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로 값싼 생필품? 그건 낚싯밥
비준 반대는 미래 씨앗 보존 운동"

[불자가 만난 사제] 김시영 한국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

등록 2007.04.22 14:32수정 2007.07.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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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목사, 불자인 시민기자가 타 종교 성직자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종교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기사를 통해 타 종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종교의 진정한 의미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불자인 임윤수 기자가 김시영 신부를 만나 한미FTA와 농촌문제 등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주>
a 김 신부의 아버지는 농부였으며 가톨릭 농민회 활동을 했다고 한다.

김 신부의 아버지는 농부였으며 가톨릭 농민회 활동을 했다고 한다. ⓒ 임윤수

김시영(39) 한국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이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를 경기도 안양 중앙성당에서 17일 만났다. 경북 안동교구 농민사목 전담사제인 김 신부가 가톨릭농민회 전국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 성당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갔다.

첫 인상이 참 좋다. 헐렁한 멜빵바지를 입은 듯 편안하게 다가온다. 지금껏 예민하게 생각되던 성당과 신부에 대한 경계심이 스스럼없이 사그라진다. 농민과 농촌에 대해 말할 때는 미풍 같던 김 신부의 목소리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문제를 논할 때는 투사의 외침 그 자체였다.


'식량은 곧 주권이며 생명'이라고 강조하며 한미FTA 반대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김 신부의 말에서는 진솔함이 묻어났다. 농민과 함께 싸우고, 기도하고, 땀 흘리는 김 신부의 말에서는 의미조차 점차 희미해져 가는 '농자천하지대본' 사상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음은 삶과 한미FTA에 대해 김 신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농민 사목을 선택한 이유

- 사제 선택에 따른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1997년 7월 25일 서품(신부로 임명됨)을 받았으니 올해로 딱 10년 된다. 신학교 생활을 포함하면 20년이 된다. 중학교 3학년 때 다니던 성당(경북 의성 다인성당) 주임 신부님이 농민회 지도신부님이셨다. 민주 항쟁이 치열하던 1980년대, 농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시는 신부님을 보면서 사제의 길을 결심했다.

집안 어른들은 출가를 반대하지 않으셨다. 할머니 때부터 천주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도리어 성스러운 삶을 선택했다고 축하받았다. 3명의 동생을 포함해 온 가족이 천주교 신자다. 그렇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신학생일 때는 물론, 신부가 되고 나서도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기도는 끊이지 않는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려, 신부 그리고 수녀가 어떤 사연으로 성직자가 됐을까'하고 궁금해한다.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어서 사제가 된 건가?
"모든 신부나 수녀에게 사연이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부나 수녀가 삶의 선망이 되기도 하니 그 선망의 삶을 선택했다고 보면 된다. 신학교에 다닐 때 5년 정도 열렬하게 따라다니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에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만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설명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해 주더라. 이런 것도 사연이라고 할 수 있나? 결국 사제가 되는 것은 개인이 선택한 가치관이며 삶의 방법이다."


a 김시영 신부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묵 설명했다.

김시영 신부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묵 설명했다. ⓒ 임윤수


- 성당, 신부하면 고해성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무덤까지 가져가야 할 사회적 비밀을 고해성사 받아본 적이 있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을 고해성사 받는 경우도 있고, 사소한 일들을 고해성사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받고 나면 다 잊는다. 기억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고해실을 나오면서 다 잊는다. 고해성사를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인데 좋지 않은 이야길 계속해서 듣는다고 생각해 봐라. 기억해서 좋을 게 뭐 있나.

신학교 때부터 고해성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훈련인 '대침묵'을 연습하고 교육받는다. 대침묵이란 말로 침묵하는 것뿐 아니라 행동, 눈빛조차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교육을 통해 고해성사를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하면 그 죄나 고민이 해결되거나 사해지기를 기도하고 잊는다."


