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시 미국, 자동차 왕국 된 이유

[서평] 로버트 허스트의 <시티 라이더>

등록 2007.04.07 17:26수정 2007.04.0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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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 미국의 자전거 열기는 엄청났다. 그러던 나라가 어떻게 자동차 문화가 가장 강한 나라가 됐을까.
19세기말 미국의 자전거 열기는 엄청났다. 그러던 나라가 어떻게 자동차 문화가 가장 강한 나라가 됐을까.오마이뉴스 김대홍
"자전거가 여성 해방의 상징이었대."
"에이, 거짓말."
"진짜야. 19세 후반 정숙한 여성이라면 발끝까지 오는 스커트와 코르셋에 챙이 큰 모자를 써야 하는데,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은 노출이 심한 실용적인 옷을 입고 탔기 때문이지. 게다가 자전거가 처음 나왔을 때는 공장 노동자의 평균 월급 6개월분과 맞먹었다고 하더라구."
"그래? 지금 고급 승용차 가격이잖아."
"그런데도 19세기 후반 미국에선 400만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는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미국이 자동차의 나라가 된 거지?"


솔직히 궁금했다. 그처럼 강력한 자전거의 나라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동차의 나라가 된 것인지. <시티 라이더>(로버트 허스트 지음/신사강 옮김)는 자전거라는 기계에 숨겨진 뒷얘기들을 풀어낸다.


1920년대 자전거 스타인 엄복동조차도 기억에서 희미한 우리들에게 19세기 찬란한 자전거의 역사는 달나라 이야기만큼 놀랍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자전거는 계층 위화감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으로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속도 경주의 대명사였다. 오죽하면 자전거를 갖지 못한 농촌 사람들과 노동자들이 자전거는 도시 양반들의 값비싼 장난감이라고 비아냥거렸겠는가.

때문에 아이들이 몰래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돌을 던지며 적대감을 나타내기도 했고, 자전거 운전자들은 이에 대한 반응으로 총을 갖고 자신을 보호하기도 했다.

20세기 초반까지 광풍이라고 표현될 정도의 인기를 누리던 자전거는 갑작스레 몰락한다. 곧이어 나타난 자동차 때문이었다. 부의 과시, 속도 경쟁이 자전거 타는 이유 때문이라면 자동차 타는 게 더욱 그들의 구미에 맞았을 터.

자전거 운전자들은 곧바로 자동차를 몰고 경주를 펼쳤고, 자전거 경주에 열광했던 관객들은 고스란히 자동차 경주장으로 옮겨갔다. 도심 교통수단으로 굳게 자리 잡은 유럽과 달리, 레저가 대세가 돼버린 미국의 차이다.


자전거는 차일까? 자전거일까?

도심 자전거 타기를 다룬 로버트 허스트의 <시티 라이더>
도심 자전거 타기를 다룬 로버트 허스트의 <시티 라이더>자전거와 나무
여기서 우리는 당연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전거 타기'란 과연 무엇일까.


차도 갓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노면과 높이차가 있는 배수구, 아스팔트에서 살짝 솟아오르거나 푹 꺼진 홈 등은 아주 위험하다. 순식간에 중심을 잃게 만들거나 타이어를 펑크나게 만든다.

허스트는 이런 대목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묘사하게 있다. '배수구' '연석' '젖은 금속들'이란 소제목으로 약 17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또한 코너링, 급정거, 수신호, 교통신호 지키기, 끼어들기 등 차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규칙들을 자세히 다룬다. 재미있는 점은 '차량주의적'인 관점과 '비차량주의적'인 양 관점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차량주의적인 관점은 말 그대로 '자전거는 차'라는 근본에 충실하자는 시각이다. 자동차와 똑같이 신호를 지키고, 똑같이 달리며,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자는 뜻이다. 자전거가 스스로를 '차'로 인식하고, 자동차 운전자들 또한 자전거를 '차'로 인식할 때 보다 더 많은 자유와 안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이들은 자전거만의 공간인 자전거 전용도로 건설에도 반대한다.

