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전사들의 안식처, 동래 충렬사를 찾아

무명용사들의 젊은 죽음을 추도하며

등록 2007.05.01 09:43수정 2007.05.0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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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1592년의 어느 날, 구름떼처럼 몰려든 일본군을 향해 동래군민들이 포효하듯이 외친 말이다. 족히 수십 배가 넘는 일본군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도 그들은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일본군은 즉시 총공격에 들어갔고 처절한 혈투가 동래성에서 벌어졌다.


마침내, 성 안의 군사와 백성들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도륙될 즈음 송상현공은 조복으로 갈아입은 후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어느 공명심에 불탄 왜병 하나가 공을 베었고, 공의 몸에서 솟구친 붉은 피가 바닥을 슬프게 물들였다.

이 동래성 전투를 시작으로 조선과 일본은 7년간이라는 기나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동래성 전투는 조선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첫 대규모 전투였다. 그리고 전쟁 초기의 가장 의미 있는 전투였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모범으로 전해지는 전투였다.

충렬사 마당
충렬사 마당김대갑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가면 임진왜란 전사들을 모시는 사당이 하나 있다. 충렬사라고 불리는 이곳은 방대한 규모의 사당이다. 총 면적은 약 삼만 평 정도이며 본전을 포함하여 15개 동의 건물이 있다. 이 충렬사의 가장 큰 목적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지방에서 순절한 92인의 원혼을 달래는 데 있다.

그중에서도 앞서 말한 동래군민들을 위한 사당의 성격이 가장 강했다. 충렬사는 동래부사 송상현공을 모신 송공사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부산 각지의 전장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순절한 분들도 함께 모셔서 오늘날의 충렬사가 된 것이다.

1605년 동래부사 윤훤은 충렬공 송상현공을 모시기 위해 동래성 남문 안에 송공사를 건립하고 위패를 모셔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그 후 1642년에는 충장공 정발 장군도 배향하면서 충렬사라는 사액이 내려지게 되었다.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은 효종 3년 때였는데, 이때 비로소 사당이 정식으로 창건되고 강당과 동서재를 지어 유생들을 수용하면서 안락서원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충렬사 본전으로 가는 계단
충렬사 본전으로 가는 계단김대갑
충렬사는 그 후에도 몇 차례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옛 송공사 자리에 따로 별사를 두어 양산군수 조영규를 비롯한 9인의 의사들을 모시다가 영조 11년에 와서는 두 사당을 하나로 합치게 되었다. 1772년에는 다대첨사였던 윤흥신공을 합향하였고, 동래성 전투에서 기와를 던지면서 투쟁한 2명의 의녀와 금섬과 애향 등 4명의 의녀를 모신 의열각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978년 박정권 말기에 호국성역으로 확장되어 총 92분의 위패를 모신 대규모 사당으로 발전한 것이다. 현재 부산시와 (재)충렬사안락서원에서 매년 2차례 춘추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충렬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아무래도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충렬사의 정문을 지나면 경복궁 근정전에 이르는 대로를 연상케 하는 화강석 도로가 긴 그림자를 끌며 시원하게 뻗어 있다. 그 대로의 중앙 높은 곳에 웅장하면서도 위엄이 서린 모습으로 앉아 있는 본전은 우선 그 의연한 자태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저절로 경배하게 만든다. 청기와로 이루어진 팔작지붕의 완연한 선은 단정하게 앉아 죽음을 맞이한 송상현공의 마지막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래민중 항쟁도
동래민중 항쟁도김대갑
본전으로 오르기 위한 계단 옆에는 송공의 명언인 '전사이 가도난'이 반월의 화강석 위에 웅혼하게 새겨져 있다. 그 명언을 다시 새기며 25개의 계단을 찬찬히 올라가면 첫 번째 문이 등장한다.

