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 1권대교베텔스만
인간이 만든 수많은 단체와 조직 중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조직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장렬한 최후를 맞은 조직은 어떤 것일까? 여러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중에는 템플기사단(성당기사단)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1118년 프랑스의 기사 '위그 드 파옝'이 8명의 젊은이와 함께 만든 기사단.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한 군병들>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기사단. 예루살렘의 폐허에서 먹고 자며 청빈과 순결, 복종을 서약한 기사단. 9명으로 시작했지만 곧 엄청난 부와 세력을 거머쥔 기사단.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이단으로 몰려서 무서운 고문과 화형 끝에 와해되어버린 기사단.
짧지만 파란만장한 이런 역사를 가진 기사단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더구나 역사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구미가 당길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템플기사단은 역사 미스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 레이먼드 커리의 <최후의 템플기사단> 등이 바로 이런 작품들이다.
위의 작품들은 모두 템플기사단을 둘러싼 음모로부터 출발한다. 그 음모의 핵심은 템플기사단의 애초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초기 템플기사단은 예루살렘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가, 라는 문제와 연관이 있다.
댄 브라운은 <다 빈치 코드>를 통해서 템플기사단은 시온 수도회가 만든 군사조직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레이먼드 커리에 의하면, 템플기사단은 처음 9년 동안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성전에 틀어박혀서 밖에 나가지도 않은 채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 9년 후에 템플기사단은 막강한 세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일까?
템플기사단을 둘러싼 음모의 핵심은 이 부분에 있을 것이다. 이들은 정말 모두를 겁먹게 할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했을까? 그리고 <푸코의 진자>에 등장하는 아르덴티 대령의 말처럼, 세계를 뒤엎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까?
역사 미스터리에 자주 등장하는 템플기사단
호르헤 몰리스트의 <반지>는 바로 이런 템플기사단의 보물에 관한 역사 미스터리이다. 이 보물은 템플기사단이 예루살렘의 폐허에서 발견한 보물이 아니다. 그보다는 템플기사단이 사라져 가면서 어딘가에 보관해둔 보물이다.
<반지>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윌슨이라는 젊은 여성이다. 스페인 출신으로 뉴욕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는 여성이다. 크리스티나는 26번째 생일날, 두 개의 귀한 반지를 선물 받는다. 하나는 남자친구에게 받은 약혼반지이다. 다른 하나는 불쑥 찾아온 정체모를 남자가 전한 반지이다.
이 두 번째 반지는 투박한 듯 보이면서도 뭔가 오래된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금으로 된 동그란 테에 올라앉아 있는 붉은 루비. 거기에 불빛을 비추면 빨간 십자가가 투영된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그리고 끝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십자가. 바로 템플기사단의 십자가인 '짓밟힌 십자가'이다.
이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생겨난다. 휴대전화와 집열쇠가 없어지는가 하면, 혼자살고 있는 방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밤에 잠을 잘 때면 중세를 배경으로 한 이상한 악몽을 꾸기도 한다. 게다가 반지의 정체도 궁금하다. 반지 안에는 죽은 자의 뼈가 조금 담겨있다고 한다. 죽은 사람의 뼈가 자기 손가락 위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누군들 기분이 좋을까.
크리스티나는 이 모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2명의 젊은 남자와 재회하고, 함께 모험을 시작한다. 하지만 보물을 찾는 모험인 만큼 이 모험은 쉽지 않다. 자신들을 추적하는 누군가와 마주치고, 또 계속 크리스티나를 감시하는 수상한 노인을 발견하게 된다. 크리스티나는 과연 모험을 끝마치고 무사히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템플기사단이 남긴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
굳이 <반지>가 아니더라도, 템플기사단을 소재로 한 역사 미스터리는 많다. <반지>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존에 발표된 작품들과 다른 어떤 차별을 두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반지>의 전개방식은 분명히 색다른 면이 있다. 뉴욕에 약혼자가 있는 젊은 여성이 스페인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두 명의 젊은 남자를 만난다. 그렇다면 이들 사이에서도 뭔가 연애감정이 싹틀 가능성이 많다. 크리스티나는 갈등하고 방황한다. 뉴욕으로 돌아가서 결혼과 함께 안정된 생활 그리고 탄탄한 미래를 보장받을 것인가. 아니면 스페인에서 가슴 뛰게 하는 모험에 빠져들 것인가.
크리스티나의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들 사이에서 갈등하고, 다 때려 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와 전화로 싸우고,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미행을 해오는 수상한 남자. 이래저래 크리스티나의 모험은 난항의 연속이다.
템플기사단의 이야기는 왜 미스터리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것일까. 템플기사단은 중세에 시작돼서 중세에 몰락했다. 템플기사단은 초기에 청빈을 내세우고 예루살렘의 폐허에서 거지꼴로 생활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교황이외에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만큼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다가, 결국 마녀사냥 식의 고문과 화형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어찌 보면 이런 템플기사단의 일생이 중세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다. 신비와 비밀의 조직, 그리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 조직 템플기사단.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들은 이 조직의 이야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결말을 추가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통해 지긋지긋한 암흑시대인 중세에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반지> 1, 2. 호르헤 몰리스트 지음 / 김수진 옮김. 대교베텔스만 펴냄.
반지 1 - 최후의 템플기사가 남긴 유물
호르헤 몰리스트 지음, 김수진 옮김,
북스캔(대교북스캔),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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