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으리, 가난하지만 행복한 이들을...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 44] 인촨의 승천사탑과 서하왕릉

등록 2007.04.27 10:32수정 2007.07.0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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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촨, 황하를 앞에 두고 뒤에 허란(賀蘭)산맥을 둔 배산임수의 땅으로 짧았지만 큰 흔적을 남긴 대하(大夏) 제국(1032-1227)의 수도였다.

한자를 본 딴 자신들만의 문자 체계와 과거제도를 갖추고 남으로 송, 요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왕국. 송, 요의 서편에 위치했기에 '서하'라 불렸고 200여년으로 존속 기간은 짧았지만 인촨의 곳곳에 그 시기의 많은 유적을 남겼다. 인촨 내의 사찰을 비롯해 유명한 서하왕릉 등이 다 그 때의 산물이다.

늦은 아침을 이기고 승천사탑과 그 안에 딸린 닝샤보우관(寧夏博物館)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영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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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박물관. 승천탑 사 내에 위치해 있다 ⓒ 오창학

인촨의 서쪽에 자리하여 서탑이라 불리는 승천사탑(承天寺塔) 경 내에 영하역사문물, 서하문물, 회족민속, 하란산암각화 등의 4개 전시실이 위치해 있다. '박물관'이란 간판을 붙이기엔 지나치게 소박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닝샤후이족 자치구의 이모저모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한 '조인(鳥人)'이 눈길을 끈다. 불경에 나오는 쟈릴핀가로 히말라야에 살며 묘한 울음을 운다는 새. 서하의 건축물에도 불교 건축 양식이 가미되었나보다. 도깨비 형상의 남녀 조각을 한 주춧돌 같은 대형 유물이 아니더라도 대나무 펜 같은 소소한 유물들도 서하제국의 면모를 읽게 한다.

무엇보다도 관심이 간 것은 서하의 문자. 한자에 회의자 구성원리로 여러 글자를 배합하거나 획을 더하여 구성해낸 문자다. 수천 자 이상의 문자가 전해져오고 있고 그 대부분은 해독이 가능해 서하인의 일상을 전해주는 귀한 자료로 남아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에 한자를 더한 문자라 어떤 자는 40획이 넘는 글자도 있다.

꼬박꼬박 일기로 인생의 기록을 남기던 중학 시절 누군가 내 생활의 면을 엿보는 것이 싫어 철사로 일기장을 두르고 자물쇠를 채워두었다. 그러나 그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어 불안하기는 매 한 가지.

하여 중2 때 영어발음기호와 한글 자모의 형태를 변형한 내 문자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도 남아 타인에게 노출하기 싫은 기록은 '내 문자'를 사용해 표기한다. 서하문자는 어린 시절 만들었던 내 문자보다도 더 불편한 체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한 번 한글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다.

승천사탑에서 만난 '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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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천사탑, 이곳에 오르면 인촨 시가지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곳에서 테츠를 만났다 ⓒ 오창학

승천사탑에 오른다. 11층, 64m짜리 벽돌탑으로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다. 계단에 가슴을 문지르며 올라 정상에 서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무의식 중에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은가봐' 하고 말을 하려다가 멈춘다. 50대의 교수님이 시야에 들어온 탓도 있지만 인생에서 '옛날이 좋았어'라는 말은 입에 담지 않고 싶은 마음에서다.

가급적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었으면 좋겠다. 현재에 대한 불만족으로 과거나 삼키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내 인생 어느 때에 가파른 64m를 오르고도 숨이 차지 않았던 때가 있었으랴.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게 아니라 숨 찬 일을 했기에 숨이 찬 거다.

1050년에 지어졌으나 지진으로 인해 1820년에 다시 지어진 이 탑은 인촨 지구에서는 가장 높은 탑이다. 그 말이 무색하지 않게 탑 위에서 내려다 보는 인촨 시가지의 풍경도 꽤 좋다. 그런데 바깥을 내다보는 창문 쇠창살에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이곳을 찾은 연인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걸어놓은 것들이다.

자물쇠처럼 굳게 잠겨 서로의 사랑이 풀리지 않았으면 하는 기원에서.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처럼 추상적 대상을 구체적 사물인양 형상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들의 소망이 갸륵하다. 자물쇠가 녹슬어 삭아 내리는 세월이 지나도 그 사랑 영원했으면….

