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명나라가 나를 어린애로 보느냐?"

[태종 이방원 65] 표전문사건

등록 2007.04.01 16:12수정 2007.04.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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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바람이런가 권세는 구름이런가. 방원이 계품사(啓稟使)가 되어 명나라 방문외교를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하자 썰렁하던 추동 방원의 사저에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였다. 외교적 성공을 축하하는 자들도 있었고, 야인생활을 위로하는 무리들도 있었다. 위로하는 자들 중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있었으니 하륜이다.

"어두웠던 저녁은 지난 것 같습니다. 허나, 여명은 아직 멀었습니다. 새벽을 같이 맞이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둡다고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가려서 쓰도록 하십시오. 이제 자시를 지난 것 같으니까요."


알듯 모를 듯한 말이다. 방석의 세자책봉으로 방원이 좌절의 늪을 헤매고 있을 때 7년만 기다리라고 한 하륜이다. 하륜은 정도전과 함께 이색 문하에서 동문수학했지만 잡설에 능하다는 이유로 정통유학파 정도전의 견제를 받아 중안권력에서 밀려나 있던 사람이다. 유배를 당하는가 하면 변방의 수령으로 떠돌던 인물이다.

이성계에게 정도전이 있었다면 이방원에게 하륜이 있었다고 할 만큼 일세를 풍미했던 걸물이다. 정통유학은 물론 도참과 풍수지리, 경제문제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하륜의 진면목은 천부적인 참모형이라는 데 있다. 혹자는 이방원이 정도전의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라이벌은 하륜이다. 방원은 참모형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외교포석은 '요동정벌론' 폐기

명나라의 압박외교에서 한숨 돌린 태조 이성계는 내치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천도 문제를 강력히 추진하여 한양천도를 마무리 지었다. 궁궐과 종묘가 완성되자 천도를 결행하고 수고한 정도전에게 잔치를 베풀어 치하했다.

정도전은 한양 궁궐공사와 병행하여 <경제문감(經濟文鑑)>을 완성하였다. 경제문감은 재상중심정치를 펼치기 위한 정치조직을 서술한 책으로 <조선경국전>, <경국육전>과 함께 정도전이 지은 3대 역작 중의 하나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논거로서 재상이 수령을 끊임없이 감사하고 통활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고려 왕조에 충성하는 절의파를 모두 무마하지는 못했지만 내치에 자신감을 얻은 태조 이성계는 한양성곽 쌓는 일을 독려하는 한편 국정쇄신교서를 발표했다. 허나, 이성계에게 넘지 못할 태산이 있었으니 그것은 명나라 문제였다. 하정사로 명나라를 방문한 대학사 유구와 한성부윤 정신의가 명나라에 억류당한 것이다. 이른바 1차 '표전문사건'이 터진 것이다.

억류당한 유구는 명나라 예부의 문책에 표문 작성자가 정도전이라고 순진하게 실토해 버렸다. 사신 유구로부터 표문 작성자가 정도전이라는 자백을 받아낸 명나라는 표문에 황제를 모독하는 문구가 있으니 표문을 지은 자를 명나라로 압송하라고 했다. 방원의 명나라 방문외교로 원상회복되었던 명나라와의 평화스러운 관계가 불과 1년 만에 깨진 것이다.


조선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表文),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箋文)이라 한다. 문제의 황제에게 올린 표문에 경박한 문구가 있으니 그 글을 지은 사람을 압송하라는 것이었다. 명나라의 표적은 '요동정벌론'을 폐기하지 않고 군사를 조련하고 있는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여러 차례 명나라를 방문하여 사신임무를 수행한 일이 있다. 고려조에서 윤이, 이초의 사건이 터졌을 때 명나라를 방문하여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였고, 조선 건국 초기에도 하정사로 명나라를 방문하여 주원장을 알현한 일이 있다. 그때라고 '요동정벌론'이 없었던 때가 아니었건만 순순히 보내주고 나서 정도전의 압송을 요구한 것이다.

명나라가 정도전 문제를 단일 외교현안으로 부상시켜 정도전의 압송을 요구한 것은 인물 정도전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굴종을 요구한 것이다. 조선의 굴종을 받아내면 요동정벌론은 거론할 필요 없는 외교문제라는 것이 명나라의 포석이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승리

깜짝 놀란 조정은 연일 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얻지 못했다. "정도전이 명나라를 방문하여 정정당당하게 해명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도전이 방문하면 돌아올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의견의 이면에는 정도전과 이방원의 피를 말리는 암투가 숨어있었다.

