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여행의 기록

[서평]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

등록 2007.04.30 17:06수정 2007.05.0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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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프랑수아 를로르의 장편소설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의 장편소설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 ⓒ 랜덤하우스

세계가 시작되었을 단 하나의 문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을 정의하는 어떤 문장이 아닐까.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 그것은 흠모의 대상이었고, 탐구의 대상이었으며, 때로는 절망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이 수많은 감정들을 매일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다.


'프랑수아 를로르', 그는 건축과 회화, 문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두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로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그들의 고통을 지켜봤다. 그리고 결국 인간은 행복과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프랑수아 를로르는 지난 2002년 행복의 의미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인 <꾸뻬 씨의 행복 여행>(원제는 <엑또르 씨의 행복 여행>)을 출간했다. 이 책은 프랑스와 독일, 유럽권을 넘어 일본과 중국 등 14개국으로 소개되며 를로르를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에 이어 최근 국내에 출간된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에서 이번에는 사랑의 비밀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사랑의 비밀을 훔쳐간 코어모렌 교수를 찾아서

프랑수아 를로르의 전작인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은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꾸뻬씨가 행복의 비밀을 찾아 떠난 이유는 자신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그가 행복을 발견하는 방식 또한 매우 사소한 관찰을 통해서였다. 반면 <엑또르 씨의 사랑여행>은 그보다 훨씬 소설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

정신과 의사 엑또르는 사랑에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게 일상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신도 연인인 클라라와의 관계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엑또르는 연인 클라라가 일하는 거대 제약회사로부터 어떤 제의를 받는다. 제약 회사와 함께 '사랑의 묘약'에 관해 연구를 하다 실험 자료를 가지고 사라진 코어모렌 교수를 찾아 달라는 제의였다.


평소 교수와 친분이 있던 엑또르는 교수가 있는 캄보디아로 떠난다. 교수를 만나고 사랑의 묘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사랑의 비밀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에 도착한 엑또르는 클라라로부터 이별을 통보하는 메일을 받는다. 메일에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장 마르셀과 친해진 엑또르는, 교수의 흔적을 쫓아 캄보디아와 상하이 등을 거닐며 실연과 이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그 사이 엑또르는 교수가 보낸 '사랑의 묘약'을 캄보디아 여인 바일라와 나눠 마신 뒤 사랑에 빠진다.

한편 제약회사의 간부와 사랑에 빠졌던 클라라는 우연히 TV를 통해 엑또르와 바일라의 모습을 본 뒤 문득 상하이로 갈 것을 결심한다.

'사랑하니까 헤어져'라는 암호 같은 말

a '베로니크 사바티에'의 삽화

'베로니크 사바티에'의 삽화 ⓒ 랜덤하우스

난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어. 하지만 같이 사는 건 이제 더이상 힘들 것 같아. 그건 당신이 이미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기는 했지만 내 미래의 남편이나 내가 가지게 될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닌 것과도 같아. 그렇지만 더이상 당신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고통스러워

클라라는 엑또르와 헤어질 것을 결심하면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클라라의 말은 모순이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속성이기도 하다. 교수의 흔적을 쫓아다니는 여정 중에, 혹은 일상 속에서도 사랑에 관한 탐구를 멈추지 않는 엑또르는 사랑에 관한 단상들을 메모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투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이상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방금 다퉈서 돌아누운 채로 자고 있는 클라라를 보고는 다시 이렇게 쓴다. '때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크게 다투기도 한다.' 역시 사랑은 종잡을 수가 없다.

엑또르가 코어모렌 교수를 만나면 모든 의문이 풀릴까. 하지만 코어모렌 교수는 쉽게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이 여정에 엑또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유도한다.

친애하는 친구여, 이 쪽지는 하나의 내기라네. 하지만 어쨌든 과학적 실험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내기 아니겠는가. 난 알고 있었네. 그들이 자네를 보내서 내 뒤를 쫓을 것이며, 내가 이 사원을 보러 갔다는 사실을 자네에게 알려주리라는 걸 말야. 그리고 자네가 이 조각에 흥미를 느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네. 만일 자네가 이 편지를 읽는다면 그건 곧 내가 이 내기에서 이겼다는 걸 의미하지.

마치 퍼즐을 풀어나가듯이 두 사람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진다. 코어모렌 교수는 엑또르를 실험대상으로 선정하고, 엑또르 또한 교수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한다.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바일라라는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실연의 아픔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해 정리해 나간다.

100%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은 사랑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낯선 여인에게 느끼는 성적 욕망이나, 죄의식과 사랑의 관계에 대해 현실적인 고민들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또한 '사랑의 묘약' 제조에 얽힌 생물학적 분석도 빠뜨리지 않는다.

'왜 사랑 후에 따를 고통들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시작할까?', '왜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사랑의 설렘을 기대하는 걸까?' 언제나 사랑 앞에 붙은 '왜'라는 말들.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은 엑또르씨의 단상을 통해 완전한 사랑의 힌트를 전해주지만 어차피 답을 찾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독자들도 능동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해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랑이라는 보물 말이다.

엑또르 씨의 사랑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베로니크 사바티에 그림, 이재형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이 책의 다른 기사

"사랑의 비밀을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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