숨을 돌린 뒤 탑을 내려왔는데 뒤따라와야 할 아내가 내려오질 않는다. 탑 문지기 할아버지에게 물어도 우리 뒤로 내려 온 이가 없단다. 밑에서 계단을 통해 소릴 질러도 응답이 없다.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다 변고를 당한 게 아닌가 싶어 숨 헐떡거리는 그 계단을 다시 오른다. 거의 정상에 왔나 싶을 때 들리는 두 여인의 두런거리는 소리. 내려오던 아내와 올라가던 회족 여인이 눈이 맞아 긴 이야기에 빠졌다.

이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 회족 여인의 이름은 테츠. 상하이가 고향인데 외국 생활이 잦고 현재는 일본에서 무역 관련 일을 하며 양국 생활을 반씩 영위하고 있다는 여인.

회족인 그녀에겐 인촨이 특별한 의미였던 것일까? 회족 자치구 내의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는데 그 아이들을 볼 겸 여행도 할 겸 이곳에 들렀단다. 우리 자동차로 중국 내 실크로드 전 구간을 돌았다는 사실에 무척 관심 있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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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족 식당에서의 점심.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회족의 종교관습 때문에 양고기를 넣은 일종의 케밥 같은 음식을 시켰는데 입에 착 붙지는 않는다.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먼 조상이 아랍쪽 사람임을 알 수 있겠다 ⓒ 오창학

테츠도 우리와 함께 서하왕릉에 같이 가기로 하고 점심을 위해 승천사 앞 회족 식당에 들렀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회족의 입장을 배려해 들어온 것인데 양고기를 넣은 케밥은 우리 입맛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철봉씨는 내가 테츠와 대화하는 양이 신기한가보다(자평하건데 내 영어는 중2 정도의 수준에 채 미치지 못한다). 중국의 운전습관에 분노하고 체념하고 이해하길 하루에도 몇 번씩 되풀이했다는 하소연에 답하는 그녀의 말.

"이것이 중국이야.(It's a China!)"

그래 그 말이 맞다. 이 모습이 중국이다. 사실 소수민족 영토에 대한 강제 지배와 최근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염려와 질타의 목소리로 일관했지만 그게 어디 중국인과 중국 문화에 대한 원망이었겠는가. 여행의 마무리에 즈음하여 돌이켜 보건대 이 땅 어디에 소홀하고 하찮은 문화가 있었으며 친절하고 정감 어린 사람 없는 곳이 있었던가.

테츠가 중국 여행에 대한 인상을 묻기에 내 여정은 실크로드였으며 한족의 땅도 있었지만 몽골, 투르키스탄, 티벳, 그리고 여기 회족의 땅을 둘러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봐야 결국은 중국의 땅이 아니겠는가. 그녀 역시 중국인이면서 회족이어서일까. 내 말을 이해한다며 끄덕인다. 테츠는 어쩐지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중국인이다.

제국의 흥망과 서하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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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왕릉과 그 상공을 나는 중국 전투기 ⓒ 오창학

서하왕릉에 도착했는데 상공에 중국 전투기들이 계속 지난다. 어라, SU(수호이)-27이네? 중국에서 면허생산하였을 터니 J-11이라 해야 하나. 아얼진 넘으며 야영할 때 중국의 킬로급 잠수함은 어군탐지기에도 걸리는 고물이며 공군이래봐야 MIG-15(J-5)에서 21(J-8)에 이르는 구형기들로만 채워져 있다고 철봉씨를 놀렸는데(무척 약이 올라 하는 철봉씨를 보며 교포 이전에 어쩔 수 없는 중국인이라는 걸 느꼈다) 이런 삭막한 지역의 창공에서 최신예 전투기들의 군상을 접하게 될 줄이야.

망한 왕조의 무덤 위를 비행하는 전투기 편대와의 우연한 조우에도 중국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부터 이는 것을 보니 나도 참 어지간히 피해의식에 절어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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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왕릉 전시관 내의 실물 크기 디오라마 ⓒ 오창학

왕릉으로 가는 길 한 켠에 전시관이 위치해 있다. 그 중 서하의 역사를 알기 쉽게 디오라마로 구성해 놓은 장소가 이색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짧지만 굵었던 서하 200년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서하를 건국한 이원호(李元昊)가 송 40만 대군을 간쑤성 부근에서 비둘기 매복 작전으로 격퇴한 이야기, 요나라 대군을 건초를 불살라 없애는 청야 작전으로 말먹이를 없앤 후 공격하여 바야흐로 하, 요, 송의 삼국 시대를 맞이하는 역사적 장면, 그런 건국의 제왕이 주색잡기에 빠져 며느리를 새 황후로 삼아 허란산 아래에 궁을 짓고 놀기에 재상이 왕자를 부추겨 모반을 꾀하게 하는 장면 등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1048년에 왕자가 술 취한 원호를 베었으나 팔에 스치고 말아 피 흘리며 방을 나서는 장면도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 때문에 원호는 출혈과다로 죽고, 왕자와 황후는 시해죄로 투옥되고, 2살 난 원호의 아들이 즉위하여 6살 때에 권위를 굳히기 위해 지은 것이 오전에 둘러본 승천사(乘天寺)가 아니었나.

