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들이 건너다니는 길이니 조심해달라는 '오리 가족 조심(?)' 표지판.정철용
그렇게 양보하면서 또 에둘러가면서 지난 4~5년간 이 곳에서 삶을 살아왔어도 내가 무상으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이 없었다면 나는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크고 번화하고 번잡한 대도시인데도, 전혀 대도시 같은 느낌이 안 들도록 사방이 푸르고 깨끗한 자연환경이 나는 무엇보다도 좋았다.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공원들에서는 새들의 노래 소리가 사철 끊이지 않고 들려오는데, 때로는 공원에 놓아 기르는 공작새가 활짝 날개를 펼치고 있는 눈부신 자태도 만날 수 있었다. 자동차로 10분 거리 이내에 있는 한적하고 운치있는 바닷가는 또 어떤가.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에 취해서, 읽으려고 들고 온 책을 펼친 지 5분도 안 되어 다시 덮고 바다를 바라보곤 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런 아름다운 자연이 주택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 나를 매혹시켰다. 우리 동네 주택가 길가에 세워져 있는 이 아름다운 표지판을 보라.
뭘 모르는 사람은 엄마 오리와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새끼 오리 두 마리를 그린 이 표지판을 귀여운 농담쯤으로 여기겠지만, 나는 실제로 우리 동네 어느 집 정원 앞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야생의 오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니 이 표지판은 실제로 운전자들에게 던지는 경고의 교통 표지판인 것이다. '여기 이 길은 오리 가족이 자주 건너는 길이니 조심해 주세요.'
이 땅은, 이 지구는 인간의 것만이 아님을 이 표지판은 말하고 있었다. 내가 이루기를 원하는 꿈이, 내가 누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오직 나만의 것임은 아님을 이 표지판은 말하고 있었다. 뭇생명들과 함께 꿈 꾸고, 뭇생명들과 함께 이 순간을 누릴 것을 이 표지판은 내게 아주 부드럽게 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또 하나의 표지판을 가슴에 새겼다. 자연과 더불어 내 꿈을 키우고 자연과 더불어 이 순간을 누리겠다는 다짐이 어미 오리와 그 뒤를 졸졸 따라 가는 두 마리 오리 새끼의 모습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 것이다.
'이민 기념일', 즐길 만한 이유 있네
이렇게 뉴질랜드의 거리에서 마주친 세 개의 교통 표지판을 내 삶의 표지판으로 삼아 가슴에 품고 나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가 내가 꿈꾸던 목적지는 아직 아니지만, 그래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올해 여섯 번째로 맞이한 우리의 '이민 기념일'을 내가 조금의 후회도 없이, 일말의 불안도 없이 맞이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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