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한 사람의 전태일을 보내며

[추모] 노회찬의 난중일기... "허세욱의 죽음은 노무현 정부에 의한 타살"

등록 2007.04.16 14:23수정 2007.07.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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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진짜 당원이고 진짜 노동자였던 고 허세욱님.

진짜 당원이고 진짜 노동자였던 고 허세욱님. ⓒ 노회찬

4월 15일(일) 비온 후 갬.

오전 11시 58분 문자메시지를 받다. 허세욱 당원이 운명하셨다는 소식이다.

마침 경기도 안성 보궐선거 장명구 후보 사무실에 들어서던 권영길 의원은 유세를 예정대로 해야 하나 물으신다. 눈앞이 캄캄하지만 산 자들의 투쟁 또한 멈출 수 없다. 유세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한밤 촛불집회에 참석하러 한강성심병원 앞으로 가다. 4월 1일 바로 이 시각 황급히 병원에 도착해 중환자실에서 의사의 설명을 들을 때 이미 희망은 실낱처럼 가늘었다.

누가 허세욱을 죽였는가? 허세욱 당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정치적 타살이다. 단 한 번도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주관적인 독단으로 반민중적 협상을 밀어붙인 노무현 정부에 의한 타살이다.

허세욱 당원.

각종 집회나 투쟁 현장에 가면 늘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를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직책도 맡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진짜 당원이고 진짜 노동자였다. 그가 남긴 것은 비키니 옷장 하나와 작은 책상 하나뿐이지만 그는 이미 생전에 많은 것을 베풀며 살아왔다. 100만원 약간 넘는 택시기사의 박봉으로 소년소녀 가장 등 불우한 이웃을 도우며 살아왔던 그의 인생은 어린 여공을 위해 풀빵을 사던 전태일의 모습 그대로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분노하며 촛불집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던 그가 노무현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 자리에서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허세욱 당원이 속한 공공운수연맹 임성규 위원장이 추도 연설을 한다. 원래 시인이자 노동자인 그의 추도사에 곳곳에서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뒤를 잇는다.

박봉으로 불우이웃 돕던 고인은 전태일 모습 그대로였다


스무 명씩 서른 명씩 끝이 없이 이어지는 추모 대열이 허세욱 당원의 영전에 흰 국화꽃을 바치고 절을 하는 동안 <그날이 오면>이 울려 퍼진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 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 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 아픈 추억도
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수배의 몸으로 친구 몇 명만 불러 결혼식을 할 때 나는 결혼행진곡으로 이 곡을 연주해달라고 했다. 그 곡을 지금 허세욱 당원을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듣는다. '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라는 대목이 그의 목소리처럼 귓가에 앉는다.

쓰러질 듯 찾아오신 이소선 어머님을 부축해서 동지의 영전 앞으로 모신다. 꽃을 바치고 무릎을 꿇은 어머님이 기도하듯 오열하며 절규하신다.

"죽기는 왜 죽어 보고 싶어도 못 보는데, 죽기는 왜 죽어 미치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데."

공공연맹 이근원 동지가 달래듯 일으켜 세우자 이소선 어머님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연신 맨손으로 영정사진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a 허씨 분향소에 조문하며 오열한 이소선씨(전태일 열사 어머니)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부축하고 있다.

허씨 분향소에 조문하며 오열한 이소선씨(전태일 열사 어머니)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부축하고 있다. ⓒ 김명완


영정사진 속 허세욱 당원은 하늘을 보며 웃고 있다. 45도 각도로 먼 하늘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그의 뜨거운 눈물과 고된 땀방울이 만들 평화와 정의의 세상, 살아있는 우리들이 끝내 만들어야 할 해방의 세상을 환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태일이 온몸을 불사르며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절규한 후 수많은 제 2의 전태일들이 결국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 "망국적 한미FTA 중단하라"며 온몸을 불사른 허세욱 당원의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 다시 제 2의 허세욱이 되어 한미FTA를 분쇄하고 신자유주의를 박살내는 데 앞장설 것이다.

이승의 고통을 다하고 먼저 간 님이시여, 평생 무겁게 졌던 짐은 산자들에게 맡기시고 영면하소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nanjoong.net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nanjoong.net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미FTA #허세욱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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