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불... "우린 어디로 가라고"

[비닐하우스촌에서 일주일 ③] 화재에 무방비...안전대책 요원

등록 2007.05.04 17:24수정 2007.05.0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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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자체들은 비닐하우스촌 거주민들의 전입신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주소지 인정문제로 생활상의 여러 불편을 겪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경기도 과천 꿀벌마을 등 5개 비닐하우스촌에서 직접 1주일간 생활하면서 취재한 발로 쓴 '도시빈민현장보고서'를 4차례로 나눠 보도한다. <편집자주>
a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 있는 아랫성뒤마을에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10채를 모두 태우고 40여분 만에 꺼졌다. 주민들은 재차 있을 지 모를 화재사고 등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 있는 아랫성뒤마을에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10채를 모두 태우고 40여분 만에 꺼졌다. 주민들은 재차 있을 지 모를 화재사고 등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아랫성뒤마을. 하루 아침에 거처를 잃은 주민들은 관련단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임시 거처를 세우고 있다.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 아랫성뒤마을. 하루 아침에 거처를 잃은 주민들은 관련단체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임시 거처를 세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내 바지 어디 갔지? 내 바지…."

지난달 17일 오전 아랫성뒤마을(서초구 방배3동) 주민 김형선(48)씨는 시꺼먼 잿더미 안에서 바지를 찾아 헤맸다. 찾는다 해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도 그는 쟁기까지 꺼내 들었다.

그는 "부업으로 가방이나 모자를 떠서 파는데, 어제(16일) 손뜨개질 한 것을 팔아 10만원을 받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그 돈이 어디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평소 남편과 함께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덮친 불... "태울 게 뭐 있다고 여기까지"

아랫성뒤마을에 화재가 발생한 건 하루 전날인 16일. 마을 입구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시작됐고, 불길은 뒷산 능선을 타고 주민들을 덮쳤다. "불이야"라는 소리에 뛰쳐나온 33명의 주민들은 고스란히 길에 나앉게 됐다.

김씨를 포함해 마을 주민들의 집 앞에는 아이들 사진, 주택부금 통장, 100원짜리 동전이 가득한 돼지 저금통 등이 햇빛을 받으며 '부활'을 시도하고 있었다. 세간들에서 그들의 과거가 묻어났다.

김씨는 "몇 년 간 부지런히 부었는데, 차압이 들어와 다 날아갔다"며 쓸모없게 된 통장을 내보였다. 그는 "부동산 소식, 유누스(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 총재) 기사도 모았다, 혹시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집을 장만할 수 있을까 해서"라고 말했다. 신문 스크랩도 다 탔다.


김씨는 잿더미 속에서 끝내 바지를 찾지 못하고 마을 앞마당으로 나왔다. 주민들은 쓸만한 전기밥통과 국솥을 마을 입구에 꺼냈다. 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한 쌀로 밥을 지어 주민들이 다같이 나눠먹었다. 반찬은 김치찌개와 김치. 바람이 불면 까만 재가 하얀 밥 위에 내려 앉았다.

주민들은 김영창 주민대표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재민이 머물만한 임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목재 등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a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 있는 아랫성뒤마을에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10채를 모두 태우고 40여분 만에 꺼졌다. 주민들은 재차 있을 지 모를 화재사고 등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우면산에 있는 아랫성뒤마을에 16일 새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해 가건물 10채를 모두 태우고 40여분 만에 꺼졌다. 주민들은 재차 있을 지 모를 화재사고 등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 대표는 목이 잔뜩 쉬어 있었다. 전날 마을을 방문한 방배3동 동장과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 김 대표는 "주민들이 머물 수 있게 천막이라도 달라"고 주장했고, 동장은 "제2의 사고 위험이 있으니, 마을 인근 노인정으로 거처를 옮기라"고 권했다.

비닐하우스서 판잣집으로

하지만 주민들은 "마을을 비우면 곧바로 철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맞섰다. 김 대표는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 10여평짜리 임시거처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주민 대부분이 건설 일용직 노동자 출신이라 주민 10여명이 힘을 합치자 판잣집 한 채가 하루만에 뚝딱 세워졌다.

