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공부? 공부?

[서평] 정순우의 <공부의 발견>

등록 2007.05.13 16:46수정 2007.05.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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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순우의 <공부의 발견>

정순우의 <공부의 발견> ⓒ 현암사

'공부' 너무나 귀에 익은 말이다. 그러나 '공부가 무엇이냐', '공부를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난감해진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공부'가 맞는지 의심스럽고 옹색해진다.

지은이는 '공부론'이라는 유학의 '수양론'이 비록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관과는 근본적으로 배치되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공부론을 "오늘날과 과거의 정신 회로를 잇는 매우 중요하고 예민한 하나의 신경회로"로 본다.


그리고 이렇게 바라보는 바탕에는 유학에서의 마음공부가 "타자와의 연대성을 확보하고 세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확보"하게 한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오늘날의 지나친 교육열은 유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에는 되묻는다. 과연 조선에 오늘 우리 사회가 앓다시피 하는 그런 교육열이 있었느냐고. 실제로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런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록 당시 선비들이 과거를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도, 조선 사회가 천박한 출세주의나 맹목적인 교육열에 빠지지 않았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 교육시스템 안에 "세속적 욕망의 절제를 가르치는 물러남의 철학을 함께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교육열이라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은 근대 교육의 산물이다. 지은이는 그 근거로써 '진화론의 수용'을 지적한다. 교육을 사회 발전의 근본 동인이라 본 진화론의 수용은 결과적으로 교육을 적자생존의 경쟁 논리로 변질시켰다.

종래의 교육에서 앎과 삶은 일치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지식이 힘이다'라는 산업자본주의 체제에 적합한 근대적 지식관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중략) 진화론의 수용은 전통문화에서의 '나아감'의 철학만을 기형적으로 발전시키고 '물러남'의 미학은 소멸시켰다. (131∼133쪽)


유학에서 공부의 주체는 '인간의 마음'이지만 이때의 마음은 종교적이지 않으며, 그저 이기(理氣)로 구성된 하나의 물(物)이다. '미발(未發)'과 '이발(已發)'에 대한 접근부터 들어보자.

바깥 세계의 외물에 아직 간섭받지 않고 평정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한 것을 '미발'이라 하며 이 상태를 천리가 가장 잘 보존된 상태로 이해한다. (중략) 미발시에는 본성의 선함과 깨끗함을 기르는 함양 공부를, 이발시에는 사사로운 욕심이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성찰 공부를 강조한다. (33쪽)


조선 선비들의 공부론은 지식과 덕성이 조화를 이룬 세계였다. 다시 말해서 근대의 지식체계에서처럼 사실로서의 물리(物理)의 세계와 당위로서의 인도(人道)의 세계가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두 세계가 결합된 것이었다.

선비들의 공부론은 소이연(所以然)으로서의 지식과 소당연(所當然)으로서의 덕성이 리(理)를 매개로 만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36∼37쪽)

퇴계 공부론의 요체를 이야기한다. 인간과 우주의 미묘한 관련성을 스스로 체인하는 것(40쪽), 인간이 사욕을 버리고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48쪽) 읽다 보면 굵직굵직한 부분들이 잡힌다.

퇴계는 학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거경(居敬)과 궁리(窮理)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고 본다. 퇴계가 '천리와 인사가 본래 두 길이 아니다'라고 한 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중략) 다만 그 도의 실현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의 공부와 노력이 깊이 쌓여야 가능하다. (54∼55쪽)

퇴계의 공부론에 접근하기 위한 자료로, 시간 상황으로서의 일상을 다루는 <숙흥야매잠도>와 공간 상황으로서의 일상을 다루는 <경재잠도>를 보여준다.

<숙흥야매잠도>는 하루를 시간별로 나누어 각각의 시간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경(敬)'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가를, 또 <경재잠도>는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경(敬)'을 내재할 것인가를 문제 삼는다. 퇴계에게 '경'은 일상성과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경을 통해 인욕의 발출을 억제하고, 일상에 스며 있는 리(理)를 대면하고자 하였다. (중략) 그가 경 공부를 통해 도달하고자 한 곳은 자연의 세계도, 신의 세계도 아닌 활물(活物)로서의 생생지리(生生之理)가 흘러넘치는 인간의 세상이다. (230∼231쪽)

'나아감'과 '물러남'의 공부를 남명 조식의 출처관에서 확인해 보자. 남명의 출처관의 특징은 극도로 엄격한 명분과 도덕적 판단으로, 그가 지향한 유자의 모습은 망세(忘世)의 선비가 아닌 겸선(兼善)의 세계를 지향하는 유자이다.

이는 남명 특유의 '처사(處士)'상으로 나타난다. 남명이 생각했던 처사란 "평소 수양과 마음공부를 축적하여 출사라고 하는 가장 강렬하고 달콤한 욕구를 도에 맞게 처리할 수 있는 선비"였다.

남명의 극기는 그 시선이 내부와 외부로 동시에 뻗어 있다. 그것은 사욕을 다스려 내면으로 깊이 침잠함으로써 경(敬)과 만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남명은 경 하나만을 독존시키지 않는다. 그에게 경은 의(義)와 함께 공존의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이전과는 전혀 색다른 처사의 모습을 형성한다. (중략) 현실의 역사의식을 지닌 '겸선의 선비', 이것이 바로 남명이 생각한 처사의 모습이다. (292쪽)

화담 서경덕은 '무위(無爲)'와 '지지(知止)'의 공부이다. 여기서 '지지'란 "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만물의 머무를 바를 아는 것"이며, 이를 위한 경 공부는 "생각도 없고 허물도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무위적 경향을 보인다.

그에게 '리(理)'란, '기(氣)'가 지닌 일정한 규칙성과 법칙성을 의미할 뿐이다. 따라서 '리'는 '기'를 초월한 선험 질서나 규칙도 아니고, 인륜 질서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궁극적 실체도 아니다. 그는 경의 상태를 통해서 이러한 기에 의해 실현되는 우주적 존재질서의 흐름과 그 규칙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교산 허균의 공부론은 인격적 지식을 거부하고 미학적 지식을 추구한 것으로 본다. 허균은 인간을 응고된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감성과 미학적 상상력의 대상으로 파악하였다.

순암 안정복은 "공(工) 자는 여공(女工)의 공(工) 자와 같고, 부(夫) 자는 농부(農夫)의 부(夫) 자와 같습니다. 이는 사람이 학문을 하되, 여공이 부지런히 길쌈을 하고 농부가 농사에 힘쓰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성리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수사학(洙泗學)의 실천성을 바탕으로 한 '하학(下學)'에 주목하여, 기존의 성리론은 구체적 삶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다산 정약용은 덕을 '효제'라 하여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덕의 실천에서 '먼저 하고 뒤에 할 바를 지극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덕을 실천적이고 실사적인 것으로 보았다.

덧붙이는 글 | * 지은이: 정순우 / 펴낸날: 2007년 2월 25일 / 펴낸곳: 현암사 / 책값: 1만5000원

덧붙이는 글 * 지은이: 정순우 / 펴낸날: 2007년 2월 25일 / 펴낸곳: 현암사 / 책값: 1만5000원

공부의 발견 - 메이킹 오브 공부의 철학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책세상, 2019


#공부의 발견 #정순우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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