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선 무슨 일이?

김훈 장편소설 <남한산성>

등록 2007.04.30 08:34수정 2007.04.3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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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한산성>겉표지

<남한산성>겉표지 ⓒ 학고재

오랑캐라 부르며 깔보던 이들이 창을 들고 조선을 침범한다. 인조와 부하들은 저들을 끝까지 오랑캐라 칭하지만 상대할 힘이 없다. 화들짝 놀란 신하들은 별의별 말들을 다 한다. 끝까지 싸우자는 이가 있고, 협상을 하며 화친을 하자는 이가 있고, 강화도로 대피해 시간을 벌자는 이도 있다.

왕은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그 좁은 곳에서 대군을 맞아 어찌하자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많은 백성들이 어떤 일을 당할지도 모른 채, 신하들은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가고 그곳의 백성들은 인상을 찌푸린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강산무진>으로 장편소설에 이어 단편소설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던 김훈이 3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남한산성>의 배경은 인조 시대 청나라의 침입으로 발생한 병자호란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전쟁의 결과는 일방적인 청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왕은 굴욕적인 패배 의례를 감당해야 했고 조선은 많은 것들을 빼앗겨야 했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밀려나던 그 정세를 헤아리지 못하다가 초래한 결과였다.

김훈은 이런 역사적인 사실들 위에서 무엇을 그리려고 한 것일까? <남한산성>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화친을 하자는 최명길과 끝까지 싸우자는 김상헌의 대립, 그리고 무기력한 인조의 고뇌다. 물론 소설 속에서 이들을 그린 것은 많았다. 그런 터라 새로운 구도는 아닐 게다. 하지만 김훈은 새로운 것을 그려냈다.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가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 모두 '정의'롭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또한 서로의 처지를 배려하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서로의 말을 비판하지만 그 속에는 살기가 없다. 이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면서도 그것과 다르게 자신이 믿는 것을 추구할 뿐, 나와 다르다고 해서 처단해야 한다는 등의 적대감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남한산성>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말들은 현기증을 불러일으킨다.

김훈의 유려한 문체는 둘째치고라도 그 많은 말들이 다 그 의미를 지녔기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소리를 하는 말들, 서로 비난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는 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면 이것보다 더 주요하게 보이는 것이 생겨난다. 그것은 김상헌이나 최명길처럼 역사에 기록된 이들이 아닌 이름 없이 사라져갔던 백성들이다. 대표적으로 김상헌을 태우고 가던 송파나루의 뱃사공, 뱃사공의 딸, 대장장이 서날쇠 등이 있다.


실제로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의미하는 것이 역사에 기록된 그들 못지않다. 함께 남한산성을 가자는 김상헌의 말에 끝내 "소인은 살던 자리로 돌아가겠소"라며 거절했다가 칼에 맞은 뱃사공이나 조정 대신들이 말만 요란할 때 실제로 뭔가를 해냈던 대장장이의 모습은 왕 주위를 맴돌던 사대부들과 비교되고 있다.

또한 대신들을 향해 싸울 거면 장렬하게 싸우라는 조롱조의 말을 하는 장졸들도 마찬가지다. 칼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지휘관을 향해 농담을 던지는 그들의 모습을 김훈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인데, 덕분에 <남한산성>에서는 흔히 민심이라고 했던 것들을 엿볼 수 있다. 대신들이 나라의 치욕이니 어쩌니 하며 떠드는 동안 하루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과 농사를 지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들의 마음을 <남한산성>에서 엿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칼의 노래>이후 김훈은 독자들을 만족시켜왔다. 그리고 지금, <남한산성>으로 그것을 이어가고 있다.

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학고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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