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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와 완채는 근육병 때문에 초등학교 들어가서 부터 스스로 걷지를 못했다. 사진은 제 작년에 더아모의집 식구들과 함께 해수욕장에갔을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것이다. ⓒ 송상호
"목사님, 저 윤채 엄만데요."
"아 예.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이?"
"그건 아니고요. 우리 아들들이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그래서요."
"엥. 갑자기 웬 노트북이?"
이렇게 시작된 윤채 엄마(경기 안성 일죽면 장암리, 더아모의집이 섬기는 장애 형제 가정의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의 골자는 이렇다.
전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서 컴퓨터 옆으로 갈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윤채(형, 19세)랑 완채(동생, 17세)는 전동 휠체어조차 탈 기력이 떨어진 바람에 컴퓨터와 결별하고 살았다. 대신에 죽어라(?) 텔레비전만 보아 왔던 것.
그러던 차에 일주일에 1회 방문하여 장애 형제를 가르치러 오던 특수 교사의 노트북이 장애 형제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두 형제는 자꾸만 그들의 어머니에게 노트북을 사달라고 졸라댔고 어머니는 길도 몰라 난감했을 뿐만 아니라 비쌀 거 같아 말도 못 붙이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완채 생일에 즈음하여 생일 선물로 사주기로 결정하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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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가 들어오자 어머니 엄미자씨가 자녀들의 오랜 숙원을 풀어 주었다는 마음에 더욱 좋아한다. ⓒ 송상호
"예. 그럼 제가 한 번 알아보죠. 그런데 얼마를 준비하실 수 있는지?"
"아이 목사님은. 우리 집 형편 잘 아시잖아요."
"그래요. 알아서 하겠습니다. 충성. 허허허."
전화를 끊고 당장 인터넷을 통해 중고 경매 사이트를 뒤지고 다니다 결국 한 개를 건졌다. 60만원 상당의 중고 노트북이다. 사실 나도 그 분야에 전혀 문외한이라 알지는 못하지만, 일단 별로 비싸지 않은 것 같고 유명회사 제품이라 AS는 잘 될 거 같아 고른 제품이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거래해왔던 사이트라 믿고 살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웬걸.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노트북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고른 것이라 그런지 자꾸만 말썽이 생긴 것이다. 배달된 노트북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용하기가 불편해진 것이다. 장애 형제이니 그 요소가 플러스 되어 더욱 사용하기가 까다로워진 셈이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반품을 하기에 이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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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완채가 컴퓨터를 먼저 시운전 해보는 중이다. 완채가 자판을 손으로 두드리지 못하고 도구를 사용해서 두드리는 게 눈에 확 들어온다. ⓒ 송상호
그래도 길을 찾아보려고 사방팔방을 알아보다가 내가 자주 가는 컴퓨터 수리 가게 아저씨에게 문의하니 속시원한 해답을 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일반 컴퓨터를 사용하되 마우스와 자판만 무선으로 하면 오히려 노트북보다 형제가 사용하기에 좋을 거라는 것을. 나와 윤채 엄마는 갑갑한 현실 속에서 무슨 큰 빛이라도 본 듯, 더운 여름날에 소나기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컴퓨터가 드디어 윤채랑 완채에게 도달된 것이다. 실로 노트북을 구입하겠다고 나에게 전화가 온 지 보름만에 일궈낸 쾌거였다. 컴퓨터 가게 아저씨도 이 형제들을 잘 아는 터라 컴퓨터 원가만 받고 해주시니 그저 고마울 밖에.
"완채야. 이제 엄마가 생일 선물 사줬다."
"예."
"윤채도 같이 하면 되니까 군말 없기다. 알겠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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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완채가 컴퓨터를 시운전하자 형 윤채가 손거울로 모니터를 훔쳐보고 있다. ⓒ 송상호
요즘 흔한 게 컴퓨터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이 형제 집에선 결코 예삿일이 아닌 게다. 형제는 그동안 기다리느라 새까맣게 타버린 속도 잊은 채 컴퓨터 시 운전에 벌써 빠져들었다. 사실 형제들보다 더욱 기분이 좋은 것은 윤채 엄마 엄미자씨다. 큰 숙제를 풀어낸 아이마냥 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엄미자씨는 몇 년째 혼자서 두 아이를 수발해 왔다. 남편은 4년 전에 저 세상 사람이 됐으니 바람막이 하나 없이 혼자 그 길을 걸어온 게다. 더군다나 조카 3명을 어렸을 적부터 키우고 있으니 '휴먼 드라마' 그 자체인 여성이다. 이런 힘겨운 길에도 이렇게 웃는 날도 있다며 윤채 엄마는 박장대소를 한다.
그렇게 컴퓨터가 들어오던 날은 장애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에게 평생 기억될 게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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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미자 씨의 삶은 한 편의 인생 역경 드라마다. 자신의 아이들도 힘든 상황인데 사진에 있는 조카 3명까지 20년 가까이 거두고 있으니 말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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