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먹기 딱 좋은 더덕과 두릅, 가는 봄이 아쉽네요

친정엄마가 키우고 지킨 덕에 자식들 입이 즐겁습니다

등록 2007.04.23 15:34수정 2007.04.2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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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주려고 텃밭에 애지중지 키우시는 두릅
자식들 주려고 텃밭에 애지중지 키우시는 두릅김혜원
"두릅이 딱 먹기 좋게 자랐어. 내일쯤은 따야지."
"이제 따면 두릅은 마지막이다. 5월이 되면 세져서 먹지 못하거든."
"더덕도 캐야지. 뭐니 뭐니 해도 더덕은 봄에 향이 제일 좋거든."


집 뒷산에 작은 텃밭을 일구시는 엄마는 두릅순이 뾰족하니 얼굴을 내밀 때, 더덕이 연한 향을 발하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이 바쁘십니다. 어느 때 따야 가장 맛이 좋은지? 어느 때 캐야 향이 가장 좋은지? 가늠하며 가장 향과 맛이 좋을 때 식탁에 올리시려는 것이지요.

"산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임자 없는 것인 줄 알고 마구 따가는 통에 지난해에는 남 좋은 일만 시켰는데 올해는 내가 꼭 지켜서 오붓하게 먹게 생겼어. 향이 제일 좋을 때 따서 맛있게 먹자."

까고, 말리고, 두드리고, 양념하고...자식먹일 생각에 힘든 줄 모르시는 엄마.
까고, 말리고, 두드리고, 양념하고...자식먹일 생각에 힘든 줄 모르시는 엄마.김혜원
키우느라 애쓰고 지키느라 공을 들인 두릅과 더덕. 두릅은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서 먹기만 하면 되지만 더덕은 다릅니다. 식탁에 오르기까지 적지 않게 손이 가는 음식이거든요.

금방 캔 더덕은 수분 함량이 많아서 바로 조리할 경우 부서지거나 푸석거리는 등 식감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껍질을 깐 채 며칠간 꾸덕꾸덕하게 말린 후에 다시 손질을 하는 것이지요.

사나흘 말린 더덕 몸에서는 끈끈한 진액이 묻어나는데 이때 방망이로 자분자분 두드리면 부서지지도 않고 양념이 잘 먹도록 잘 펴진답니다. 더덕 본래의 쌉쌀하고도 달근한 향을 즐기려면 이대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어도 좋지만 아무래도 석쇠 위에서 기름 잘잘 흐르게 구워낸 더덕구이만은 못하지요.


양념한 더덕을 석쇠에 잘 구워냅니다
양념한 더덕을 석쇠에 잘 구워냅니다김혜원
더덕 껍질을 벗기고 꾸둑하게 말려서 두드려만 놓으면 양념하고 구워내는 일은 생각보다 수월합니다. 잘 두드려 편 더덕에 파, 마늘, 참기름, 고추장, 설탕, 맛술, 후추가루, 고춧가루, 참기름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앞뒤로 고르게 발라 석쇠에 구워내기만 하면 향도 좋고 맛도 좋고 몸에도 최고로 좋은 더덕구이가 완성되니 말입니다.

지난 겨울부터 정성을 들여 키우고 지켜서 얻게 된 더덕과 두릅을 더덕구이와 두릅초회로 먹게 되는 날, 마침 미국에서 한국으로 출장을 오게 된 아들과 세 딸 그리고 사위 셋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시더니 오늘 우리가 호강을 하네요. 이게 시장에 나가서 사려면 값이 얼만데…."
"값도 값이지만 향이 죽이네요. 식당에서 사먹는 두릅이나 더덕은 이런 향이 안 나거든요."
"더덕이랑 두릅에 사포닌 성분이 많다더라구. 인삼 저리 가라로 좋은 음식이란 말이지. 보약으로 알고 먹어야해."
"암만, 내가 우리 자식들 좋은 것 먹이려고 지난 겨울부터 마련한 건데. 이렇게 다들 모여 앉아 애써서 키우고 지킨 보람이 있다. 밥들도 한 그릇씩 더 먹어."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먹기도 아까운 두릅입니다.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먹기도 아까운 두릅입니다.김혜원

예쁜 그릇에 먹기 좋게 담아 내면 되지요.
예쁜 그릇에 먹기 좋게 담아 내면 되지요.김혜원
봄이 깊어가는 날. 휘날리는 벚꽃들의 낙화를 바라보며 맛보는 향긋한 봄나물의 맛을 쉽게 잊지 못할 듯합니다. 지금 맛보고 나면 내년 이맘때나 되어야 다시 제 맛을 볼 수 있다는 향 깊고 맛좋은 두릅과 더덕.

그래서인지 봄의 맛을 아는 식도락가들에게는 가는 봄이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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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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