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 신화, 바그너 음악의 밤에 다녀와서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보고

등록 2007.04.12 08:43수정 2007.04.12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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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교향악단 전경
시립교향악단 전경김대갑
지난 10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시립교향악단이 정기연주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공연된 시립교향악단의 주제는 '바그너'였다. 탁월한 오페라 작곡가이자 지휘자 겸 문화 철학자였던 바그너는 한 마디로 종합 예술가였다.

그는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오페라 창작과 지휘에 몰두하였다. 악의 꽃으로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가 말년에 흠뻑 빠졌던 바그너는 <니벨룽겐의 반지>,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주옥같은 오페라를 남겼다. 바그너는 그의 생존 시에도 마니아 층을 두텁게 보유한 작곡가였다. 그의 사후에도 바그너 협회는 전 세계에서 그의 음악 철학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현재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는 러시아 출신의 알렉산더 아니시모프이다. 모스크바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그는 다양한 국제 무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필두로 헝가리 국립 오케스트라, 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파리의 가르니에 오페라단과 유럽 각국의 오페라 단을 지휘했다. 그 또한 아일랜드 바그너 협회 명예 회장인데, 이런 인연 덕분인지 이번에 공연되는 바그너가 더욱 돋보였다.

연주회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전반부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쥐와 성녀 페브로니야의 전설 모음곡>과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가단조 작품43>이 연주되었다. 이 중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작품은 부산에서 초연되는 작품인지라 부산의 클래식 애호가들을 매혹시켰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같은 환상적인 세계를 무대로 한 림스키의 오페라는 중세 러시아의 두 전설을 하나로 합쳐서 만든 것이었다. 하나는 러시아와 동양의 충돌을 모티프로 한 '키테주의 전설'이고 또 하나는 '성 페브로니야에 관한 전래 이야기'이다. 림스키의 오페라 작가인 블라디미르 비엘스키는 두 이야기를 모아서 침략자 타타르인에 맞서는 젊은 왕자 브세볼로도와 숲 속의 소녀 페브로니야의 사랑 이야기로 승화시킨 것이었다.

총 4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네 개의 소주제를 창의성과 성악적 표현력 사이의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호소력 있게 연주되었다. 우리에게 아직도 생소하고 낯선 러시아의 내면을 전설을 통해 신비하게 전달한 것이다. 아무래도 알렉산더가 러시아 태생이다 보니 자국 음악을 널리 소개하고 싶다는 욕망이 개입된 것은 아닐까?

두 번째 연주곡은 피아노의 신인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이었다. 탁월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러시아 태생의 작곡가 겸 연주자였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일생을 마치게 된다.


이번에 연주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은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전 유럽에 이름을 떨쳤던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리스트, 브람스 등도 파가니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몇 곡을 연주할 정도였는데, 라흐마니노프의 이번 작품은 짧은 서주와 24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협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협연김대갑
드디어, 10분간의 짧은 휴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바그너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그런데 후반부가 시작되기 전 해설자의 멘트가 청중에게 약간의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른바 '안다 박수'를 남발하지 마라는 부탁 성 멘트였다. '안다 박수'는 연주된 작품을 어디서 한 번 들어봤다고 해서 무작정 박수를 치는 행위를 말한다. 어찌 보면 굉장히 무식한 박수에 속하는 것이다.


서양음악인 클래식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우리네 귀에 익숙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작품이 어디에서 끝나는 지도 모르겠고, 언제 박수를 쳐야 할지도 모른다. 또 연주회장에서 혼자서 박수를 안 치고 있으면 무식한 놈 취급받을까봐 옆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박수치기 십상이다. 또 어떤 이는 클래식 연주회를 듣는 것이 마치 대단한 교양인양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모든 음악은 다 동일하다. 그리고 양자 다 관객이 즐겁게 느끼면 그만이다. 내용도 잘 모르면서 옆 사람 따라 박수 칠 필요도 없고, 클래식 연주회에 갈 정도로 교양 있다고 우쭐 댈 필요도 없다. 그냥 자기의 느낌대로 감동이 오면 박수치면 되고 감동이 없으면 안 쳐도 된다. 또한 클래식이 대단한 고급 음악인양 생각하면서 대중음악을 무시하는 처사는 지극히 무식한 태도에 불과하다. 클래식도 당대에는 대중음악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바그너의 작품은 총 3곡이 연주되었다. 세 곡 다 작품의 일부나 전주곡과 서곡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첫 번째 작품은 '발퀴레의 비행'이었다. 바그너의 기념비적인 오페라인 <니벨룽겐의 반지>는 총 4일에 걸쳐 공연되는 대작이다. <발퀴레>는 전 4부작 중에서 전야제인 '라인의 황금'에 이은 두 번째 극이자 제1일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발퀴레'란 말은 지혜의 여신인 에르다의 9명 딸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천마를 타고 전쟁터에서 패한 병사들을 발할성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발퀴레의 비행>은 넓은 하늘을 거침없이 날아다니며 외치는 발퀴레의 모습을 웅장하면서도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호른과 관악기의 연주가 귀에 매우 익숙한 멜로디를 들려준다.

두 번째 곡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진 전설인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모티프를 딴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마지막 장면(사랑의 죽음)>이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괴테가 희곡으로 남길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데, 바그너는 독일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바그너는 다른 남자의 아내와 불타는 사랑에 빠져 있었는데, 두 사람의 고통스런 사랑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트리스탄과 이졸데 또한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결국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을 맞는다. 전주곡과 마지막 곡을 묶은 이유는 두 주제가 작품 전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총 연주시간은 18분으로, 이졸데가 죽어가면서 부르는 사랑의 찬가가 특히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작품은 오페라 탄호이저의 서곡이다. 바그너의 명성을 전 유럽에 확고하게 알린 이 걸작은 오늘날 3막 형식으로 굳어졌다. 이 오페라 역시 독일의 전설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인데, 바그너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의 주 된 테마는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이 벌이는 싸움이다. 당시 바그너는 속세에 물든 로마 교회를 열렬히 비판하였다. 이런 그의 사상이 탄호이저에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다.

문화회관 대강당 야경
문화회관 대강당 야경김대갑
서곡은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정교한 3부 형식으로 압축한 것이다. 이 작품의 최대 성과는 음악과 연극, 무대연출 등이 모두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는 것이며 이는 이탈리아 오페라 형식을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이 탄호이저 서곡은 오페라와는 별도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바그너의 관현악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다. 탄호이저 서곡의 피날레에서 느끼는 장중하면서도 화려한 멜로디는 부산문화회관의 대극장을 숭엄하게 울렸다.

클래식과 오페라는 많이 들을수록 귀에 익게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무조건 공연장에 찾아가서 많이 듣고, 보고, 즐기면 그만이다. 물론 우리네 국악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클래식과 국악을 대중음악처럼 즐겨보라. 어렵다고 생각지 말고 그냥 즐긴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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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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