도평의사사를 장악한 정도전 지지 세력에서 만들어 낸 대책은 다음과 같다. "표문 작성자는 정탁이고 전문 작성자는 김약항인데 정탁은 풍질로 병을 앓고 있어 명나라를 방문하지 못하니 하늘같은 황제의 은총을 바란다"는 해명문을 가지고 김약항을 보내자는 것이었다. 문제가 된 표문 작성자는 빠지고 전문 작성자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명나라를 방문한 김약항은 유배 후 현지에서 죽었다. 자연사를 가장한 처형이다. 명나라에서 표문 작성자로 지목한 정도전이 방문하였다면 투옥되거나 처형되었을 것이다. 명나라의 압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3개월 후 명나라에 조선국왕의 고명과 조선국 인장을 내려달라는 사명을 띠고 명나라를 방문한 예문춘추관 대학사 정총이 억류당했다.

2차 '표전문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유는 계품사가 들고 온 자문에 황제를 모독하는 내용이 있으니 작성자와 교정자를 압송하라는 것이다. 김약항 처벌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정도전을 보내라는 것이다.

"전자에 조선국에서 바친 정조의 표문과 전문 속에 경박하고 모멸하는 구절이 있어 글을 지은 사람을 보내라 하였더니 단지 전문(箋文)을 지은 자만 보내오고 그 표문(表文)을 지은 정도전, 정탁은 여태껏 보내오지 않으니 표문을 지은 정도전이 들어와 완취(完聚)하게 하라."-<태조실록>

명나라의 표적은 정도전

문제의 표문은 성균대사성 정탁이 지었고 정총과 권근이 교정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억류되어 있는 유구의 실토가 참인지 명나라 예부의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인지 알 수 없다. 명나라의 압박은 일관되게 한곳으로 흐르고 있다. 정도전이다.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이성계도 "명나라가 나를 어린애로 보느냐?"고 분노했다. 신하들의 입에서 명나라 성토가 이어졌다. 공연한 트집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터무니없는 이유로 조선을 압박하는 명나라에 대책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권근과 정탁 그리고 노인도를 명나라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죄인 압송업무를 맡은 판사 이을수가 통사가 되어 권근과 정탁 노인도를 압송하는 형식을 취했다. 우리나라 신하가 우리 신하를 사지(死地)로 끌고 가는 꼴이었다. 약소국의 설움이다. 이들을 인솔한 총책임자는 계품사로 임명된 한성윤 하륜이었다.

"글을 지은 자가 모두 중국과 달라 어음(語音)이 다르고 학문이 해박하지 못하여 표문과 전문에 문자가 어긋나고 틀리게 된 것이요 어찌 감히 고의로 희롱하고 모멸했겠습니까? 분부하신 대로 표문을 지은 정탁과 교정한 권근, 교정을 계품한 노인도는 판사 이을수를 시켜서 경사(京師)로 압송해 가 폐하의 결재를 청하오나 정도전은 정탁이 지은 표문에 일찍이 지우거나 고치지 않았으므로 일에 관계없으며 또 본인은 복창과 각기병으로 보낼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 주소서."-<태조실록>

조선 국왕 태조 이성계가 명나라 황제 주원장에게 올린 글이다. 굴욕이 절절히 흐른다. 설설 기는 모습이 그려진다. 무릎 뼈가 꺾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슴 아픈 일이다.

"선제공격이 곧 방어" VS "전쟁은 피해야"

명나라 황제 주원장은 하륜과 정탁 그리고 앞서 억류했던 유구와 정신의는 귀국하는 것을 허락하고 나머지는 계속 억류했다. 명나라에 볼모로 붙잡힌 신하는 4명으로 불어났다. 김약항, 정총, 권근, 노안도다.

사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살얼음판 같은 국제정세 속에서 이득분의 집에 피접 나가 있던 현비 신덕왕후가 돌아(薨)갔다. 국상이다. 온 나라가 초상집이다. 이 소식은 명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우리나라 사신들에게도 알려졌다.

국상을 당한 신하의 입장에서 조의를 표하기 위하여 정총은 상복으로 흰옷을 갈아입었고 권근은 황제가 내려준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이 모습을 목격한 주원장은 대노하여 정총을 귀양 보냈다. 황제가 내려준 붉은 옷을 입지 않고 흰옷을 입었다는 이유였다. 이때 노인도와 김약항도 함께 유배되어 귀양지에서 죽었다.

이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명나라를 치자는 것이다. 조정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선제공격이 곧 방어다'는 주장을 펴는 남은과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쟁은 피해야 한다'는 조준이 첨예하게 맞섰다. 전쟁불사론을 펴는 매파의 중심에는 정도전이 있었고, 전쟁반대론을 펴는 비둘기파의 배후에는 이방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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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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