반대로 비차량주의적인 관점은 '자전거는 자전거'라는 관점이다. 자동차와 똑같을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한다. 이에 따라 자전거만의 특별한 혜택을 요구한다. 물론 이 시각을 세분화하면 좀 더 쪼개진다. 전용도로로만 다니겠다는 파, 전용도로를 비롯 보행로까지 요구하는 파 등 다양하다.

모두가 규칙을 지킨다면 차량주의가 맞다. 하지만 자동차 운전자들뿐만 아니라 자전거 운전자들 또한 돌발적인 행동을 하곤 한다. 여기에 보행자까지 끼어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비차량주의는 자전거를 차도에서 몰아낼 수 있다는 불안한 가능성이 있다. 즉 자전거전용도로가 만들어지면 아예 차도 운행을 금지하는 식으로 자전거를 제한할 수 있다는 것. 이른바 자전거가 가진 야성(?)을 죽일 수 있다고 차량주의자들은 비판한다.

그렇다면 허스트의 관점은? 그는 차량주의가 가진 시각의 긍정성과 한계와 함께 자전거 운전자가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차량주의자가 좌파, 비차량주의자가 우파라면 그는 아주 실용적인 중도의 입장을 취한다.

자전거 운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 안전 문제와 대기오염 문제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별도의 장으로 다루고 있다. 자전거 사망자수, 찰과상, 떨어지는 법, 머리 부상, 자전거의 숨쉬기 전략 등 내용들이 꼼꼼하다.

지금 우리나라 자전거 운전자들이 논쟁을 하고 있는 '헬멧 착용 여부' '교통규칙 준수 여부' '자전거 도로 건설 꼭 필요한가' '자전거 전용복장 착용' 등이 모두 나온다. 우리의 선배 자전거 운전자들이 골머리를 앓으며 한 논쟁이니만큼 지금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좋은 참고사항이 될 것이다.

자동차의 폐쇄성이 미국 사회를 바꿨다

자동차와 자전거는 문화 자체가 다르다. 자전거는 개방성, 자동차는 폐쇄성이다.
자동차와 자전거는 문화 자체가 다르다. 자전거는 개방성, 자동차는 폐쇄성이다.오마이뉴스 김대홍
도심에서 자전거 타기 문제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아서는 안 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자동차다.

그는 자동차와 자전거가 전혀 다른 문화를 갖고 있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자동차와 자전거의 가장 큰 차이로 그는 '둘러싸임(enclosure)'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자동차는 차단하고 잠글 수 있으며, 문이 들지 않는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충돌에서 일정하게 보호한다. 자전거엔 절대 없는 특성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동차의 폐쇄성은 사회 전체의 폐쇄성으로 이어진다. 저자가 '자동차 문화가 사회 불쾌함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더 나아가 그는 자동차 문화가 사회 익명성을 높여 범죄율을 높이는데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을 그는 단지 '개인 건강'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 문화'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도로 건설이 교통 체증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세상은 계속 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전거족들이 행복한 것이라고 은근히 비꼰다.

"새로운 간선도로 또는 더 넓은 것이 생기면 교통체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좌절시키는 내재화된 문제가 있다. 바로 자연이 진공을 싫어하듯이, 혼잡한 도시는 빈 간선도로를 싫어한다는 문제 말이다.…체증은 미국 운전자에게 오랜 친구와도 같다. 커피를 홀짝이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침 방송 진행자들도 있다.…교통체증이 없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랬다면 직장에 너무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도시가 혼잡하면 혼잡할수록 자전거는 자동차 형태의 교통수단에 비해서 더욱 더 효율적이고, 라이더는 운전자에 비해서 더욱 더 행복할 뿐이다."

추천사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한다. '진작 이런 책이 나와야 했다'. 나 또한 그렇다. 진작 나왔어야 했다. 대표적인 자출 동호회인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카페 회원이 9만명을 넘고, 각 지자체들마다 '자전거는 교통이다'라고 외치는 요즘, 책방 진열대의 자전거 책이 오로지 '여행' 일색인 것은 말이 안된다.

