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에 몰린 반FTA, 새로운 길을 내라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한꼭지 조간신문 리뷰

등록 2007.04.03 19:16수정 2007.04.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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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31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상 시한이 이미 종료됐기 때문에 한미FTA는 결렬된 것이고 이후 모든 협상 과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31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상 시한이 이미 종료됐기 때문에 한미FTA는 결렬된 것이고 이후 모든 협상 과정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열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만 외롭게 저지선을 펴고 있다.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등 일부 인터넷신문이 보조를 같이 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 신문들은 '14조 달러 시장'의 개막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제3의 개국(<중앙일보>'에 이어 급기야 '盧노믹스(<문화일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한미FTA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는 신문들 태도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중동>의 태도 변화가 놀랍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놀랍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중동>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연히 한미FTA 찬성 입장이었지만 노대통령에 대한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던 <조중동>이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선일보>는 지지층의 반대를 무릅쓴 노 대통령의 '뚝심'을 극찬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오늘(3일) 사설 제목은 "노대통령의 'FTA 리더십'을 높게 평가한다"였다. 한미FTA를 새마을운동과 서울올림픽에 버금가는 건국 후 '최대의 치적'으로 꼽았다. 노대통령의 어제 담화 요지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상세하게 실은 것도 눈에 띈다.

'새로운 도전', '이젠 글로벌 경쟁력', '14조억 달러 한미통합시장 개막' 등 이들 신문들의 한미FTA 칭찬은 끝이 없다. 그렇다고 칭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도 개인도 '아마추어'는 소멸"할 것이라는 경고와 함께 신약특허 기간 연장으로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축산농가의 피해가 특히 클 것이라는 점도 빠트리지 않는다. '기회'이자 '도전'인 만큼 한미FTA로 인한 기회를 최대한 살리되 "취약산업과 그 계층에 대한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지원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인다. 노대통령의 '뚝심'과 다수 언론의 '합창'은 거침이 없다.


열세, 무엇으로 뒤집을 수 있나

a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열세로 다가온다.


전선의 대오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그 기세에서도 그렇다.

노 대통령은 교육과 서비스 분야까지 더 개방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대의 피해 업종인 농업은? 돼지고기나 닭·사과·배·오렌지 등 민감 품목의 경우 최대한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한다. 그 피해가 있다면 정부가 보전하거나 보상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농민의 60%가 60세 이상의 고령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농업을 그만 두고 전업이 불가능한 고령의 농민들에게는 복지제도를 강화해 생활을 보장할 것"이라는 대책도 내놓았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발언의 맥락에는 '지금 이대로도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실정 아니냐'는 '반문'도 포함돼 있어 보인다. 농업 분야가 이럴진대, 다른 분야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향신문>은 2일 노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대해 일일이 반박하는 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조중동>의 '공세적 홍보'에 비하면 수세적이다. "협상결과의 일부만 부각시킨 '장밋빛 변병'"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지만, '공세적 홍보'를 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겨레>는 오늘(3일) 사설에서 '한미FTA 타결안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 또한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점에서 그렇다. "왜 지금 당장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야 하는지 국민들이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점"을 <한겨레>는 타결안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협상 타결 직후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다수는 한미FTA에 대해 또렷한 자기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협상이 불평등했다는 응답이 64.5%(평등했다 22.9%)로 많았지만 국회 비준 동의에 대해서는 일부 협상안을 고쳐서라도 비준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동의 16.0%, 동의하지 않는다 14.5%, 문제 조항 수정 후 동의 61.0%). 협상 방식이나 내용이 불평등하고, 불만도 많지만 그래도 동의는 해주어야 한다는, 얼핏 보기에는 모순적인 결과이다.

이미 익숙해진 '개방의 대세', 어떻게 거스르랴

왜 그럴까?

그것이 지금 오늘의 현실적 대세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탄 '선택'이고 '뚝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촌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적 힘의 향배에 편승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이 '개방의 대세'를 거스르랴?

우리가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에, 농업과 농민은 '시혜'의 대상이 될지언정 그 미래와 비전에 대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시도는 아예 포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식 문화와 스탠다드가 이미 뼛골까지 스며있는 것 아닌가?

뭔가 일을 저지르는 쪽을 선호하는 '불굴의 정신' 문화 탓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전해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노 대통령의 말은 우리 사회에서 '주술적 힘'을 발휘한다. '한강의 기적'과 '경부고속도로'를 잇는 선진국 메타포다. "개방하지 않고 성공한 나라는 없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 가서는 안 된다'는 수세적 반격만으로는 이 무지막지한 '성공 신화'와 저돌적인 '불굴의 전통'을 타개할 수 없다.

이런 대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항목별 대차대조표 작성도 필요하다. 그러나 세세한 셈 자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그래도 개방'이란 주문 한마디에 휴지조각이 되기 십상이다.

a `한미FTA 타결안 긴급 평가 토론회`가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렸다.

`한미FTA 타결안 긴급 평가 토론회`가 한미FTA 저지 범국본 주최로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금 필요한 것은 비전이다. 선택 가능한 다른 쪽 길이다. 다른 쪽 길을 보여주든지, 없는 길이라면 새로 길을 내야 한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먹고 사는 문제'와 '국가 경쟁력'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먹고 사는 문제'야말로 얼마나 중요한가. '먹고 사는 문제'야말로 '정치'이자 '경제'이고 '사회'의 핵심 화두다. '국가'와 그 '경쟁력' 또한 먹고 사는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전선 너머, 대안을 찾아라

비전과 대안의 부재, 더불어 같이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한 사회적 실천의 부재, 상상력의 빈곤…. 어제 오늘 거론된 일이 아니지만, 바로 개혁·진보 세력이 맞고 있는 위기의 근원일 수 있다.

전선은 이제 보다 분명해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중동>, 그리고 미국의 스탠다드가 함께 하는 나라.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그 대안을 찾는 데 '외로운 언론'들이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래야 그 외로움,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일본 <아사히> 신문은 한미FTA 협상 타결이 일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일본 정부는 미일FTA 추진 의사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게이단련(경단련)에서 일미FTA를 추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아직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소극적 입장이다. 오스트레일리아와의 EPA(경제제휴협정·FTA 보다 한 단계 통합 수위가 낮은 통상협정) 협상에 대해서도 자민당 내에서 신중론이 나오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농업시장 개방을 요구할 게 분명한 미국과의 협상은 필연적으로 난항을 겪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니치> 신문의 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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