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산 기슭에 집짓다

산처럼 새처럼 나무처럼 살고 싶어

등록 2007.04.16 15:33수정 2007.05.0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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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박달산이 앞으로는 백양마을 들이 보이는 곳에 터를 마련했습니다. ⓒ 이우성

집짓기를 시작했습니다. 새들도 지푸라기와 흙 알갱이, 나뭇가지 하나씩 부리로 주워 허공에 집을 짓거늘 시골 내려와 만 5년째 되는 해, 이젠 정착할 곳도 눈에 익었겠다 싶어 집짓기를 시작했습니다.

구들 전문가에게 부탁해서 설계와 시공을 맡기고 기초를 세우고 구들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드디어 엊그제 대들보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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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박달산 산신령에게 절을 합니다. 어여삐 여기시는 마음도 잘 받았습니다. ⓒ 이우성

상량식을 하던 날, 박달산 산신령에게 이 모든 사실을 알리고 술을 한잔 부어 올렸습니다. 근처 귀농한 동지들과 이웃 어른들 농사일 바쁜데도 오셔서 축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2007년 4월 12일 오후 18시 산처럼, 새처럼, 나무처럼 살고 싶어 박달산 기슭에 둥지 짓다'

제가 대들보에 쓴 상량문입니다.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자유로운 마음으로, 나 아닌 남에게 쉴 그늘 아낌없이 내려주는 자연물을 닮고 싶은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러나 어찌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저 그 언저리까지 가고 싶은 소망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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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선배도 절을 합니다. 산처럼, 새처럼, 나무처럼 살고싶은 마음이 가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 이우성

충북 음성에서 3년, 괴산에서 2년 농사지으며 농사에도 이젠 일머리를 아주 조금은 아는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작년 한 해 괴산 박달산 아랫자락에 땅을 빌려 농사지으며 밭에서 쉴 때마다 아내와 박달산의 너른 품새를 보면서 "아, 저기 어디쯤 우리 가족 거처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눈도장을 찍어 놓았던 바로 그 언저리 밭이 매물로 나온 것은 작년 겨울이었습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딱 이틀 고민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외지인 손에 넘어갔던 땅이라 주변 시세보다는 땅값이 비쌌습니다. 그래도 그 땅을 마을로 되찾아온다는 생각이, 우리 마음자리에 든 땅을 환경농업하면서 살려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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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터파기를 하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주위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 이우성

1500평 되는 넓은 땅을 하우스 자리, 컨테이너 자리로 나누고 집지을 자리, 창고 자리를 정하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농사 짐부터 옮기고 개발행위 신청을 하고 측량을 하고 집지을 터를 닦았습니다.

앞집에 사시는 어르신께서는 책자와 패철을 들고 오셔서 제 나이를 따져 보시더니 올해 집짓는 방향은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십니다. 그 방향으로 잠시 서 있었더니 참 편안했습니다. 노을도 더욱 운치를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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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량형 구들을 놓았습니다. 방 두칸을 한 아궁이에서 데웁니다. ⓒ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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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을 세웁니다. 기둥 사이에는 황토벽돌이 들어갈 것입니다. ⓒ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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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열기를 코일에 담아 온수를 데워 거실 난방을 합니다. 윗쪽에 보이는 것이 코일. ⓒ 이우성

콘크리트 타설을 하고 기초에서 1미터 이상은 벽돌로 쌓아올리고 방 두 칸을 한 아궁이로 연결해 구들을 앉혔습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그 열기를 코일에 담아 온수통에 연결해 거실은 그 온수로 난방을 합니다. 개량형 구들입니다.

지붕에는 태양열모듈(집열판)을 설치해서 그 햇빛 열기를 온수통에 꽂아 물의 열기를 식지 않게 합니다. 기둥은 한옥형 짜맞추기로 세우고 벽면은 황토벽돌로 채우게 될 것입니다.

크고 작은 일들은 수시로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쯤이야 평생 살 집을 짓는 데 어련히 따라오는 어려움이다 싶었습니다. 그리 큰 방해작용을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상량식하던 날, 흙살림 연구원이 액맥이타령을 구성지게 불러줍니다. 정월부터 12월까지 드는 액을 다 막아줍니다.

그날 나머지 밭에 이곳 명물인 대학찰옥수수를 심었습니다. 밤늦도록 이어진 일에 귀농 친구들과 선배 농부들이 모두 환한 대낮인 것처럼 호흡 맞춰 일했습니다. 이웃 어르신은 슬며시 나와 당신 마당의 전깃불을 끌어다 밭 귀퉁이에 걸어줍니다. 옥수수를 다 심고 난 후 막걸리 한잔 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박달산 산신령께서도 참고 참았던 빗줄기를 때맞춰 내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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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짜리 사랑방도 지었습니다. 손님방입니다. 서까래 모습. ⓒ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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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식 마치고 마을 어르신과 귀농선배동지들과 막걸리 한잔씩 합니다. 액맥이 타령도 구성지게 나옵니다. ⓒ 이우성

봄 농사 한창이라 새벽부터 밤늦도록 정신없이 농작업이 이어지지만 올해 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5년 전 귀농할 때 심은 매화나무를 집짓는 뒷자리로 고이 옮겨놓았더니 고맙게도 다시 꽃을 피웠습니다. 느티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이곳, 박달산 그늘에서 천상 박달산 귀신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음만은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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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귀농할 때 심은 매실나무를 집터로 옮겼더니 다시 예쁘게 꽃을 피웠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 이우성

덧붙이는 글 | 집짓기 절반 정도 되었습니다. 5월이 되면 박달산 산채에 산적이 될라나요? 이곳은 지천에 꽃이 피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집짓기 절반 정도 되었습니다. 5월이 되면 박달산 산채에 산적이 될라나요? 이곳은 지천에 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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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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