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가평의 날' 기념식 장면. 오른쪽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찰리 그린 중령의 미망인을 위로하고 있는 채명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윤여문
[호주] 중공군 격퇴한 날 기리는 '가평의 날' 호주의 4월은 '현충의 달'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ANZAC)이 터키 갈리폴리 해안에 상륙한 날을 현충일로 지내는 것. 그래서 이 날을 '앤작 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호주 현충의 달의 무드가 고조되도록 만드는 날이 '가평의 날'이다. 이 날이 앤작데이 바로 이틀 전이기 때문이다. 가평의 날은 1951년 4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경기도 가평에 벌어진 가평전투를 기념하는 날이다.
1951년 4월, 중공군은 춘계 대공세를 펼치면서 파죽지세로 남하를 계속했다. 특히 한국군 6사단을 격파한 중공군 118사단은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비교적 기동이 용이한 가평천 골짜기를 이용하여 서울-춘천 간 도로를 차단하여 연합군의 전선을 갈라놓으려 했다.
그러나 4월 23일 밤 10시경, 6사단을 추격하던 중공군 118사단의 선두 연대는 신속히 가평을 점령할 목적으로 종대 대형을 유지한 채 도로와 계곡을 따라서 진격하던 중에 공격을 받았다. 호주 3대대의 배치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
3대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일단 후퇴한 중공군은 24일 01시경, 연합군 전차부대가 재보급을 위해 잠시 철수하자 즉시 반격을 가해왔다. 그후 호주 3대대와 중공군의 일진일퇴 공방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4월 24일, 날이 밝자마자 연합군의 항공 폭격과 포병 사격이 집중되자 중공군은 공격을 중지하고 다수의 사체를 남겨둔 채 급히 철수했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던 중공군 1개 사단과 맞선 호주 3대대가 이틀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호주군이 믿기 어려운 승리를 거둔 것이다. 호주 3대대의 피해 상황은 전사 31명, 부상 58명, 실종 3명이었다. 중공군은 가평전투에서 1만 명 이상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호주 3대대는 그 공로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표창을 받았고 '가평대대'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호주 육군은 가히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평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4월 24일을 '가평의 날'로 정하고 매년 가평 퍼레이드 등의 행사를 통해 호주 군인의 용맹스런 정신을 기리고 있다. 올해도 '가평의 날'은 시드니 시내 마틴 플레이스와 시드니 근교에 위치한 가평대대에서 엄숙하게 펼쳐졌다. (시드니=윤여문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