첫 번째 문을 통과하자마자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은 시원한 대청마루가 일품인 '소줄당'과 하얀 수국을 닮은 '불두화'라는 꽃이다. '소줄'은 선열들의 충절이 일월보다 밝고 태산보다 높다는 뜻의 글월을 줄인 말이며, 일종의 정신도장이었다. '불두화'는 이름과는 달리 순백의 여인을 닮은 청초한 모습의 흰 꽃이다. 작은 꽃잎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하나의 독립적인 꽃봉오리를 만든 모습이 무척 인상적인 꽃이다.

소줄당을 지나 다시 34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두 번째 문이 등장한다. 그리고 문을 통과해서 오른편을 보면 향파 이주홍 선생이 비문을 쓴 충렬사 정화 기념탑이 눈에 들어온다. 향파는 요산 김정한과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문인이다. 그는 특유의 호소력 있는 문체로 원형의 커다란 동판 위에 선열들의 행적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그 행적을 천천히 읽은 후에 돌아서니 동백나무 한그루가 처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다른 꽃들이 피는 계절에 속절없이 지는 붉은 동백꽃. 그 붉은 꽃잎 사이로 엿보이는 무명용사들의 젊은 죽음. 바람은 동백꽃잎을 계단 아래로 날리고 있었다.

본전 안의 위패
본전 안의 위패김대갑
마침내 도착한 충렬사 본전. 계단을 다 오른 후 잠시 돌아서서 부산 시내를 내려다본다. 회색빛 콘크리트 박스들이 시야를 가리는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하지만 아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서 사람 사는 향기가 풍겨온다.

그 향기를 맡으며 충렬사 본전의 높은 처마를 올려다본다. 흰 페인트로 칠해진 서까래와 주심포, 헛첨자, 소로 등을 보며 아쉬움에 그저 혀만 끌끌 찬다. 너무 안타깝게도 충렬사 본전은 포틀랜드 시멘트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아쉽고도 또 아쉬운지고. 어이하여 콘크리트로 사당을 지었는지. 그저 입맛이 씁쓸할 수밖에.

본전 앞의 향로에 누군가가 향을 피워 놓았다. 후각세포를 자극하는 불교적인 냄새의 향. 향 연기는 하늘가로 하롱거리며 흐르고, 그 하롱거리는 동선을 무연히 쳐다보다가 잠시 묵념을 올려보았다. 조국이란, 목숨을 내걸 만큼 가치 있으면서도 목숨을 내건 만큼 보답을 하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묵념을 올렸다.

정화 기념탑과 처연한 동백꽃
정화 기념탑과 처연한 동백꽃김대갑
본전의 중앙에 마련된 세 개의 신위에는 송상현공과 정발장군, 그리고 윤흥신 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양옆으로는 그들보다 한 단계 아래 직급의 무장들이 나열되고 있었고, 무명용사의 위패들은 가장 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죽은 후에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산 자들은 죽은 자를 자기들의 기준에 맞추어 함부로 단계를 지우는지. 또 죽은 선열들은 이런 단계를 어찌 생각하시는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였다.

의열각 전경
의열각 전경김대갑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왼 편에 '의로운 여인'들을 모신 '의열각'이 눈에 들어온다. 기록에 의하면 동래성 전투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 기왓장을 던지며 저항했던 두 명의 의녀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송상현공과 정발장군의 애첩 두 명도 공들을 따라 순절했다고 한다. 네 명의 여인들은 반상의 구별과 상하의 구별 없이 나란히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 신위 위로는 소박한 닫집이 은은한 석양빛에 노랗게 물들어갔다. 석양은 의열각 앞의 선홍색 꽃 이파리를 곱게 희롱하고 있었다.

의를 중히 여기는 연못, 의중지
의를 중히 여기는 연못, 의중지김대갑
충렬사 광장으로 내려가니 한 떼의 대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느라고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의중지'라는 연못가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 평화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블루를 머금고 있고, 의중지의 잉어들은 형형색색의 피부를 자랑하며 유유히 물속을 거닌다. 평화란,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이다.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져간 그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 평화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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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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