자전거는 차다. 하지만 덩치나 주차면적, 에너지 소모량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 자전거는 과연 어떤 차일까.
자전거는 차다. 하지만 덩치나 주차면적, 에너지 소모량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 자전거는 과연 어떤 차일까.오마이뉴스 김대홍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궁금한 게 너무 많다. 자전거가 차라면 자동차와 똑같은 신호를 받으면 되는 것인가, 보행자 건널목에선 어떻게 해야 하나, 보행자자전거겸용 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가, 독한 매연 속에 자전거를 타는 게 과연 건강에 이로운 것인가 등.

<시티 라이더>는 이런 숱한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해답이 더욱 믿음직스런 이유는 저자인 허스트가 바로 오랜 경력의 자출족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디오 대여점에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시속 96km를 넘어서본 적도 있으며, X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적도 있다. 다운힐 자전거를 타다 갈비뼈를 부러뜨린 경험도 있다.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러시아워 시간에 도쿄, 파리, 로마를 통과한 적도 있다. 자출과 도심 자전거 타기에 관해선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뜻이다. 단 그의 견해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다. 허스트가 던지는 여러 가지 자전거에 관한 견해를 짚어나가면서 나만의 방식을 찾으면 된다. 그게 허스트가 원하는 바일 것이다.

"자전거 관련도서 6권 계약, 조만간 나온다"
[인터뷰] 옮긴이 '자전거와 나무' 신사강 대표

주의할 점 하나.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이 책을 보지 말기를 바란다. 엉성한 번역이 원본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숱한 오타와 비문이 글을 제대로 읽기 만들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결정적인 오타가 나온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자전거와 나무'라는 자전거 브랜드의 이후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옮긴이 신사강(40) '자전거와 나무' 대표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오타와 비문이 너무 많다. 너무 서둘러 낸 느낌이다.
"인정한다. 너무 죄송하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니 그 때 맞춰서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앞으로는 제대로 신경을 쓰겠다."

-어떻게 도심 자전거 타기라는 책을 번역하게 됐나.
"지난해부터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도심 자전거 타기에 관한 책이 없나 찾아봤는데, 단 한 권도 없더라. 시중에 깔린 책은 모두 '자전거 여행' 뿐이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의 자전거 관련서들을 찾다가 이 책을 번역하게 됐다."

-실제 도심에서 타본 느낌이 어떤가.
"대부분 사람들이 강변이나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탄다. 차도에 나간다면 '위험한데, 어떻게'라는 반응을 보인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차도에 나갔더니 생각보다 괜찮더라."

-자전거를 탄 지는 오래 됐나.
"부끄럽게도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우연히 시골 아버지댁에 갔다가 놔둔 자전거가 있어서 애들하고 탈 목적으로 갖고 왔다. 앞 뒤 짐받이와 보조좌석을 단 뒤, 아이 2명을 태우고 다녔다. 그 뒤, 개인용 자전거가 있어야겠다 싶어 케이블방송에서 일반 자전거(흔히 철TB라 불리는 무거운 자전거)를 샀다. 지금 자전거 타기에 재미가 붙어 로드용 자전거를 구입해볼 생각이다."

-자전거를 타니 뭐가 좋은가.
"일단 운동이 된다. 시간 내서 별도로 운동하지 않아도 되고. 체중 조절이 되면서 밥맛도 좋아졌다. 타는 동안 잡생각이 없으니까 업무 집중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도 많이 없어진 것 같다.(제약이라면?) 글쎄, 제약이라고 할 만한 게,…재미있는데…집이 좁아 공간 문제가 있는 것 같고, 집까지 오르내릴 때 좀 힘든 것 정도?"

-앞으로 펴낼 책을 이야기해 달라.
"미국책 4권과 일본책 2권이다. 50~60대 어르신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다이어트 효과, 성인 출퇴근 지침서, 장거리 사이클링, 로드 사이클, 산악자전거 타기 등이 나올 예정이다. 이들 여섯 권은 모두 계약이 끝났다. 아마존닷컴 자전거 도서 1위 책 등 나름대로 의미 있는 책들을 골랐다." / 김대홍

시티 라이더 : 자전거, 도시에서 즐겁게 타기

로버트 허스트 지음, 신사강 옮김,
자전거와나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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