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꽃에 묻힌 선암사

등록 2007.05.01 18:22수정 2007.05.0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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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왕벚꽃

왕벚꽃 ⓒ 최성민

신록이 녹음으로 바뀌는 오월의 산은 터질듯한 생명력 그 자체이다. 그 충만한 녹음 속에 울긋불긋한 꽃들이 죄다 모여있다면 그야말로 노랫말에 나오는 '꽃동네', '꽃대궐'이 아닌가 싶다. 오월 초입의 전남 순천 선암사가 그런 곳이다.

선암사에 가면 현란한 봄꽃의 향연이 지금 막 펼쳐지고 있다. 한 두 가지도 아니고 10여 가지가 넘는 화사한 봄꽃들이 선암사에 다 모여있다. 조계산의 신록을 병풍처럼 두르고 알록달록 꽃을 피워낸 선암사 경내는 마치 봄 초원에 들어앉은 꽃밭이라고 할만하다.


꽃이 많은 절 선암사

a 영산홍

영산홍 ⓒ 최성민

선암사는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고찰로도 이름이 나 있지만 '꽃이 많은 절'로도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아마 오래전부터 선암사 대중들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 중에서 '꽃공양'에 많은 정성을 쏟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선암사엔 일 년 내내 꽃이 끊이지 않는다. 겨울엔 하얀 차꽃, 이른 봄엔 산수유꽃과 백, 홍, 청매화, 춘백(봄에 피는 동백), 봄이 익어가면 겹벚꽃, 영산홍, 자산홍, 금낭화, 수선화, 자목련, 여름엔 목백일홍꽃, 가을엔 상사화… 등이다.

선암사엔 원래 아주 오래된 명물 나무가 다섯 종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무소 앞에 에 있는 와룡송(누운 소나무), 칠전선원 앞과 무우전 주변의 고매(오래된 매화나무), 칠전선원 안에 있는 영산홍과 자산홍, 칠전선원 차밭의 차나무 등이다. 이들은 모두 절이 창건될 당시 동시 심어진 것으로 600여 년의 나이를 걸치고 있다.

a 자산홍

자산홍 ⓒ 최성민

그런데 지금 선암사 경내의 꽃잔치를 주도하는 건 연분홍과 흰색의 겹벚꽃(왕벚꽃이라고도 함)이다. 대웅전과 무우전, 칠전선원 사이 마당에 서 있는 새하얀 겹벚꽃과 연분홍 벚꽃은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무성하게 피어있다.


그 사이사이에 진홍색 춘백이 피어 색깔에 흥을 돋우고 있다. 이 겹벚꽃이 어찌나 양으로 절 마당을 압도하는지, 사람들은 꽃구름에 묻혀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산바람에 흩날리는 꽃 이파리를 '꽃비' 삼아 그 아래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옛날 너른 시골집 '꽃밭'이 생각 날 것이다.

그러나 품격에 있어서 요즘 선암사 꽃 잔치의 진정한 주인공은 칠전선원 안 마당에 있는 영산홍과 자산홍이라고 할 수 있다. 영산홍과 자산홍은 각각 한 그루씩 칠전선원 대문을 문지기처럼 지키고 서 있는데, 이들을 보면 꽃에도 품격이 있음을 알게 된다. 칠전선원 영산홍과 자산홍은 수백 년된 것이라서 키가 2미터를 넘고 둘레도 수 미터에 이른다. 이 둘이 연분홍과 진홍색 색깔은 한 달 내내 칠전선원 경내를 물들인다.


a 금낭화

금낭화 ⓒ 최성민

자산홍나무 너머 돌담가 중턱에는 지금 막 피어난 금낭화(며느리취라고도 함)가 유난히 청초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다. 같은 금낭화라도 요즘 야생화 바람을 타고 사람이 재배하여 길가에 심은 것과 산속 고찰 돌담가에 피는 것은 이리도 색상의 청결함이 다른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낭화가 핀 돌담을 돌아 칠전선원 차밭에 이르면 작설차잎이 이제 막 눈을 트이기 시작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요즘 피는 선암사의 꽃 가운데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종무소 앞 연못가에 피는 수양벚꽃과 그 위쪽 와룡송 옆에 피는 자목련이 있다. 수양벚꽃은 꽃 모양은 벚꽃이나 가지가 수양버드나무처럼 죽죽 늘어진 것이 특이하다. 선암사 수양벚꽃나무는 나이가 50년 이상 된 것으로 다른 곳에서는 이만큼 크고 운치 있는 수양벚꽃을 보기가 힘들다. 선암사 자목련은 역시 온도가 낮고 공기가 깨끗한 산에 있는 것이라서 늦게 피고 색깔이 깨끗하고 고운 게 특징이다.

자산홍, 영산홍, 철쭉

a 춘백

춘백 ⓒ 최성민

진달래와 철쭉이 비슷하듯이 영산홍과 철쭉도 비슷하다. 이 가운데 진달래는 가장 일찍 피고 화전으로 먹을 수 있다. 철쭉은 꽃 안에 진홍색 작은 점들이 있고 끈적끈적한 기색이 있으며 먹을 수 없다.

영산홍은 왜철쭉 또는 일본철쭉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영산홍'하면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 것으로 생각하게 되며 실제 일본에서는 철쭉과 함께 많은 품종의 영산홍이 개발되어 여러 나라에 수출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십여 종의 진달래속 식물, 일본의 몇 가지 철쭉 품종, 유럽의 품종들을 모아 형태적인 특성과 화학적 성분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길러 오던 영산홍은 우리나라 산철쭉에 가장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학술논문이 발표된 바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길러온 영산홍은 자생하는 산철쭉 가운데 색이 두드러지게 선명한 것을 집 가까이 심어 기른 것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자산홍과 철쭉은 색깔이나 생김새가 거의 비슷하다. 같은 철쭉인데 꽃의 색이 자산홍이 더 짙은 핑크색이다. 영산홍은 꽃색깔이 주홍색이고 잎은 반 상록성이다. 그래서 아파트단지나 학교 같은 곳에 심은 영산홍이 겨울철에 아랫잎은 지고 윗 부분 잎만 녹색이 탁한 동색같이 변해 나무에 남아있다. 영산홍은 잎이 먼저피고 다음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곡성 증기기관차 철로변에 있는 것이 영산홍이다.

선암사 가기

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나들목을 지나 7분이면 승주(선암사)나들목에 이른다. 이곳으로 나가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올라가면 선암사에 닿는다. 선암사는 문화재 도난방지 이유로 밤 10시면 문을 닫으니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선암사 '뒤깐' 옆 객사 해천당에 객실 여덟칸이 있다. 선암사와 관련되는 특별한 이유라면 종무실(061-754-5247)에 전화를 걸어 숙식을 청해볼 만하다.

승주나들목을 막 벗어나면 쌍암기사식당이 나온다. 예전 시외버스 정류장 식당이어서 반찬이 푸짐하다. 주먹만큼씩 썬 돼지고기 김치볶음과 두 토막을 친 고등어 두루치기 등 20여 가지의 반찬이 나온다. 선암사 아래 사하촌 식당 남헌의 '남헌밥상'(8천원)도 먹을 만하다.

선암사에서 나와 왼쪽으로 상사호를 10분 돌면 나오는 아젤리아호텔은 모텔급인데도 이부자리가 깨끗하고 호수를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다(1박 4만원~8만원). 주말엔 예약해야 한다(061-754-6212). 선암사 너머 금둔사(낙안읍성 가는 길) 아래 새로 문을 연 낙안온천은 유황성분이 많아 물이 매쓰러운 맛이 일본 온천에 버금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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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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