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곡리에서 바라본 몬주익 언덕

영화처럼 재미있는 동해안 문화기행 (23)

등록 2007.03.31 10:08수정 2007.03.3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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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은 고독하다. 출발할 때는 수 천, 수 만의 사람들과 함께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과 처절한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철저히 혼자서 해야만 하는 스포츠, 마라톤. 어쩌면 마라톤은 스포츠라기보다는 인간의 몸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투쟁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을 최극단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고통과 괴로움의 바다에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를 내동댕이치는 스포츠가 바로 마라톤이다.

인간 세상에는 가끔 가다가 필연처럼 맺어진 우연이 나타날 수 있다. 우연한 만남은 필연적인 요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말처럼 우연과 필연은 결코 동떨어지는 조건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1936년 베를린에서 금메달을 딴 고 손기정 옹과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는 필연적인 요소가 개입된 우연성을 띠고 있다.


기념관으로 가는 초곡터널
기념관으로 가는 초곡터널김대갑

올림픽 역사상 마라톤 경주에서 아시아인으로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딱 두 명이다. 한 명은 손기정 옹이며 또 한명은 황영조이다. 그리고 손기정 옹과 황영조가 경주에 나선 날은 똑 같이 8월 9일이었다. 또한 막판에 레이스를 펼친 선수의 구성도 한국인 2명과 외국인 1명이라는 우연성을 가지고 있었다.

손기정 옹은 막판에 남승룡과 하페(영국)와 접전을 벌였고, 황영조는 김완기, 모리시타(일본)와 접전을 벌였다. 재미있는 것은 손기정 옹이 시상대에서 월계관을 받은 시각이 오후 6시였는데, 바톤 터치하듯이 황영조가 그 시간에 바르셀로나 경기장을 출발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리도 우연적인 일이 겹쳤는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동해시의 명소 추암 해수욕장을 지나 삼척 방향으로 내려가면 남근 숭배로 유명한 삼척시 갈남리를 만나게 된다. 갈남리에는 남근 조형물로 유명한 해신당 공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여기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동해안 제일의 미항이라는 장호항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장호항 옆에 가면 움푹 들어간 한적한 포구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이름 하여 초곡항. 산 허리 굽이굽이에서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초곡항에 가면 ‘가을 동화’의 촬영지인 초곡터널을 만나게 된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의 위업을 기념하기 위한 황영조 기념관은 바로 이 초곡 터널을 통과하면 만날 수 있다.

황영조 기념관 전경
황영조 기념관 전경김대갑

지난 2005년에 개봉된 영화중에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자폐증 환자였던 배형진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것인데, 조승우와 김미숙의 열연이 무척이나 돋보였던 영화였다. 영화 속 모자에게 마라톤은 하나의 이상이었다. 자폐증이라는 천형을 앓고 있던 초원(조승우 분)이에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마라톤은 그들 모자의 꿈과 희망이었다.


어머니는 마라톤을 통해 아들이 정상인보다 결코 뒤지지 않음을 위안 받고자 했다. 아들은 달린다는 행위를 통해 어머니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자 했다. 이 영화가 더 감동적인 것은 그것이 실화라는 것과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상징하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마라톤은 인간 승리의 장인 것이다.

그래서 몬주익 언덕의 승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황영조 기념관은 단순히 한 개인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으로 대표되는 한민족의 기개와 의지를 기념하는 것이다.


1992년 8월 9일의 새벽녘, 온 국민을 환호와 흥분에 물들게 했던 마라톤 금메달.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에서 태극기를 선명히 단 황영조가 경기장에 맨 처음 들어서자 8만 관중은 경의의 표시로 기립박수를 보내게 된다. 덩달아 그 경기를 지켜보던 한민족들도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기념관 내부
기념관 내부김대갑

정말이지 그때처럼 한민족이라는 사실이 뿌듯했던 적도 없었다. 그리고 믿기지도 않았다. 세상에 그 어렵다는 올림픽 마라톤에서 한국인이 금메달을 당당히 따다니. 어안이 벙벙하고 기이했지만 우승은 현실이었다. 정말 기쁘고 또 기뻤던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좌파도 우파도 없었고, 이데올로기도 이념도 없었다. 오로지 한민족뿐이었다.

널찍한 잔디밭과 몬주익 언덕의 모형이 있는 야외 공원과 지상 2층짜리 기념관으로 구성된 황영조 기념공원은 우선 널찍한 조망이 인상적인 곳이다. 야외 공원에는 황영조가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는 상징 조형물이 청동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지구본 위를 달리는 황영조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당시 황영조가 모리시타를 결정적으로 따돌린 몬주익 언덕을 천 분의 일로 축소한 곳은 그 당시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황영조 선수의 골인 장면
황영조 선수의 골인 장면김대갑

기념관은 총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에 가면 황영조 선수 개인에 대한 기록과 각종 상패와 메달, 우승 당시 신었던 신발과 유니폼 등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 가면 세계마라톤 역사관과 마라톤 체험관을 만날 수 있다.

역사관에서는 마라톤의 유래와 세계 유명 마라토너들과 한국 마라톤 개척자들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또 그 옆의 마라톤 체험관에 가면 시뮬레이션 시스템으로 마라톤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야외 공원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은 아무래도 황영조 선수 집 찾기라는 나무 조형물이다. 집 모양의 나무 모형이 공원 끝에 세워져 있는데, 가운데 동그란 곳에 얼굴을 내밀면 오륜기가 그려진 황영조의 본가를 볼 수 있다. 일종의 작은 재미를 선사하는 곳이라서 반드시 얼굴을 내밀고 들여다보라. 그러면 단순히 황영조의 본가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남청색으로 물든 동해의 아름다운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황영조의 집을 찾아라!
황영조의 집을 찾아라!김대갑

당시 황영조가 세운 공식적인 기록은 2시간 13분 33초였다. 그리고 그의 최단 기록은 2시간 8분 9초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이 기록을 초로 환산하면 100m를 평균 18.3초로 달려야만 된다는 것을. 평균 18.3초의 속도로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리다니.

비록 세계 기록에는 몇 분 뒤지지만 그야말로 경이적인 기록임에 틀림이 없다.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경이적인 기록. 하긴 그러니까 전 세계 일류들이 모인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겠지.

황영조는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고려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하여 석사와 박사 코스를 밟았다. 지금은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감독으로 일하면서 한국 마라톤의 중흥을 위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앞으로 그의 지도하에 이런 기념공원을 만들게 하는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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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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