이후 꼬드겼던 재상이 국권을 찬탈하려다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나 서하가 문을 숭상하고 불교를 숭앙했던 장면들을 그럴싸하게 구성해 놨다. 어찌 보면 조악하고 유치한 구성이 아닌가 싶겠지만 역사의 장면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유용한 장치임은 인정할 밖에.

그 중 강하게 나를 붙잡는 대목. 서하국 정벌의 길목에서 득병한 징기스칸이 몽골 텐트 안에서 "서하인의 씨를 말리라"고 유언하는 장면이었다. 네이멍구 에치나치의 '카라호토(黑水城)'에 관련한 흑장군 전설의 잔영이 너무 깊게 남은 탓일까? 남들은 그냥 그런 장면인가보다 하고 넘길 장면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김영종의 <반주류실크로드사>에 소개된 흑장군 전설의 개요는 이렇다. 거칠 것 없는 몽골의 진로를 겁 없이 서하가 가로 막았다. 1226년의 일이다. 서하의 서북부 최전방 요새인 흑수성엔 명장으로 이름난 흑장군이 있다. 명성에 걸맞게 성 안의 백성과 일치단결하여 몽골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낸다.

이 과정에서 징기스칸은 흑장군에게 부상을 입고 위중해지는데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서 이 사실을 은폐한다. 임종을 앞둔 징기스칸은 서하의 멸망을 명하고 눈을 갚는다. 몽골군대가 성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돌려버림으로써 끝내 흑수성은 함락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서하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 때가 1227년.

천하의 몽골군과 마주했던 카라호토의 유적을 보고 싶어 원래의 계획에는 넣었다가 일정상 뺀 곳이라 이곳 전시관에서 만나는 징기스칸의 유언 장면이 남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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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왕릉 ⓒ 오창학

여름 한낮의 태양을 이기고 서하왕릉으로 나아간다. 9개의 릉이 남아 있는데 그 중 3호릉이 이원호의 것. 먼발치서 보기에도 거대한 흙덩이가 봉분처럼 솟아 있는데 이것은 능이 아니라 묘탑이다. 애초에 기와를 얹은 7층 목조건물이 있었으나 소실되었다. 다가갈수록 웅장해지는 전경에 교수님은 연신 "너무했어"를 뇌이신다.

"죽은 다음이 뭐가 그리 중해서 이토록 크고 화려하게 치장했을까? 이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의 고혈이 빨렸을까?"

교수님의 감상이다. 그래도 이렇게 크고 화려하게 치장한 효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천 년 세월을 견뎌 우릴 이곳으로 끌었고 거대한 몸집으로 그늘을 만들어 그 안에 스며들게 하였으니….

왕릉의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경쾌한 댄스곡이 울려퍼지는 정문을 나와 다시 인촨 시내의 숙소로 돌아왔다. 밤 9시. 에릭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제 하미를 떠난 2호차가 몽골과 네이멍구 국경지대의 노선을 통해 인촨으로 이동 중이란다.

무리하지 마시고 내일 바오터우(包頭)에서 만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지만 인촨의 닝샤보우관(寧夏博物館)과 서하왕릉을 보고 싶어 인촨에 꼭 오고 싶다 한다. 그야말로 무인지대의 사막길을 쉴 새 없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32시간 2300Km 죽음의 질주

2호차가 도착한 건 새벽 4시. 나리님이 보이지 않아 물으니. 사업체에 긴요한 일이 생겨 우루무치에서 비행기로 귀국했다 한다. 그러면서도 일행에 누가 될까 떠남을 알리지 말라 하여 그간의 통화에선 말씀을 안 하셨단다.

그렇다면 하미를 출발한 지 32시간 만에 하미-안시-지아위관-에치나치-인촨에 이르는 길 2300Km를 숙박 없이 단 둘이서만 교대 운전하며 달려왔다는 것인데…. 가히 초인적인 여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에치나치 가는 비포장 사막길에서 타이어 휠이 찌그러져 공기압이 새는 것을 에어락커에 달린 컴프레서로 바람을 넣으며 달렸다 한다. 연료가 떨어질 뻔한 사태도 겪고 험한 사막길 주행에 왼쪽 뒷바퀴 서스펜션이 내려앉은 줄도 모르고 예까지 내달렸다.