- 사제로서 금욕생활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는가?
"용불용(用不用) 법칙이라는 게 있지 않나?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하게 마련이다. 오욕(五慾)이라는 것도 그렇다. 부부 간의 사랑은 일대일이지만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상대로 다양한 사랑을 한다. 그렇게 다양한 사랑과 절대자를 상대로 사랑하다 보면 극복하게 된다. 신부에겐 양육을 책임져야 할 자식이나 부양할 가족이 없는데 돈에 욕심내서 뭐하겠나."

나는 농부 아버지를 둔 촌놈 신부

a 2006년 6월 5일 제6회 풍년 기원 미사.

2006년 6월 5일 제6회 풍년 기원 미사. ⓒ 김시영

- 농민활동을 지도하게 된 배경이나 이유가 있나?
"난 농촌에서 태어난 농부의 아들이다.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께서도 가톨릭 농민운동을 하셨다. 그런 분위기의 농촌가정에서 성장했고, 어릴 때 다니던 성당 신부님이 농민을 위하여 앞장서시는 것에 감동받은 것도 농민과 함께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일부에서 NGO 활동에 주장과 권리만 있고 실천과 대안 그리고 책임은 없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게 오해하는 거다. 대안도 제시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질 자세도 돼있다. 다만 메이저 언론에서 일부 행동만 집중 보도하니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하는 거다.

이번에 한미FTA를 반대하면서도 반대 이유나 대안을 알리려고 농부들이 쌀가마니를 모아 광고비를 마련했다. 그런데 광고 자체를 거부했다. 우린 대책 없이 반대하고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분명한 대안과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며 반대했는데도 대안과 반대 이유를 알릴 언로가 차단되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참 안타깝다."

- 한미FTA를 '제2의 을사늑약'이며 '사기'라고 규정했다. 누가,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누구를 속인다는 것인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주식 상당 부분을 미국자본이 잠식하고 있다. 한미FTA를 말할 때 경제만 놓고 말하지만, 사실은 러시아-중국-한국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블록화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는 음모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 블록이 형성되면 경찰국가로서 미국의 영향력 등이 감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블록화를 방해하려는 방패막이로 한국을 속국화하려는 음모다.

정부와 언론이 농촌에만 피해가 집중되는 것으로 보도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착각하고 있다. 농촌과 일부 분야에서만 피해를 입는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국민 전체가 피해를 본다. 기껏 몇 %의 사람들에겐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대부분 고통받게 된다.

설사 제조업이나 중공업 분야에서 이익이 난다고 해도 대기업 주식의 상당 부분을 미국 자본이 잠식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그렇다면 중공업이나 제조업에서 이익을 낸다고 해도 결국 그 이익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분명한 거 아닌가. 그리고 한미FTA는 통일에도 장애가 된다.

이런 속사정을 은폐할 뿐 아니라 협상 내용을 밝히지 않는 자체가 사기다. 사기의 주범은 미국이고, 한국 정부는 동조자 내지는 이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협상문을 발표한다고 하지만 두고 봐라, 번역되지 않은 영문 협상문을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발표할 거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토씨 하나에 의미와 해석이 달라지는 게 협상문인데 그 협상문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결코 협상전문가들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가?"

- 많은 사람들이 한미FTA의 부당성을 주장했는데도 여론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찬성 내지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사람들의 정적인 정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하는 정서가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국민 대다수가 한미FTA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다. 정부와 언론은 한미FTA가 체결되면 농촌에서 약간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국가 전반적으로 보면 더 많은 이익이 생긴다고 말한다.

도시생활자들이 더 싼 값으로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으니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고 착각하게끔 정부에서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초창기에야 미끼를 던지듯 조금 싼 가격으로 공급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가경제는 물론 가정생활을 피폐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올 것임을 멕시코와 캐나다의 예에서 알 수 있다. 한미FTA 체결에서 비롯될 피해나 실상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차단돼 국민들이 그런 오해 내지는 착각을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비준 반대 운동에 적극 동참해 달라

a 한미FTA 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김 신부에게선 투사의 열정이 느껴졌다.

