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터에서 봄앓이를 풀다

보령 성주사터, 부여 무량사, 청양 장곡사 여행(1)

등록 2007.04.03 08:29수정 2007.04.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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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앓이. 금요일 저녁 무거운 하늘은 결국 비를 뿌리고 있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난 '비 맞는 봄'을 보며 끝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짐을 꾸리고 있다.

토요일 새벽, 금요일 저녁에 시작한 봄비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봄앓이를 풀기 위해 찾은 곳은 성주사터, 무량사, 장곡사. 보령, 부여, 청양에 있는 곳이지만 보령에서 차로 30분내에 다 갈 수 있는 곳이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만들어 낸 동선이다.


세차게 내리던 비는 보령에 도착할 즈음 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하여 보슬비로 변하였다. 세찬 비로 짓눌렸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보령시내에서 성주사터에 가려면 성주산을 넘어야 한다. 보령경찰서 망루가 한국전쟁 당시 성주산 일대에 머물던 빨치산들을 토벌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니 성주산은 보령의 앞산인 셈이다.

보령경찰서 망루, 망루 중간중간에 총구멍으로 보이는 구멍이 군데군데 나있다
보령경찰서 망루, 망루 중간중간에 총구멍으로 보이는 구멍이 군데군데 나있다김정봉
보령경찰서 망루는 높이가 10m에 불과하지만 높은 건물이 없던 그 당시에는 망루의 역할을 톡톡히 했으리라 본다. 옹기모양으로 쌓은 대 위에 육각의 누각을 세웠다. 중간중간 총구멍이 나있는데 가슴 아픈 역사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 듯 여름이면 담쟁이넝쿨 잎으로 가려 없어졌다가 잎이 지면 그대로 드러난다.

성주사 덕택으로 이 근방 산과 마을은 모두 '성주'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성주산, 성주천, 성주초교, 성주마을…. 성주산을 관통하는 터널이름도 여지 없이 성주터널이다. 성주터널을 지나 성주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성주초교가 보이고 나이 든 느티나무 몇 그루가 냇물에 기대어 자라고 있다.

마을을 조금 벗어나자 왼편으로 넓은 터가 나오고 몇 기의 탑들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낮은 산에서 시작한 흐릿한 비안개가 넓은 터에 내려앉아 탑과 홀로 서 있는 감나무를 감싸고 있다. 흡사 돌아오지 못할 낯선 땅에 온 듯한 기분이다.


성주사터 전경, 찾는 이 없는 이 곳에 비안개가 자욱하여 흡사 오지 못할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성주사터 전경, 찾는 이 없는 이 곳에 비안개가 자욱하여 흡사 오지 못할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김정봉
성주사터 사방은 까만 돌로 쌓아 보령의 주산물과 연을 끊지 않았다. 오석(烏石)은 보령의 주산물로 보령 여기저기에서 구경할 수 있다. 눈썰미 없는 내 아내도 "여기는 까만 돌이 많네"라고 말할 정도로 지천에 있다. '보령석재'라는 간판을 내건 석재업체들을 곧잘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주사는 백제 때 오합사로 출발하였다. '오합(烏合)'이라는 이름도 이와 관련있는지 모른다. 오합은 '까마귀가 모인 것처럼 질서가 없는 모임'이라는 의미인데, 혹시 이 절 터에 까만 돌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성주사터엔 탑이 많다. 금당터 앞에 오층석탑이, 뒤에는 삼층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감은사 터에는 육중한 석탑이, 강릉 굴산사지엔 장대한 당간지주가 그리고 여주 고달사터엔 장엄한 부도가 폐사지의 황량함을 덜어 주는데 성주사터는 양(量)으로 승부했나 보다.

오층석탑은 백제 땅에 세워졌는데도 백제 이후 충청·전라도 지역의 조형적 지주 역할을 한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있다. 둥근 뒷산을 보면 부드러운 정림사터탑 형식이 어울릴 듯한데, 이 탑은 전체적으로 홀쭉하고 늘씬하게 보여 둥글둥글한 뒷산과 어울리지 않는다. 둥근 뒷산에 부드러운 탑이면 어쩌면 밋밋해 보일 것 같아 정림사터탑 양식을 마다했는지 모른다.

오층석탑, 둥근 뒷산과 어울리지 않게 늘씬하고 홀쭉하다
오층석탑, 둥근 뒷산과 어울리지 않게 늘씬하고 홀쭉하다김정봉
3기의 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형식은 아닌데다 4기의 석탑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어서 파격적이다. 세기의 탑은 크기나 모양이 비슷하여 삼 형제를 보는 듯한데, 형제간에도 얼굴이 다르듯이 약간씩 다르다.