이 양반들 표현에 의하면 '32시간 죽음의 질주'였다. 그냥 '무사히'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고맙다. 내가 무사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이들을 무사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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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탑 ⓒ 오창학

다시 아침. 겨우 몇 시간도 되지 않는 단잠 끝에 에릭님과 자포님은 희망했던 영하박물관과 서하왕릉을 둘러보러 나섰고 그 사이 우리 1호차 팀은 해보탑(海寶塔)을 보러 나섰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합류해 인촨을 떠난다.

주말이 겹친 통관 일정 때문에 계획을 당겨야 했다. 오늘 바오터우나 후허하오터까지 최대한 진행해 다음날 다퉁(大同)의 운강 석굴을 들러 톈진까지 빼는 무리한 계획을 세웠다. 나야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 괜찮다 치더라도 죽음의 질주를 마친 에릭님과 자포님께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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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허하오터 가는 고속도로 ⓒ 오창학

인촨에서 북상하는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뻗어있다. 밤 10시. 의외로 이른 시간에 바오터우(包頭)를 지나친다. 여의치 않으면 여기서 묵기로 했던 것인데 이 상태라면 후허하오터(呼和浩特)까지 진행해도 될 것 같아 조금 더 무리수를 두어본다.

그런데 문제는 두 차 모두 연료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바오터우 조금 지나 싸라치(士右祈)라는 소읍으로 빠져 나가 주유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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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터우 근처의 싸라치 주유소 ⓒ 오창학

다행히 주유소는 문을 열었다. 주유를 마쳤는데 저녁을 거른 탓에 배가 고프다. 후허하호터까진 아직 먼 길이지만 '먹고 죽은 귀신' 이론에 의거해 배를 채우고 길을 떠나기로 한다. 그간 2호차와 분리되어 있던 탓에 구경하지 못했던 한국 음식들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래서 한적한 공터에서 비상식량을 조리할까 하다가 바람도 불고 아늑한 가운데 끼니를 채우자는 의견이 있어 비상식량을 들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주유소 앞의 작은 식당에 들어서니 태어나 처음 한국인을 본다는 사람들에 둘러싸였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도 나서고 갖은 질문을 하며 한 밤의 작은 식당이 활기를 띤다.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 햇반과 라면을 끓일 설비만 제공케 하고 약간의 경비를 주기로 했다.

꿈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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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라치의 인심 좋은 식당. 2호차와의 해후로 한국 비상식량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 오창학

철봉씨와 함께 주방에 들어가 조리한 라면과 햇반을 가운데 두고 우린 얼마나 행복한 포만감에 몸을 떨었던가. 오래 살고 싶다. 살면서 이런 행복감을 다시 느끼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친절한 주인 내외와 함께 사진을 찍는다. 수도 시설이 없는지 항아리에 물을 받아 살아야하는 이곳이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오래 기억하고 싶다. 오늘의 행복한 음식과 가난하지만 밝은 표정의 이들 얼굴을.

밤12시. 싸라치를 떠나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 차가 미끄러지듯 어둠을 가르는데 적당히 그렁이는 엔진음과 바람 가르는 소리만 동행이 된 채 차 안은 적막과 고요로 가득하다. 뒤 따라 오는 2호차가 살짝씩 좌우로 쏠린다. 이틀간 차 내 수면으로 교대 운전한 후유증이 나타나나보다.

무선을 통해 호출하니 졸음 가득한 자포님의 음성. 동승한 에릭님은 교대운전을 위해 수면모드로 전환 중이라며 뜻하지 않은 말 상대에 반가움을 표한다. 서로 헤어져 있던 동안의 안부를 묻고 이런 저런 대화하기, 노래하기로 체체파리처럼 달라붙는 졸음을 몰아낸다. 모두가 잠든 밤에 전파를 타고 오가는 두 사내의 목소리만 공중을 떠돌고 그 사이 차는 한 발 한 발 후허하오터에 다가서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제 긴 여행을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후허하오터에 도착하면 왕소군묘를 보고 다퉁의 운강석굴을 경유해 정신 없이 톈진으로 들어서게 되겠지요. 이미 마친 여행인데 전 여러분과 두 번째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1~2회 분량의 이야기가 남았는데 벌써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그간 성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이제 긴 여행을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후허하오터에 도착하면 왕소군묘를 보고 다퉁의 운강석굴을 경유해 정신 없이 톈진으로 들어서게 되겠지요. 이미 마친 여행인데 전 여러분과 두 번째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1~2회 분량의 이야기가 남았는데 벌써 서운한 마음이 듭니다. 그간 성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실크로드 #자동차 여행 #대륙횡단 #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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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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