.

'죽어도 쌀시장은 내주지 않겠다'던 김영삼 정부는 지난 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쌀시장의 문을 열어줬다. 2002년 한중간 마늘협상에서는 이면합의 파문으로,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이었던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2005년에는 쌀 재협상 관련 이면합의로 국회에서 국정조사까지 열렸다.


이번 한미FTA 협상에서도 쌀시장은 협상 의제가 아니었음에도 미국측이 쇠고기와 함께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가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약속했지만, 고위급 회담 막바지에 미국측의 압박까지 가해지면서 생존권에 대한 불안은 농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비대위는 이날 기습 시위에 앞서 오전 10시 30분, 협상이 진행 중인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는 농업 부문에서는 내줘도 너무 많은 것을 내준, 그야말로 농업포기협상"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협상 막바지에 이른 지금 한국 정부는 '쌀과 쇠고기'를 제외하고, 돼지고기, 과수 등 모든 분야를 사실상 포기했다"며 "쌀과 쇠고기마저 이면합의를 통해 개방을 약속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면합의가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가 이미 국민들 몰래 쌀과 쇠고기를 맞바꾼 것"이라며 "농림부와 외통부의 공식 입장을 요청했지만, 외통부는 '협상이 끝난 다음주에나 가능하다'는 수상한 답변으로 얼버무렸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기어이 민심을 외면한다면, 국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전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석자들은 항의서한 전달을 위해 협상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경찰 병력이 이를 저지해 양측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인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과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a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8일 오전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를 금지하고, 재갈을 물리려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경찰의 진압 방식을 문제삼았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8일 오전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를 금지하고, 재갈을 물리려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며 경찰의 진압 방식을 문제삼았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경찰이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에 반대하는 거리 집회를 금지한 가운데 인권단체들이 "한미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틀어막지 말라"며 정부측 방침에 반발하고 나섰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28일 오전 11시 고위급 회담이 진행중인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FTA 저지를 위한 민중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는 한번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며 "계속해서 보류되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어디서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들은 "협상이 진행될수록 정부의 협박과 탄압이 나날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며 "집회 시위의 자유는커녕 집회 대오를 전경차와 경찰들로 철통같이 에워싸며 반대의 목소리를 고립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민중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치는 순간마저도 국가권력을 남용하는 경찰의 방패와 곤봉 앞에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며 "이런 경찰과 정부가 과연 민주적이라 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전국 38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이 단체는 지난 26일 "경찰이 사실상 집회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를 실시하고 있다"며 경찰의 집회 금지에 대해 불복종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한미FTA협상은 단순한 경제협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이라며 "국민의 의견은 깡그리 무시한 채 밀실협상으로 일관해 온 한미FTA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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