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의 대답은 뭔가요?"

베이징따수에(北京大学)와 칭화따수에(清华大学)에서

등록 2007.04.25 18:47수정 2007.04.25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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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북경대학교의 명물  웨이밍후(未名湖=미명호). 굳이 풀이하자면 '이름이 없는 호수'인데, 대학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좋은 휴식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북경대학교의 명물 웨이밍후(未名湖=미명호). 굳이 풀이하자면 '이름이 없는 호수'인데, 대학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좋은 휴식처 역할을 하는 곳이다. ⓒ 김동욱

a 북경대학교 도서관. 입구의 문지기(아마 공안?)에게 여권을 맡기면 외국 관광객도 열람실 출입을 할 수 있다.

북경대학교 도서관. 입구의 문지기(아마 공안?)에게 여권을 맡기면 외국 관광객도 열람실 출입을 할 수 있다. ⓒ 김동욱

바람이 없다. 전형적인 봄날씨다. 오늘(4월 1일)은 내가 짜 놓은 일정에 따라 베이징대학교와 청화대학교를 방문한다. 물론 초대받은 방문은 아니다. 그저 '가보는' 거다. 오전 10시 왕징의 숙소를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워 야오 취 베이징따수에(我要去北京大学=북경대학교 가주세요)."


택시는 베이징 외곽을 한 바퀴 도는 우환루(五环路)를 막힘없이 달린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표정이 밝다.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택시 기사의 표정이 밝으면 손님인 나도 기분이 좋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이 아저씨, 묻지도 않았는데 신나게 혼자 떠든다. '이 차가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만든 택시다. 다른 차보다 좋다. 고장도 없고 잘 나간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드디어 베이징대학 앞. 대충 문 앞에서 내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이 택시 아저씨, 그대로 대학교 정문(남문)으로 쑤욱 들어간다. 그렇게 북경대학교 안으로 들어간 택시가 나를 내려 준 곳은 바로 유명한 웨이밍후(未名湖=미명호) 앞이었다.

이 택시 기사 아저씨는 북경대학교에 가는 외국 관광객들은 대부분 여기 웨이밍후를 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그의 이런 친절이 고맙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듬뿍 담아 한 마디 날렸다.

"런스~ㄹ닌헌까오싱(认识您很高兴=당신을 만나서 기쁩니다)."
"워예헌까오싱(我也很高兴=나도 기뻐요), 짜이찌엔(再见)."


햇살은 포근하고, 바람도 살랑살랑 기분 좋게 불어준다. 대학 캠퍼스는 역시 지역주민들의 나들이 코스다. 여기 북경대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많은 북경사람들이 웨이밍후를 찾았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바람 쐬러 나온 새댁과 손주들 손잡고 봄맞이 하는 노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호안을 따라 걸어본다. 이제 막 움이 트기 시작하는 버들개지가 보이고, 제법 연초록 잎이 무성한 것도 보인다.


개인적으로 여기 북경대학교의 웨이밍후는 16년 전 대학 2학년 때 한 번 왔었다. 그 때는 겨울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기억이 난다.

a 북경대학교 도서관 옆에 있는 학생식당. 복층구조로 돼 있으며, 1층에는 백화점 푸드코트식의 다양한 음식 배식대가 있다.

북경대학교 도서관 옆에 있는 학생식당. 복층구조로 돼 있으며, 1층에는 백화점 푸드코트식의 다양한 음식 배식대가 있다. ⓒ 김동욱

a 북경대 학생식당에서 내가 먹은 점심. '쇠고기 피망 볶음' 쯤 되는 반찬인데, 한끼 식사로는 나무랄 데 없는 맛과 양이다.

북경대 학생식당에서 내가 먹은 점심. '쇠고기 피망 볶음' 쯤 되는 반찬인데, 한끼 식사로는 나무랄 데 없는 맛과 양이다. ⓒ 김동욱

나는 웨이밍후를 한바퀴 돌아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열람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16년 전에 들어갔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못 들어갔다. 여권을 맡기면 도서관 열람이 가능하다는데, 미쳐 숙소에서 여권을 챙겨오지 않았던 거다. 할 수 없다.

도서관을 왼쪽으로 끼고 돌자 식당이 보인다. 학생식당이다. 들어가 본다. 크지 않은 식당 건물의 내부는 복층 구조로 돼 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많은 학생들이 밥을 먹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형 할인매장의 푸드코트 같은 방식으로 배식을 하는데, 메뉴는 비교적 다양하다.

나도 배식을 받아서 대학 구내식당 밥을 먹어 보기로 했다. 밥을 받아먹는 절차가 어떤지 모르지만 일단 여러 배식구 중 한 곳에 가서 말을 걸었다. 물론 한국인이라고 먼저 밝혔다.

"워시아츨쩌거(我想吃这个=나 이거 먹고 싶어요), 쩐머빤(怎么办?=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구어런?(韩国人?=한국인이라구요?) 니요우치엔마, 런민비?(你有钱吗, 人民币?=돈, 인민페 가지고 있나요?)"
"땅란요우(当然有=물론 가지고 있어요)."

