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사터 전경, 찾는 이 없는 이 곳에 비안개가 자욱하여 흡사 오지 못할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김정봉
성주사터 사방은 까만 돌로 쌓아 보령의 주산물과 연을 끊지 않았다. 오석(烏石)은 보령의 주산물로 보령 여기저기에서 구경할 수 있다. 눈썰미 없는 내 아내도 "여기는 까만 돌이 많네"라고 말할 정도로 지천에 있다. '보령석재'라는 간판을 내건 석재업체들을 곧잘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주사는 백제 때 오합사로 출발하였다. '오합(烏合)'이라는 이름도 이와 관련있는지 모른다. 오합은 '까마귀가 모인 것처럼 질서가 없는 모임'이라는 의미인데, 혹시 이 절 터에 까만 돌이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 지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성주사터엔 탑이 많다. 금당터 앞에 오층석탑이, 뒤에는 삼층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감은사 터에는 육중한 석탑이, 강릉 굴산사지엔 장대한 당간지주가 그리고 여주 고달사터엔 장엄한 부도가 폐사지의 황량함을 덜어 주는데 성주사터는 양(量)으로 승부했나 보다.
오층석탑은 백제 땅에 세워졌는데도 백제 이후 충청·전라도 지역의 조형적 지주 역할을 한 정림사터 오층석탑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있다. 둥근 뒷산을 보면 부드러운 정림사터탑 형식이 어울릴 듯한데, 이 탑은 전체적으로 홀쭉하고 늘씬하게 보여 둥글둥글한 뒷산과 어울리지 않는다. 둥근 뒷산에 부드러운 탑이면 어쩌면 밋밋해 보일 것 같아 정림사터탑 양식을 마다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