한미FTA 반대 이유를 설명하는 김 신부에게선 투사의 열정이 느껴졌다. ⓒ 임윤수

-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협정 과정이나 타결문을 한글로 번역해 실체를 정확하게 알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전후 사정이나 과정, 예상되는 결과를 가감 없이 알려 국민들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판단 결과를 국민투표로 구하면 된다.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알렸는데도 국민이 찬성한다면 그건 국민의 선택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보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는 개인의 판단이나 결정은 착각이거나 오류로 전적으로 정부 책임이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건 무엇보다 정보의 완전 공개다."

- 도시민과 농민의 이해가 상반될 경우(타협점을 찾기가 곤란한 경우)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근시안적으로 보면 농촌과 도시가 반목될 수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멕시코 경우를 보자. 그들은 옥수수로 만든 또르띠아라는 음식을 매일 먹는다고 한다. 나프타 체결 전에는 이 또르띠아가 1페소였지만, 지금은 6페소 50센트로 거의 7배 정도 비싸졌다고 한다. 이런 결과가 우리에게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농촌만 피해를 볼 것 같지만 결국 도시생활자들도 이런 피해를 보게 된다.

도시 생활자가 언제까지나 값싼 생필품을 얻을 수 있다? 이거 낚싯밥으로 생각해야 한다. 두고 봐라. 한미FTA가 체결되면 경제속국, 식량속국이 되고 결국 주권을 상실한 미국의 51번째 주가 된다.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이 이익을 내면 서민을 위해 내놓을 것 같은가? 아니다. 작년에 1조 얼마인가 이익을 냈다고 하면서 결국 그들만을 위한 잔치를 벌이지 않았나. 그들에는 주식의 상당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포함돼 있다."

- 한미FTA 비준을 앞둔 시점에서 국민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언젠가는 드러날 진실 앞에서 후회하지 말고 우리(한미FTA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들) 말을 믿어줬으면 좋겠다. 한미FTA가 체결되기 전에 막아야 하니 비준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해주면 좋겠다. 비준이 끝난 다음에는 한미FTA 실상을 알고 반대투쟁을 해봤자, 이미 늦게 된다. 농촌만의 문제나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말고, 내 일, 내 자식의 미래로 생각해 달라. 한미FTA 때문에 생길 피해는 결코 농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말하고 싶다. 국가경제와 전 국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나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FTA(Fighter Target America, 미국을 표적으로 싸우는 전사)'라고도 하는데, 김 신부도 이 FTA에 포함된다고 해석해도 되는가?
"미국인을 과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 주장하는 정책,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 신자유주의를 과녁으로 하는 전사라고 정리하는 게 좋겠다. 신자유주의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게 생명공동체다. 그 생명공동체가 한국 농촌에는 씨알처럼 남아 있다. 생명공동체는 죽임이 아니라 생명(살림)을 위한 공동체다. 남에게 군림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공동체를 형성해 어울림의 삶을 살자는 것이다.

한미FTA 반대 흐름은 겉으로 보면 농촌의 손해를 반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너질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며 한국의 미래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인은 정체성을 잃게 되고 정체성을 잃은 민족의 미래는 암담하다. 한미FTA 반대는 미래에 생존하기 위한 씨앗 보존운동이라고 봐도 좋다."

- 한미FTA를 반대하며 분신했던 허세욱씨가 15일 결국 사망했다. 이런 불상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경우든 자살은 반대한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극단적인 표현을 선택했을까 생각하면 현실이 참담해진다. 그분이 살아온 삶이나 흔적으로 봐 미국을 대상으로 한 전사(戰死)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됐건 안타깝다. 그분의 죽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한미FTA 반대에 동참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어떠한 경우라도 살아서 투쟁하자고 부탁하고 싶다. 살아있어야만 투쟁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a 김시영 신부가 찾는 성경의 한 구절은 바로 농부의 마음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김시영 신부가 찾는 성경의 한 구절은 바로 농부의 마음에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 김시영

#한미FTA #한국가톨릭농민회 #김시영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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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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