또 다른 마을 주민 김지연(41)씨는 "전기 계량기도 놓고, 수도까지 설치하는 등 살기 위한 터전을 만들어놨는데, 왜 나가라고만 하느냐"며 "주민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것이었으면 왜 전기료, 수도료 다 받아갔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화재로 집뿐만 아니라 영업용 자가용 등 생활 터전을 잃었지만, 2가구만이 구청에서 지원하는 긴급지원대상자로 선정됐다. 그들이 받는 돈은 26만 8000원. 같이 살지 않는 자녀의 수입까지 소득으로 책정돼 지원대상에서 대부분 다 빠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을에서 기초생활수급자였던 2가구를 포함해 13가구 중 4가구만 정부의 뒷받침을 받게 됐다.

지원을 받는 4가구를 제외한 33명의 주민들은 입던 옷만 건진 셈이다. 주민들은 "불이 나자 곧바로 소방서에 전화했지만, 30분이 지나서야 소방차가 출동했다"며 소방서가 늑장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새벽 3시께 현장에 도착한 서초소방서는 한시간만에 화재를 진압했지만, 35가구 중 13가구가 사라졌다.

서초소방서 관계자는 "연소율이 높은 비닐하우스촌인데다 집들이 밀집해 있어서 피해가 더 컸다"고 설명했다. 조사팀은 화재 원인을 조사중이지만, 김 대표는 "텅 빈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발생할 리 없다"며 방화에 힘을 실었다.

빈곤층 주거지역, 화재 등 사고에 무방비

a 아랫성뒤마을의 경우처럼 비닐하우스촌은 연소 확대가 높은데다 가구들이 밀집해 있어 피해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아랫성뒤마을의 경우처럼 비닐하우스촌은 연소 확대가 높은데다 가구들이 밀집해 있어 피해가 더 클 수 밖에 없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a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윗성뒤마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는데다 상수도 공급조차 이뤄지지 않아 안전한 식수 문제 해결이 제일 시급하다. 사진은 5가구 공용인 재래식 화장실 앞에 주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윗성뒤마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는데다 상수도 공급조차 이뤄지지 않아 안전한 식수 문제 해결이 제일 시급하다. 사진은 5가구 공용인 재래식 화장실 앞에 주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랫성뒤마을과 같은 빈곤층 주거지역은 화재 위험이 높다. 그러나 무허가 주거지인 탓에 해당 소방서가 화재에 대비해 화재 예방 시설을 규제하거나 관리할 법적 근거가 없다. 소화기나 소방도로 의무 설치 등에서 제외된다는 뜻이다.

서초소방서 관계자는 "소방 대책을 세우기는 하지만, 비닐하우스촌이 워낙 화재 위험이 높은 지역"이라며 "평상시 화재 위험성을 감지하고 마을 진입로나 진화 방법에 대한 진압대책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지난 26일부터 방배동사무소와 서초소방서, 방배경찰서 등을 찾아 화재 원인을 규명과 주민 지원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영창 주민대표는 4월 3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초구청 관계자와 면담하는 등 주민들의 주거권 해결을 위해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며 "판잣집이 아닌 주민들이 가족들과 함께 누울 자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a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윗성뒤마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는데다 상수도 공급조차 이뤄지지 않아 안전한 식수 문제 해결이 제일 시급하다. 사진은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

서울 서초구 방배3동 윗성뒤마을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는데다 상수도 공급조차 이뤄지지 않아 안전한 식수 문제 해결이 제일 시급하다. 사진은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물. ⓒ 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랫동안 빈민계층의 주거지였던 비닐하우스촌은 화재 위험 등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윗성뒤마을(서초구 방배3동) 주민들은 식수, 화장실 등 위생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40년 이상된 판잣집 40여 가구로 구성된 마을은 주소지(방배3동 613번지)는 갖고 있지만, 우물에서 퍼올려 사용하는 지하수의 수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서초구보건소는 지난 2월 수질검사를 실시, '식수 가능'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마을 주민 이강희(68)씨는 "작년 11월 수질검사를 받았을 때는 식수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석달만에 어떻게 식수로 가능해지느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마을 주민들은 재래식 화장실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자 등이기 때문에 100만원 넘는 돈을 들여 화장실을 개축하기란 '그림의 떡'이다. 결국 주민들은 3~5가구가 한 개의 재래식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05년 빈곤계층 거주지역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비닐하우스촌의 경우 면적기준, 상수도·전용 화장실 설치 여부를 중심으로 최저주거기준을 적용하면 화장실 기준에 미달되는 가구는 6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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