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
우리는 우르르 논으로 달려갔다. 면사무소 지도차량이 곁에 서고 우리는 논으로 들어섰다. 차에는 네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내리지 않고 "누구 라이터 없어요? 불 지르세요!"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불을 붙이자 그들은 붕 하고 다른 데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참 맥없는 순간이었다.
네 논 내 논 할 것 없이 제일 위 논부터 불을 질렀다. 제일 위에 있는 논두렁을 주의해서 잘 태우고 나면 나머지 논은 맨 아래부터 마음 놓고 불을 질러 올라가면 된다. 그러면 불길이 산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봄볕을 받아 바싹 말라 있던 풀섶에 불길이 닿자 불은 날랜 뱀처럼 번져갔다. 불길을 에워싸고 불이 번져 갈 길을 만들어가던 우리가 도리어 눈 깜짝하는 새 불길에 에워싸이고는 했다.
불똥은 개구리처럼 튀었다. 여기로 불똥이 튀었구나 싶으면 어느새 저기로 날아 간 불똥이 훨훨 타오르는 것이었다. 어라? 어라? 하며 아찔했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불이 번지기 전에 미리 갈퀴로 검불들을 긁어내면서 불길을 조절했다. 불이 드세어지면 검불들을 얇게 흩었고 불길이 사윌 듯하면 검불들을 불쪽으로 긁어모았다.
다른 논다랑이로 불을 옮겨 붙일 때는 갈고리에 불붙은 검불을 퍼서 끼얹었다.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매콤한 연기와 함께 검댕이가 얼굴에 확 끼얹어졌고 숨통이 콱 막혔다.
연기를 피해 도망가는 쪽으로만 연기가 몰려오면 '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거지?' 싶으면서도 더럭 겁이 나곤 했다.
논두렁 태우기, 효과 있나?
어떤 논 바로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있는 데가 있어서 사람들을 한 군데로 모았다. 논두렁 가장자리로 빙 둘러가며 마른 풀을 걷어낸 다음에 엷고 가늘게 불을 질러 나갔다. 비닐하우스 쪽에 물을 끼얹고 하자는 사람이 있었지만 가타부타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자 그 말은 불티처럼 그냥 공중으로 사라져 가 버렸다.
키 큰 마른 갈대가 빡빡하게 서 있는 개울가에서는 짜자자자작 하고 요란하게 박수치는 소리를 내며 탔고, 땅을 융단처럼 뒤덮고 있는 잡풀 무성한 논두렁은 바람결을 따라 좌악~ 좌악~ 하는 소리를 냈다. 소나기 뿌리는 소리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내가 올해 모를 심을 논 500평은 이태 동안이나 묵었던 논이라 논바닥에도 갈대랑 잡풀들이 두어 자씩 자라있었다. 불길이 제 스스로 타 들어가기에는 풀이 듬성듬성했고 그냥 놔두기에는 논갈이가 힘들 그런 상태였다. 갈퀴로 잡초를 한 줄로 긁어모으면서 불을 붙였더니 잘 탔다. 풀이 무성했던 곳에는 불길이 사위고 나서도 불잉걸이 남아 있어 일일이 흩어 놓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