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가득한 날 나선 전북 고창 여행

[나만의 여행지] 독특한 모양성, 판소리 박물관, 고인돌군 있는 곳

등록 2007.04.01 18:26수정 2007.04.02 16:23
0
원고료로 응원
예보대로 황사가 세상을 삼켜버렸다. 시야가 좁아진 우주는 몸과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힌다. 좋지 않은 일기예보는 틀려도 크게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실제로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니, 짜증이 난다. 말간 햇살의 소중함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황사에 무기력한 것이 참을 수 없게 만든다.

a

판소리 박물관 ⓒ 정기상

메말라버린 감성이 자꾸만 몰아친다. 정서가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니, 조화를 상실하고 있다. 어디에 기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외되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어차피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벗어나고 싶었다. 황사로 인해 아무 것도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가 싫어진다.

"여보. 고창 가자."
"뭐라고요? 황사가 이렇게 진한데?"
"거기에 가면 꽃이 피었을 것 같아."
"아직은 이른데--."

a

신재효 고택 ⓒ 정기상

고창(전라북도)에 가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황사로 인해 가라앉은 기분을 되살릴 수 있을 것 같다. 유년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으니, 마음 안에 생생하다. 세월이 흘렀어도 근본은 변함없을 것이다. 여행 욕구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동하였으니, 떠나면 될 일이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집(전주시 삼천동 아파트)에서 나서니, 도로가 꽉 막힌다. 마라톤 대회가 실시되고 있어서 도로 통제가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불편하지만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시내를 벗어나니,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삶도 막힘없이 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a

꽃이 핀 모양성 ⓒ 정기상

정읍까지는 새로운 도로가 건설되어 있어서(일부 구간인 태인에서 내장사까지만 개통됨)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도 편하게 달릴 수 있었다. 도로가 목포까지 뚫린다면 참 편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읍을 지나 고창에 이르는 도로 양 옆에는 갖가지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황사의 훼방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고창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모양성 입구에 있는 판소리 박물관이다. 동양의 셰익스피어라고 일컬어지는 동리 신재효 선생 고택 앞에 자리하고 있는 박물관은 고창의 문화 수준을 짐작하게 해준다. 판소리 열두 마당을 완성시켰으니, 그 공적은 지대하다 할 수 있다.

a

역사의 향 ⓒ 정기상

눈앞에 나타나는 모양성이 압도한다. 이곳은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곳이다. 학교가 끝나면 달려가 총싸움을 하면서 신나게 놀던 곳이다. 놀이를 통해서 수많은 것을 배웠다. 이제는 아스라이 전설이 되었지만, 눈을 감으면 생생해진다. 사는 곳이 달라서 자주 만날 수는 없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모양성. 사적 145호다. 기록에 의하면 단종 원년(1453년)에 왜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하여 전라도민(제주도도 그때에는 전라도였음)들이 힘을 합해 쌓은 자연석 성곽이다. 모양이란 이름은 '보리 모' '볕 양'이다.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비산비야(非山非野)인 고창은 옛날부터 다양한 산물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a

벚꽃이 피어나고 ⓒ 정기상

삼한시대에는 모양부리현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역사가 깊어 세계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인 고인돌군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방장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선운사 앞 바다로 흘러가는 임내강가에 석기 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양성이란 지명도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의 향기가 배어나는 이름인 것이다.

특산물도 아주 다양하다. 수박을 비롯하여 땅콩 그리고 풍천장어와 복분자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물산이 아주 풍부하다. 막고 살기가 편안하면 음식 솜씨가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나아가 인재가 배출 될 수밖에 없다. 고창이 인물의 고장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a

고인돌(유네스코 지정 문화재) ⓒ 정기상

북에는 오산고보가, 남에는 고창고보가 있다는 말이 있다. 성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고창고등학교는 나라를 되찾기 위한 인재를 배출하였고 지금도 그 이름을 날리고 있는 명문 고등학교다. 백관수, 김성수 등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친 훌륭한 분들이 모두 다 이 고장 출신은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홍북루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서니, 만개한 벚꽃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황사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꽃들이 어찌나 고운지 기분이 상쾌해진다. 고창을 찾은 것이 정말 잘 한 일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벚꽃 세상은 희미함이나 회색빛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투명한 꽃에 취하고 말았다.

a

홍북루 ⓒ 정기상

고창은 모양성 말고도 볼거리 먹을거리가 아주 풍부하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를 비롯하여 고수의 문수사 그리고 무장 읍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있다. 고창에는 선운사 금동보살을 비롯하여 마애석불 등 보물들이 많아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 데 충분하다.

a

추억이 되살아나고 ⓒ 정기상

어디 그뿐인가. 다양한 축제가 벌어져 계절마다 독특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청보리 축제를 비롯하여 수산물 축제, 고추 축제, 수박 축제, 복분자 축제 그리고 모양 성제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축제가 펼쳐진다. 여기에다 미당 서정주 시인을 추모하기 위한 질마재에서 펼쳐지는 국화축제까지 곁들여져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고장이다.

a

이제는 전설이 된 ⓒ 정기상

벚꽃으로 치장하고 있는 모양성에 서 있으니,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추억과 볼거리 그리고 먹을거리가 풍성한 고창은 아름다운 고장이다. 이제 곧 무장면 일대에서 청보리 축제가 시작된다. 황사로 가라앉은 기분은 고창 여행을 통해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글 | 나만의 여행기 응모 기사(사진은 07년 4월 1일 전북 고창에서 촬영)

덧붙이는 글 나만의 여행기 응모 기사(사진은 07년 4월 1일 전북 고창에서 촬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