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진달래에 불타는 천주산

경남 창원시 천주산의 봄...아이들 문제로 고민 중에 산을 오르다

등록 2007.04.09 09:10수정 2007.04.10 12:00
0
원고료로 응원
연분홍색으로 불타는 산자락에도 화려한 봄이 내려앉았다.
연분홍색으로 불타는 산자락에도 화려한 봄이 내려앉았다.김연옥

지난 7일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천주산(638.8m, 경남 창원시) 산행을 나섰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연분홍 진달래꽃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짓누르는 학교 일로 우울한 내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몇몇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켜 처벌받게 되었다. 그런데 벌세운 방법이 교육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 교감과 교장 선생님에게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잘 마무리되지 않아 머리가 계속 복잡했다.


김연옥

천주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나는 천주암 코스로 해서 산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이유는 순전히 기차가 다니는 건널목을 거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차가 지나갈 때면 땡땡 소리가 나고 차단기가 내려지면서 기다려야만 한다. 그래도 한가한 시골 풍경 같은 정겨운 건널목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천주산 등산객들을 위한 무료 주차장 안으로 들어선 시간이 벌써 오후 1시 45분께. 이미 자동차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마침 한군데 비어 있어 운 좋게 주차할 수 있었다. 혼자서 천주암 쪽으로 올라가는데 천주암에서 들려오는 예불 소리가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경건한 예불 소리에 늘 마음이 끌린다. 그리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점이 불교의 큰 매력이다. 그날 천주산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산행을 나온 부모들이 많았다. 자연을 좋아하는 부모를 따라 어릴 적부터 산을 찾는 아이들은 가족끼리 하나하나 쌓는 즐거운 추억만큼이나 마음도 예뻐질 것 같다.

진달래꽃들이 어우러져 피어나면 연분홍 비단을 곱게 깔아 놓은 것 같아 내 마음이 설렌다.
진달래꽃들이 어우러져 피어나면 연분홍 비단을 곱게 깔아 놓은 것 같아 내 마음이 설렌다.김연옥

1시간 정도 걸어갔을까. 연분홍 진달래꽃들이 산자락을 곱게 물들이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괜스레 나른한 봄 햇살을 받으며 졸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연분홍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화들짝 깨어나는 진달래꽃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김연옥

연분홍색으로 불타는 산자락에는 화려한 봄이 내려앉았다. 지난해에 없던 기다란 나무 계단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 나무 계단에 기대서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평화롭고 한가한 느낌을 주었다.


진달래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더욱더 예쁘다. 여럿이서 어우러져 피어나면 마치 연분홍 비단을 곱게 깔아 놓은 것 같아 마음이 몹시 설렌다.

천주산의 주봉인 용지봉(龍池峰)에는 오후 3시께에 도착했다. 정상 군데군데 앉아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였다. 천주산(天柱山)은 경남 창원시, 마산시와 함안군을 품고 있는 산이다.


소계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에.
소계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에.김연옥

어떻게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도록 괴고 있는 기둥'을 뜻하는 천주(天柱)라는 이름이 거창하게 들린다. 그러나 넓디넓은 연분홍 진달래 꽃밭을 바라보면 그 이름을 붙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상에서 소계 약수터 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다. 지난해에 그 진달래 꽃길이 참 예뻤던 기억이 났다.

김연옥

그 길은 구불구불 나 있는 오솔길이라 진달래꽃이 더 예쁜 느낌이 든다. 자꾸 옆구리를 간질이는 봄바람에 진달래꽃이 쿡쿡 소리 내며 웃고 있는 듯했다. 나도 가까이에 있는 진달래꽃에 눈을 맞추고 코도 박으며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김연옥

문득 청소 시간에 이따금 허리를 뒤틀며 자연스레 춤추던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이 떠올랐다. 요즘 학생들은 대체로 춤을 잘 춘다. 좋은 음악이 흐르면 흥에 겨운지 내가 가까이에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춤추는 학생들을 더러 보게 된다.

나는 이번에 오랜만에 담임을 맡았다. 우리 반 학생들은 서른여섯 명이다. 오월까지 그들과 밥 한 끼를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화학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는 음식점을 골랐다. 그리고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음식이 계속 나오는 코스 요리를 정했다. 내 나름대로 그 계획을 '즐거운 식탁'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끼리 둘 또는 셋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김연옥

그들과 그렇게 밥을 같이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처 몰랐던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어 좋았다. 그들 또한 전보다 훨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고즈넉한 천주암으로 가는 길.
고즈넉한 천주암으로 가는 길.김연옥

나는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서 하산을 서둘렀다. 고즈넉한 천주암에 들렀다가 주차장을 향해 내려갔다. 얼마 가지 않아 화사하게 피어 있는 복숭아꽃이 내 발길을 그만 붙잡았다. 화려한 봄꽃처럼 내 마음에도 따뜻한 봄이 머물기를 바라면서 나는 어여쁜 복숭아꽃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화사한 복숭아꽃도 내 무거운 마음을 붙잡았다.
화사한 복숭아꽃도 내 무거운 마음을 붙잡았다.김연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AD

AD

AD

인기기사

  1. 1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행담도휴게소 입구, 이곳에 감춰진 놀라운 역사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딸 바보' 들어봤어도 '아버지 바보'는 못 들어보셨죠?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