나는 얼른 지갑을 열어 보여줬다. 그러자 배식구 안에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나오더니 내 손을 잡고 식당 한가운데 서 있는 아가씨에게 간다. 배식원과 아가씨가 서로 뭐라 이야기를 하더니 아가씨가 나에게 식권 한 장을 내민다. 그리고 나는 밥값을 지불했다.

이 때 밥값이 얼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북경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각(角) 단위의 화폐가 거스름돈으로 나왔다. 이 때문에 밥값이 엄청나게 싸다는 생각을 했다. 스테인리스 식판에 고봉밥이 얹히고, 쇠고기와 피망, 양파 등을 한데 볶은 반찬이 또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맛이 좋았다. 느끼하지도 않고, 역한 향료냄새도 없었다. 아니면, 내가 비위가 좋은 건가…. 어쨌든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한 끼 식사였다.

이렇게 아주 싸게 점심을 해결한 나는 북경대를 나와 칭화대(清华大=청화대)로 향했다. 북경대학교가 인문학 중심대학이라면 청화대학교는 이공계 중심대학이다. 중국 2대 명문대학교인 이 두 학교 중 최근에는 청화대학교의 위상이 더 커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내 기억이 맞다면 후진타오 현 중국 주석이 다닌 학교가 바로 이 청화대학교다.

북경대학교에서 동쪽으로 2~3km 정도 떨어진 청화대학교 앞에는 우따오코우(五道口=오도구) 전철역이 있다. 그리고 이 일대에는 북경대와 청화대 말고도 중국어학연수생들이 가장 많다는 베이징위옌따수에(北京语言大学=북경어언대학) 등의 여러 학교가 모여 있다. 말하자면 우따오코우 전철역 주변은 우리나라의 신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는 또, 한국어 간판을 쉽게 볼 수가 있는 왕징(望京)과 함께 또 하나의 코리안타운이다. 왕징이 중국에서 직장 다니는 한국인들의 동네라면, 여기 우다오코우는 중국 유학생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 셈이다.

a 청화대학교 정문. 북경대학교와 함께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힌다.

청화대학교 정문. 북경대학교와 함께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힌다. ⓒ 김동욱

a 북경의 대학가라 할 수 있는 우따오코우 전철역 주변.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 왕징과 함께 또 하나의 코리안타운이다.

북경의 대학가라 할 수 있는 우따오코우 전철역 주변. 한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어 왕징과 함께 또 하나의 코리안타운이다. ⓒ 김동욱

청화대 정문 왼쪽 부속 건물에는 이 대학에서 직영하는 기념품 가게가 있다. 만년필과 볼펜, 열쇠고리, 다이어리 등을 파는 곳인데, 이들 상품에는 모두 청화대학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 좋은 기념품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기념품 가게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가게 안에는 학생인 듯 한 남녀 점원이 서너 명 있다.

나는 여기서 선물용으로 열쇠고리 몇 개와 책상 위에 놓아 둘 수 있는 볼펜꽂이 등을 골랐다. 그리고 점원 학생들과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열쇠고리가 중국어로 '야오스코우(钥匙扣)', 혹은 '야오스환(钥匙环)'이라는 것도 알았다.

세상 어느 곳에서나 젊은 친구들과는 비교적 쉽게 친해지고 어울릴 수 있다. 여기서도 나는 이들과 금방 친해졌다. 이들은 중국 돈과 한국 돈의 환율을 궁금해 했고, 한국에 가보고 싶어 했다. 이들은 실제로 한국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나에게 한국어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했다. 이들의 한국어에 관한 질문 중에는 한국에 돌아와 한참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게 있다.

"'감사합니다'에 대한 대답이 뭔가요?('감사합니다' 回答是什么?)"

중국에서는 '씨에씨에(谢谢=고맙습니다)' 하면 '부커치(不客气=천만에요)'가 자연스럽게 따라 오고, 영어로 'thank you'하면 'you're welcome'이 자동인데, 한국에서는 '고맙습니다' 하면 뭐라고 대답하느냐는 거였다.

'아 그러네. 그렇구나~. 우리는 뭐라 그래야 되지?'

딱히 정답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나만 그런가. 지금까지 나는 누구에게든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꼭 집어 뭐라고 말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 때 난 이들에게 정답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답을 찾고 있다. '고맙습니다'의 답말은 뭘까. '별 말씀을…', '천만에요' 쯤이면 될 것 같은데, 시원한 답변은 아닌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옛날이야기 한 토막. 옛날 경상도 어느 마을에서 길 가던 선비가 마을 우물에서 한 아가씨에게 물 한 바가지를 얻어 마셨다. 그리고 이 선비, '고맙소, 잘 마셨소' 했을 때 이 처녀가 한 말이 어쩌면 '고맙습니다'의 '확 와 닿는 답말'인지도 모르겠다.

"어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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