가운데 있는 탑이 조각도 화려하고 제일 잘생겼다. 사지(寺址) 안의 다른 곳에서 옮겨진 것으로 밝혀진 동탑(東塔)이 키는 제일 큰데 왜소해 보인다. 서탑(西塔)과 가운데 탑이 보물 감투를 쓰고 있는데 반해 이 탑은 '향리' 감투에 머물러 서자대접을 받고 있다. 이름을 붙이자면 중앙에 있는 탑은 '장남탑', 동탑은 '차남탑', 서탑은 '서자탑'이다.

3기의 삼층석탑,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3기의 삼층석탑이 삼형제 같이 나란히 서있다
3기의 삼층석탑,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3기의 삼층석탑이 삼형제 같이 나란히 서있다김정봉
1400여년 전에 세워진 오합사(통일신라 후 성주사)는 임진왜란때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와 쇠로 만들어진 것은 모두 불타 녹아 내리고 오로지 남은 것은 석조물. 금강터로 오르는 돌계단과 그 위에 뽀얀 살결의 연꽃대좌는 지금도 정연한 기품을 자랑하고 있다.

돌계단과 연꽃대좌는 더 이상 망가질 수 없을 만큼 철저히 망가진 상태다. 1000년 불사(不死)의 생명력이 앞으로 1000년, 2000년 지속될 것이다. 온전한 것, 완벽한 것에서 느낄 수 없는 애정(哀情)이 생겨난다.

석계단, 양 옆의 사자상은 도난당하고 이제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다. 불사(不死)의 생명력을 얻었다
석계단, 양 옆의 사자상은 도난당하고 이제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다. 불사(不死)의 생명력을 얻었다김정봉
3기의 삼층석탑 옆에는 '서자석탑(庶子石塔)'에 걸맞은 석불이 서 있다. 만든 시기도, 어디에서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미륵으로 모시고 있어 이제야 대접을 받고 있다. 오른쪽 귀는 온존한데 왼쪽 귀는 떨어져 나가 시멘트로 땜질하여 놓았다.

석불입상, 이목구비가 마모된 후 시멘트를 덧칠하여 원래의 인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석불입상, 이목구비가 마모된 후 시멘트를 덧칠하여 원래의 인상은 찾아보기 어렵다김정봉
"코를 긁어 달여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으로 코는 심하게 마손되었고 눈과 입은 시멘트를 덧칠하여 원래의 인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소짓고 있는가하면 슬퍼 보이고 슬퍼 보이는가하면 상처 받은 사람 누구라도 다 받아 줄 것 같은 너그러운 인상이다.

석불입상 측면,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우는 표정이다
석불입상 측면, 옆에서 보면 영락없이 우는 표정이다김정봉
법왕 때 오합사로 출발한 이 절은 신라 말 무염국사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무염국사는 신라 하대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연 분으로 성주사(聖住寺)는 무염국사라는 성인이 이 절에 머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부도가 있을 법한데 부도는 찾을 길 없고 그 부도비만 서북쪽에 모셔져 있다. 이름은 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줄여서 낭혜화상 부도비라 한다. 이 비는 무염이 입적한 지 2년 뒤에 세워졌다. 진성여왕 4년 890년이다.

부도비 귀부 얼굴, 얼굴부분이 몽땅하게 깨져 나가 소가 부리망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부도비 귀부 얼굴, 얼굴부분이 몽땅하게 깨져 나가 소가 부리망을 쓰고 있는 것 같다김정봉
당대의 명문가인 최치원이 글을 짓고 사촌 동생 최인곤이 글씨를 썼다. 이 비는 보호각에 갇혀 답답해 보이나 폐사지에 유일하게 있는 전각이라 그런 대로 괜찮아 보인다. 대체적으로 온전하나 거북의 얼굴부분은 깨져 소가 부리망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도비 귀부 뒷모습, 육갑무늬가 아직도 선명하고 바짝 말아 올린 꼬리는 거북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하다
부도비 귀부 뒷모습, 육갑무늬가 아직도 선명하고 바짝 말아 올린 꼬리는 거북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하다김정봉
거북 등에는 아직도 육갑무늬가 선명하고 꼬리는 말려 올라간 것이 바짝 긴장한 상태로 살아 움직일 듯 하여 금방이라도 보호각을 박차고 나갈 듯하다.

홀로 서있는 감나무 뒤에서 갈무리하는 것이 좋다
홀로 서있는 감나무 뒤에서 갈무리하는 것이 좋다김정봉
폐사지는 유물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조망하기 좋은 곳에서 전경(全景)을 보는 것이 참맛이다. 성주사터에는 너른 벌판 위에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낭혜화상 부도비를 보고 나면 발걸음이 자연스레 감나무 뒤로 옮겨간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감나무라 해도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의젓해 보인다. 가을에 붉은 감을 매달고 있을 감나무를 상상하며 다음 목적지, 무량사로 향하였다.

덧붙이는 글 | 3월 24일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3월 24일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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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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