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본 신들의 풍차김대갑
시드니 셀던은 금세기 최고의 스토리텔러였다. 24살 때부터 극본과 시나리오를 쓰며 명성을 떨친 그는 영화, TV, 뮤지컬, 소설 등에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썼다하면 수백만부가 팔리는 그의 소설들은 대중적인 내용과 말초적인 문체, 평이하면서도 복선이 깔린 플롯으로 유명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게임의 여왕'이나 '내일이 오면'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끈 '신들의 풍차'이다.
신들의 풍차? 왜 하필 신들의 풍차라고 했을까? 도대체 풍차라는 것의 상징은 무엇인가. 흔히 풍차라고 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고즈넉한 호숫가에서 바람을 받아 날개가 돌아가는 풍차는 지극히 낭만적인 감수성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도 호숫가를 오렌지 색감으로 물들이는 일출이나 일몰 때, 연황색 빛이 풍차의 몸체에 엷게 스며드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유화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렇듯 로맨틱하고 애틋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풍차가 실은 농기구였다는 놀라운 사실! 튤립과 풍차의 나라인 홀랜드(네덜란드)가 튤립과 농기구의 나라라니 다소 김이 빠진다.
재미있게도 미국인들은 네덜란드의 풍차를 백조(swan)라고 부른단다. 백조와 풍차. 언뜻 보면 전혀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이 둘은 분명 공통점이 있다. 시드니 셀던도 아마 이 공통점 때문에 신들의 풍차라는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너무나 우아하게 보이는 백조가 실은 물 밑에서 경망스럽게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것과 낭만적으로 보이는 풍차의 몸체 밑에서 배수 장치가 경망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닮았다는 이야기다.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의 내면에 더러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 풍차와 닮았다고 시드니는 생각한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 제목으로 소설 전체의 주제를 압축해서 표현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